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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un 08. 2023

곡성 (2016)

- 악마가 나를 삼키려 할 때

감독 : 나홍진

출연 :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김환희


나홍진 감독의 2016년 작품 <곡성>을 며칠 전에야 보았다. 무서운 영화를 안 좋아하고 잘 보지도 못해서 안 봤던 것인데, 요즘은 그래도 좀 용기(?)가 생겼달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찾아보았다. <추격자>, <황해> 모두 작품성이나 흥행면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 영화로 나홍진 감독 작품을 처음 만났다. 약간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으나 재미있게 잘 보았다.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관객을 끌고 가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많이 떠올랐다. 현대 영화의 소재로 삼기 어려운 것을 과감하게 선택해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제목도 좋다. '곡성'은 실제 우리나라의 지명이면서 한자어로는 '크게 우는 소리'로 해석이 된다. 실제로 크게 울 수밖에 없는 일이 내 삶에 벌어지는데 논리와 과학이 통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주인공은 크게 당황하며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논리와 과학이 통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마을에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죽은 자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으며 살인자로 지목된 자 역시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어느 날 나타난 외지인(일본 남자), 하얀 옷을 입고 다니는 정신 나간 젊은 여자. 곡성의 구성원은 크게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사건은 일어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고, 사람들은 기이하게 죽어나간다. 그때 정신 나간 젊은 여자 (천우희)가 경찰인 종구(곽도원) 앞에 나타나 어떤 말을 흘린다. 그리고 그즈음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이 이상해지는데 종구의 엄마, 그러니까 효진의 할머니는 단번에 효진이 귀신에 씌었다고 생각하고 유명한 무당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급기야 효진은 이웃 할머니를 해하는 지경에 이르고 두고만 볼 수 없는 종구는 젊은 여자가 흘렸던 말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 동료 경찰과 신부(가톨릭 사제) 이삼과 함께 외지인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는 이상한 것들이 잔뜩 있었는데,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며 악마를 숭배하고 제의를 드리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곧 그것이다. 종구는 화가 나 외지인을 몰아세우지만 외지인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흥분하지 않고 도리어 날뛰는 종구를 관찰하는 듯 보인다. "너는 누구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에도 답이 없다. "무엇을 하러 왔느냐?"라는 질문에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라는 답을 할 뿐이다. 



일광(박수무당-황정민)은 종구의 집을 둘러본 후 '큰일이 났다. 건드려서는 안 될 놈을 건드렸다.'며 엄포를 놓는다. 한 번의 굿으로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자신도 목숨을 걸고 큰 굿판을 벌여야 한다고 하고, 일광은 '외지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거 사람 아니여. 귀신이여."

일광이 굿을 할 때 방 안에 누워있는 효진은 거의 죽을 것처럼 몸부림치며 발광하고, 외지인은 일광의 굿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방어한다. 효진의 상태가 극단적으로 치닫자 종구는 일단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멈추라며 소리를 지르고 절정에 이르던 굿판에서 깽판을 치며 중단시킨다. 굿으로도 아이를 구하지 못한 종구는 성당에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데 신부는 '귀신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느냐'라고 반문하고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잘라 거절한다. 

외지인이 정말 귀신이라면 '내가 죽여도 죽지 않을 것 아니냐며' 종구는 종구와 친한 동네 몇 사내와 이삼을 데리고 외지인의 집을 찾고 추격 중 외지인을 아깝게 놓치는데 빗 속에서 운전하다가 의도 없이 외지인을 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시체를 처리한다. 이삼은 병원에서 '독버섯을 건강식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한 자들이 적발되었고, 그것을 먹은 사람들이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뉴스를 보고, 직관적으로 외지인을 떠올린다. 



일광은 갑자기 코피를 흘리며 구토를 해 이상하다. 주변을 보니 가까이에 젊은 여자가 서 있다. 서둘러 자신의 집에서 중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도망을 치고, 종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잘못 봤다. 귀신은 외지인이 아니라 젊은 여자다. 얼른 자네 딸에게 가라."라고 말한다. 집으로 가던 중 종구는 젊은 여자를 만나고, 그녀로부터 "외지인은 죽지 않았다. 죽지 않는 놈이다. 일광도 한패이다. 내가 덫을 놨으니 귀신이 잡히면 닭이 세 번 울 것이라고 그때까지는 집에 가지 말고 기다리라"라고 말한다.

종구는 일광과 젊은 여자의 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녀에게 '너는 뭐냐?'라고 묻는다.

외지인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는데 그녀는 그게 중요하냐면서도 "네 딸을 살리려는 여자"라고 답한다. 



그 시간 이삼은 외지인이 있는 곳을 찾아 그를 다시 만난다. 

"나는 네가 악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의 입으로 듣고 싶다. 너는 누구냐?"

"너는 이미 내가 악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 너는 너의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뿐이다."

"아니다. 네가 악마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여기서 나는 널 그냥 두고 가겠다."

"날 두고 그냥 가겠다고? 네 맘대로 내려갈 수 없다. 여길 내려가는 건 네 의지가 아니다."


젊은 여자의 말에 흔들린 종구도 다시 묻는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건데?"

"그것은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 "

"무슨 죄?"

"남을 의심하고 죽이려고 하고 죽인 것"

"그것은 그놈이 먼저 내 딸을 해하려고 해서 그런 것인데 그것이 왜!"


그때 닭이 두 번째 운다. 그리고 갑자기 환각이 보여 젊은 여자를 귀신으로 확정 짓고는 집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의 결말은 이렇다. 젊은 여자의 말이 맞았다는 것. 외지인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었고, 이삼이 느낀 것처럼 악마였다. 그리고 일광은 외지인과 한 패였다. 

외지인은 이삼 앞에서 성경 구절을 차용하고, 손바닥에 못 박힌 자국을 보여주며 자신을 만져보라고 한다. 하지만 곧 카메라를 들고 그의 얼굴을 찍는다. 지금까지 죽었던 사람들이 죽기 전과 후 모두 사진에 찍혔던 것처럼 말이다. 카메라를 내린 그의 얼굴은 이미 사람의 얼굴이 아니고 악마의 얼굴이다. 사악하게 웃으며 비로소 질문에 답을 한다. 


"바로 나다"


집으로 온 종구는 자신이 보았던 그 어떤 광경보다 처참한 광경을 보게 된다. 아내와 어머니는 딸 효진에 의해 살해되었고 온갖 피범벅이 된 집안 내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둠이 살짝 가신 이른 새벽 일광은 무엇인가를 들고 종구의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죽어가는 종구의 얼굴에 그 물건을 들이댄다. 찰칵 찰칵 두 번 사진을 찍는다. 종구는 죽어가면서도 "효진아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 거야."라는 말을 남긴다. 



검색해 보니 나홍진 감독이 루터교회 신자인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성경에서 여러 가지를 차용해서 영화를 만들었구나 싶다. 결국 영화의 가장 큰 화두는 '믿음과 의심'이라는 것인데 나는 이 영화 <곡성>을 보면서 사람들의 믿음의 근간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 외지인과 이삼의 대화에서 외지인은 '너는 이미 나를 악마로 의심하고 그렇게 믿고 있으니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네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한다. 분명 이삼은 외지인을 악마로 의심했고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믿었다. 하지만 이삼의 마음 더 깊은 곳에는 '외지인이 악마가 아니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깔려 있다. 지금까지 일어날 일들을 종합해 볼 때 외지인이 악마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를 대적하려고 십자가 목걸이와 무기를 들고 그를 찾아왔지만 이삼이 가장 바라는 것은 그가 악마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그의 입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고, 네가 악마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냥 내려가겠다고 그를 회유하는 것이다. 홀로 그를 찾은 것은 이삼의 순진성에도 기인하는 것이겠으나 그가 악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도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본 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한다. 항상 매사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삼이 외지인을 악마로 인식한 것은 데이터와 정황에 근거한 사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가 악마가 아니길 바라기 때문에, 그보다 더 원초적으로는 이곳에 악마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악마가 도리어 이렇게 묻는 것이다.


"왜 의심하느냐"


종구가 한 번 남은 닭 우는 소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여자를 귀신으로 확정 지은 것에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 '내가 죄인이다'라는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명제를 들은 것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자의 말대로 닭은 울고, 여자의 입에서 나온 '나는 네 딸을 살리려는 여자'라는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환각 증세를 보이고 여자를 서둘러 귀신으로 확정 짓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다. 


일광은 종구에게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우리는 안다. 일광이 '현혹하는 존재'라는 것을.  미혹하고 넘어뜨리려는 자들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악이 사람을 장악할 때 어떤 전략을 쓰는지 영화는 아주 잘 보여준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교묘하게 섞는다. 일광도 말한다. '외지인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와 한 패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또 외지인과 일광은 크게 굿판을 벌이는데, 사실 그것은 외지인에게도 타격이 컸다. 그도 힘을 다해 그것을 방어해야만 했고 적지 않은 외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구의 가족 모두를 몰살시키려는 계략의 출발이었다. 종구가 직접 외지인을 처단하겠다고 마음먹고 죽이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쳐 놓은 덫이었다. '죄를 짓게 만들고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것이 악마의 전략이다.

하지만 개신교 신자인 나홍진 감독은 이름도 없는 신비한 여인을 함께 등장시킨다.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다. 효진과 효진의 가족을 죽지 않게 지키려는 것이다. 그녀는 귀신에게 덫을 놓고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것은 종구가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다. 종구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믿었다면 아마도 그의 가족은 모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종구는 그녀가 아닌 일광을 믿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참혹했다. 




믿음 이전에 소망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어떤 것을 염원하고 바란다. 그것이 자연스레 믿음과 연결되고 믿음은 반드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과 결과가 뒤따르는 것이다. 종구의 말처럼 종구가 먼저 누군가를 의심하고 죽이려고 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 효진이 먼저 이상 증세를 보였고, 왜 이 일이 효진에게 일어났는지는 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떤 것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날 수 있다. 본디 삶이란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나와바리 곡성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종구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니 그제사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보니 더 급해지고 급해지다 보니 과하고 엉키게 된다. 하지만 죽어가면서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빠가 해결해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뭉클하다.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유신론자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더 깊고 넓게 보인다.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어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덜어내었으면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온다면 그때는 극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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