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슬라 Jul 03. 2023

누구나 아는 비밀 (2019)

- 비밀(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감독 : 아쉬가르 파르하디

출연 :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리카도 다린, 바바라 레니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2019년 작품 <누구나 아는 비밀>을 보았다.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잽싸게 봤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감독님 중에 한 분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를 굉장히 잘 보았고, <세일즈맨>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대를 갖고 이 영화를 봤는데, 역시 감독님은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쉬가르 감독님의 영화는 항시 '진실'을 소재로 삼는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이 '진실에의 천착'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간략히 정리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비밀은 '누구나 아는 비밀'인데 그 비밀을 등장인물들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향유 또는 선택하는지는 다 다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감독님의 배우 선택 기준은 뭘까? 궁금증이 생긴다. 자국 배우 외의 배우들을 섭외할 때 영화의 배경을 먼저 결정하고 선택하는지, 아니면 배우를 눈여겨보았다가 함께 하는 것인지. 이번에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일본의 아쿠쇼 코지는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로 수상했고, 작년엔 우리나라 배우 송강호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로 수상했으니 이제 영화란 장르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그야말로 세계인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할리우드의 스타 부부 배우와 함께 작업했는데 아르헨티나의 리카도 다린 포함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배우들과 함께 했다. (영화를 보다가 '리카도 다린'이 나오자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의 주인공이었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스페인의 시골(고향)을 떠나 결혼 후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둘째 딸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딸, 아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친정 집에 온다. 영화는 초반에 '비밀'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거의 대놓고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알게 될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바로 라우라의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남편 알레한드로의 아이가 아니라 오랫동안 만난 전 연인 파코(하비에르 바르뎀)의 아이라는 것이다. 

결혼식 당일 사람들과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던 중, 이레네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먼저 방으로 올라가고 시간이 지난 후 라우라가 아이를 보러 방에 갔더니 사라지고 없다. 집에서 유괴된 아이를 찾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는 와중에 이 비밀이 전방위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이는 아이의 친부인 파코. 라우라와 알레한드로 부부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하는 행동이 파코와 너무 닮은 이레네를 보고 친정 식구들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레네를 유괴한 범인은 삼십만 유로라는 거액을 요구하는데, 회사 일로 바빠 참여하지 못했다는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리카도 다린)는 사실 2년째 놀고 있는 상태이고 취직을 위해 면접 보는 일정이 겹쳐 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요는 라우라는 사업가에게 시집 가 호강하고 있는 걸로 고향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우라의 딸을 유괴했을 때 돈 나올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찰에 연락하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협박 문자에 결국 식구들은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은퇴한 경찰, 라우라의 형부 페르난도의 친구의 도움을 받는데, 그는 라우라, 파코, 알레한드로를 차례로 일대일로 만나고는 각기 다른 의심의 씨앗을 던진다. 



범인은 이 가족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며 범인이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말에 파코는 자신의 포도 농장을 동업자에게 팔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엔 진심이 아니었다) 범인은 라우라에게뿐 아니라 파코의 아내인 베아(바바라 레니)에게도 문자를 보내는데, 베아는 파코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파코가 오랫동안 라우라를 만났다는 것을 베아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파코는 옛날에 라우라네 집에서 일했던 하인의 아들로 지금 가지고 있는 대농장은 라우라네 땅이었는데 7년 전 돈이 필요했던 라우라가 파코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았고, 파코가 황무지를 피땀 흘려 포도 농장으로 바꾸어 놓자 라우라의 아버지는 자신이 도박으로 돈을 날렸다는 것은 생각 않고 '너는 하인의 아들이다. 너는 내 땅을 가로챘다.' 라며 시도 때도 없이 파코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찾을 길은 요원하고, 범인은 계속 돈을 요구하는 상황에, 라우라는 어떻게든 딸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파코에게 돈을 마련해 달라고 하겠다고 남편 알레한드로에게 동의를 구한다. 알레한드로는 무능력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신이 도우실 것이라며 아내를 만류하지만 결국 라우라는 파코를 찾아가 이레네가 너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사실은 이러했다. 라우라가 파코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산 지 3년이 된 해, 라우라 혼자 고향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파코는 우리가 헤어진 것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울었고, 우발적으로 그와 하룻밤을 보낸 라우라가 임신하여 낳은 아이가 이레네인 것이다. 그때 라우라는 남편 알레한드로에게 사실을 고백했고, 아이를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알콜릭으로 삶의 나락에 떨어졌던 알레한드로가 낳자고 했고, 지금까지 자기 딸로 애지중지 키우며 술도 끊고 건실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레네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파코는 농장을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드디어 범인이 밝혀지는데.. 범인은 라우라의 큰언니의 딸, 그러니까 라우라의 조카딸과 그 남편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는 그 부부는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라우라 이모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레네가 라우라와 파코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서 라우라 부부가 아니면 파코에게서라도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제는 가족 내부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조카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남편이 이레네를 숨겨놓은 장소를 찾아가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한다. 다급해진 범인들은 그날 새벽 파코에게 만날 장소를 문자로 보내고 파코는 혼자 급히 차를 몰고 나간다. 차에 돈을 두고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범인들은 이레네를 파코의 차에 갖다 두고 돈을 가지고 사라진다. 그렇게 이레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왜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 파코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늦은 밤 혼자 나갔다가 신발에 진흙을 잔뜩 묻히고 돌아온 딸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라우라의 큰언니는 남편 페르난도에게 입을 연다.




유부녀가 남편이 아닌 전 연인의 아이를 가졌다.


이 비밀을 본인 라우라는 남편 알레한드로에게 바로 고백한다. 그리고 술에 절어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남편과 헤어져 전 연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지우겠다고 한다. 자신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어떤 비밀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는 아내의 선택에 나락에 빠져 있던 남자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에게 아이를 낳아 키우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잘 키운다. 16년이나 남에게서 키워진 딸의 존재를 알게 된 남자는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기꺼이 내놓는다. 


이모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조카는 그 비밀을 이용해 이모의 돈을 갈취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의 조카를 유괴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라우라 집안에게 무시를 당했던 젊은 남자는 범행에 동참해 아이를 유괴하고 돌이키지 않는다. 


라우라와 알레한드로, 파코가 이 비밀을 파괴가 아닌 사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라우라가 알레한드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중요한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헤어지자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하고 수습하겠다고 말한 것. 이것은 네가 못나서가 아니라 전적인 나의 잘못이라고 인정한 것에서 알레한드로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닐까. 또 아이를 낳아 자신의 아이로 키우면서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을 (비록 경제적인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라우라도 더 사랑하게 되고 둘째 아이를 낳게 된 것일 테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의 딸로 살았고, 앞으로도 내 딸이 아닐 테지만 존재를 알게 된 딸의 생명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라우라가 오랫동안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의 선택이 바로 인생이다. 

남의 것을 갈취하는 것에 여러 이유를 대며 합리화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범죄자일 뿐이다. 

사실은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로 나의 인생이 결정된다. 사랑으로 선택하면 사랑이 되고, 파괴로 선택하면 파멸로 귀결된다.


전작까지는 '무엇이 진실인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진실 그 자체보다 인생이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화두를 던진다. 해석 이전에 선택이 있다.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이다.


그래서 영화는 하나의 비밀이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비밀을 내놓는다. 이 역시 아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 것임을, 결국 그 비밀이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도 은근히 암시한다. 


사랑으로 잉태되어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에 대한 어떤 비밀을 알게 되어도 아마 그것 역시 사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랑의 결말이 파멸은 아닐 것이다. 


나의 선택은 반드시 타인에게 가 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 (20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