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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Oct 11. 2023

잠수종과 나비 (2008)

- 살아있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감독 : 줄리안 슈나벨

출연 : 마티유 아말릭, 엠마누엘 자이그너, 마리 조지크로즈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77위에 랭크된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잠수종과 나비>를 보았다. 포스터만 보아도 어떤 영화이겠구나 하고 감이 온다. 그래서인지 크게 흥미가 없었는데 리스트 중 안 본 영화가 얼마 남지 않아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보았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잘 보았고, 잘 만든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은 영화 감독이면서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필모를 보니 <바스키아>라는 영화에서는 음악까지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인가 보다.


이 영화는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다.  이 사람은 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능력있고 매력 넘치는 젊은 남자였다. 어느날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감금증후군(의식은 있지만 전신마비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에 걸려 버린다. 사람들의 말을 다 들을 수 있고, 냄새도 맡을 수 있고, 한 쪽 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못하고 말 한 마디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영화는 이 장 도미니크 보비가 직접 쓴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어떻게 책을 썼느냐가 영화의 핵심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사람이 한 순간에 자기 몸 안에 갇히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이게 살아있는 거야?"


자신의 상태를 의사의 입으로 들은 그가 머릿 속에서 처음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를 너무 부정적으로,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어치료사와 물리치료사를 보고는 '이런 미인 앞에서 이 상태라니 아쉽군' 이렇게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되 이 상황을 승화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언어치료사 뒤랑은 보비에게 한 가지 의사소통 방법을 제안한다. 



보비는 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두고 프랑스어 알파벳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알파벳 순서로 보드를 만들어 뒤랑이 처음부터 하나 하나 부르면 그 단어일 때 보비가 눈을 깜빡이는 것이다. 그러면 뒤랑이 한 자 한 자 노트에 적는다. 그렇게 보비는 다시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된다. 

이 때 보비는 단순 의사소통 뿐 아니라, 쓰러지기 전 책을 내기 위해 계약했던 출판사와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말한다. 책을 쓰겠다고. 그렇게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은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보비는 결혼을 했었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혼을 하고 따로 애인이 있는 상태이다. 쓰러진 후 보비를 처음 본 사람은(의료진 제외) 전처 셀린느이다. 셀린느는 아직 보비에게 마음이 있어 보이고, 그를 본 후 돌아가는 길에 엉엉 울지만 또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다시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보비의 연인은 그를 대면할 자신이 없어 아직까지 찾아오지 않고 있다. 역시 거동이 불편해 요양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아버지도 아들의 상태를 소식으로만 전해들었을 뿐 그에게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보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기능을 잃지 않은 두 가지가 있음을 생각한다. 

기억과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현실은 잠수종에 갇힌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잠수종 안에서도 나는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또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면도를 돕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여느 부자와 다를 것 없는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눈다. 연인과 여행을 떠나 좋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는 평범함을 즐긴다. 그렇게 그는 상상으로나마 잠수종에서 빠져나와 나비가 되어 훨훨 난다. 


그래도 보비가 한 일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가 쓰러지기 전 계약했던 책을 집필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의사 소통 방법이 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살아있을 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난 그 결심이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더 감동이 되었다. 


그렇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약속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않았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핑계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의 발생'이다. 갑자기 몸이 아프다든지, 일이 생겼다든지. 하지만 살아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살아있다면,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던지간데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결국 약속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내가 약속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면 지킬 수 있다. 내가 했던 말을 나 스스로가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보비는 책을 출간 한 후 이틀 뒤에 사망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킨 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의 마지막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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