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미 Mar 09. 2022

대학생들도 이렇겐 안 하겠어요

마케터의 지옥에 도전하게 된 마린이(8)

'뭐야 미친 거 아냐?'

사실은 이거보다 심한 욕이 나와 같은 파트를 담당하고 있던 B대리의 입에서 나왔다. 야근에 찌들어 욕하는 줄 알았다. 그녀는 내 사수가 어떤 파트를 받았는지 지금 알았다며 저거를 왜 10시 반까지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며 이 프로젝트에서 Project Manager 였다고 한다. 


뭔 말이지 하며 완성했다는 부분을 보니 역시나 내 입에서도 욕이 터져 나왔다. 마케팅 기획안에서 콘셉트와 타겟층을 맡았다고 하는데 말 같지도 않은 디자인과 내용이었다. 조금 더 이해를 보태자면 대학생들의 피피티 표지와 다음 장 정도를 맡았다고 보면 된다. PM인데 그 부분을 맡았고, 저따위로 하는 데 야근을 해가며 했으며, 자신의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야근 중인데 혼자 퇴근했다니 욕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심지어 저부분은 팀장님이 완성이라고 퇴근하라고 했던 거겠지 생각하니 더욱더 열불이 올랐다.


B대리와 함께 진짜 마지막이구나 하고 컨펌을 요청했더니 팀장님은 우리를 단톡방으로 따로 불렀다.


ppt 봤는데 혹시 하기 싫으세요?

대학생들도 이렇겐 안 하겠어요

말이 안 나오네요

몇 시가 됐던 컨펌 해줄 테니 꼭 마무리 지어주세요


이 정도 욕을 먹을 줄이야

웃음만 나왔다. 포토샵으로 디자인을 잡는 것도 아니고 피피티로 해야 하는데 시간도 이미 11시를 넘었다. 물론 피피티로도 엄청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피피티가 손에 익지 않은 나는 불편할 따름이었다. 나는 B대리에게 원래 이런 식으로 일을 하냐고 물어봤다. 다른 팀에선 디자인은 팀장이나 PM이 대부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몇 명이 붙어서 이걸 다 담당하고 있는 건지, 전혀 어떤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입사한 지 2주간 제대로 퇴근해본 적이 없으며 내가 일을 못해서 라기보단 체계도 없이 본인들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하는 사람 둘 덕분에 일이 계속 꼬이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했다. 몇 시가 됐던 컨펌 해준다던 팀장님은 새벽 2시 반 우리가 더 이상은 능력 밖이라는 생각에 컨펌을 요청했으나 답변도 없었고, 퇴근하겠다고 단톡에 남겼다.


에이전시 입장에서 기획안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기획안을 가지고 일을 따내고 진행을 하고 회사가 돌아가고 월급이 나온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내가 남아서 배울 것도 없고 답답함만 느낄 것 같았다. 일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한 나로서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자 팀장님한테 카톡을 남겼다.


팀장님, 에이전시에 지원할 때 당연히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고자 이 회사에 왔지만 아무래도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진행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피피티에 POWER가 부족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