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별에 닿아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수많은 난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녀의 알 수 없는 마음에 미지의 우주를 유영하는 것만 같았던 제주 여행이 끝이 났다. 절친한 사이였다가 내 마음이 새어버린 탓에 차갑게 굳어버리는 듯했던 우리 사이가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며칠 뒤 그녀는 잠시동안 육지에 볼 일을 보러 온다고 했다. 제주에서 신세를 졌으니 이번엔 내가 육지 가이드를 해주겠노라 말했다. 가이드를 핑계 삼아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는데 영화가 끝나면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마음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나가는 길에 갑자기 툭- 하고 소리가 나더니 아끼던 신발 밑창이 나가버렸다. 당황스러웠다. 불현듯 신발 따위에 비길 수 없이 아끼는 그녀를 잃게 될까 잠시 동안 겁이 났다. 훠이 훠이~ 불길한 기운을 떨쳐버리고 다른 신발을 갈아 신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핑크색과 보라색을 좋아한다던 그녀에게 어울릴만한 커다란 꽃다발을 준비했다. 우연히 알게 된 꽃집이 있었는데 꽃의 조화가 참 예뻐서 고백한다면 이곳에서 꽃을 주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바로 그 꽃집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고백을 할까 영화가 끝나면 할까 고민이 됐다. 결론은 영화를 보고나서 하기로 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차이면 영화도 함께 거절되어버릴테니 그런 불상사는 미리 없애보려는 심산이었다.
함께 보았던 영화는 <인터스텔라>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답게 러닝타임은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영화를 좋아해서 혼자서도 영화관에 가서 밀도 있게 감상하는 타입의 사람이지만 틈틈이 좋아하는 그녀를 감상하느라 도통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우주 저 멀리로 가버렸데도 그녀라는 우주를 감상했으니 이제부터 <인터스텔라>는 내 생애 최고의 우주 영화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던 영화는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동시에 고백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그녀에게 남기고 물품보관함에 숨겨두었던 꽃다발을 찾아 나섰다. 고백하기 전에 화장실에 먼저 들러 옷매무새를 고치려 했다. 일종의 꽃단장. 그러다 거울을 보며 안경을 잠시 벗었는데 뭐에 걸렸는지 안경이 툭- 하고 부러져버렸다. 그녀가 잘 어울린다고 해준 안경이었다. 그녀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다시 불길한 기운이 솟고 있었다. 이대로 멈춰야 할까?
핑크와 보라로 물든 꽃다발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등 뒤에 꽃을 꽁꽁 숨긴 채 그녀를 찾았다. 수많은 흑백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색을 지닌 그녀를 금새 찾아내었다.
그리곤 그대로 다가가서 꽃을 건넸다.
꽃을 받아 든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신데렐라라도 된 것처럼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두르는 그녀의 발걸음을 차마 잡을 수 없어 그렇게 그대로 보내주었다.
집에 가기 위해 교통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찾으니 지갑이 온데간데없었다. 아끼던 신발과 소중했던 안경을 잃은 것마저 모자라 귀중한 것들이 담긴 지갑마저 잃었다.
절대 잃고 싶은 하나조차 서둘러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불길함이 넘쳐흐르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