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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Nov 19. 2023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아내와 고양이 두 마리를 모시고 산다. 사실 태어나서 30년이 넘도록 온통 털로 뒤덮인 네 발 달린 짐승과는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묘연이라는 게 정말로 있는지 스트릿 출신이던 길냥이 두 마리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우리 품에 찾아왔고 이내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나를 제법 좋아하는 거 같다가도 어느새 거리를 두곤 했다. 지들 멋대로인 게 그들 만의 매력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래봤자 귀여우니까.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교회와는 다르게 주말마다 꼬박꼬박 2번씩 퇼 커피를 찾았다. 밀리 사장님도 잔뜩 경계했던 첫 만남 이후로 서서히 나의 매력에 빠져 들어버렸다. 어느 정도냐 하면 먼발치서 나를 알아보고 시속 200킬로의 속도로 달려와 포옹과 뽀뽀를 퍼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 발 달린 짐승 = 고양이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자로서 이런 반응은 상상도 해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격한 환영은 머리털이 나고서 처음 경험해 보는지라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그다음엔 어쩔 줄 몰라했으며 그다음엔가부턴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행복감에 젖어들곤 했다. 나를 온몸으로 환영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밀리 사장님의 매력은 단지 격한 환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빼어난 외모가 첫째가는 매력이었다. 밝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색빛의 털이 눈길을 끌었다. 이마에서부터 코와 입 주변에 이르기까지 묘한 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진 눈보다 하얀 빛깔의 털이 일품이었다. 빛깔이 고운데서만 그치지 않는 매력이었다. 진정한 매력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털결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슬며시 한 두 번만 만져보려 했는데 어느새 자리를 깔고 앉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놀라움 그 자체랄까?


  퇼 커피에는 신기하게도 밀리 사장님을 닮은 디저트가 하나 있었다.


  바로 치즈 케이크였다.  


  사실 퇼 커피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는 튀르키예 전통의 카이막이다. 다른 데서 흔히 찾을 수 없기도 하거니와 튀르키예 현지에서 먹는 카이막보다 더 맛있어서 그렇다. 그다음으로는 영국 전통의 디저트 이튼매스가 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크림 위에 토핑 된 제철 과일 토핑을 한 스푼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영국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디저트다. 그런데 간과해선 안될게 하나 있다. 어디에나 있어 흔하디 흔한 디저트라 기대가 적지만 어디서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맛을 지닌 디저트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치즈케이크 되시겠다.


  생각을 해보자. 당신이 핸드드립 커피 전문 카페에 간다면 반드시 주문할 한 가지 메뉴는 무엇일까? 매우 높은 확률로 일단 핸드드립 커피를 먼저 시킬 것이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있지 않다면 두 번째로 주문할 메뉴는 디저트일 것이다. 이왕이면 맛있는 디저트, 실패하지 않을 디저트를 시키고 싶을 것이다. 거기에 맛있는 커피를 더욱 맛있게 해 줄 디저트라면? 게다가 커피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디저트라면? 무조건 원 픽으로 골라야 한다. 그 디저트가 바로바로 퇼 커피의 치즈케이크다.

퇼 커피의 치즈케이크

 겉으로 보기엔 여타 다른 치즈케이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퇼 커피의 치즈케이크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라 겉모습이 짙은 고동색이다. 선뜻 손이 잘 안 가는 겉모습에 속지 마시라. 더더군다나 함께 동행한 자가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망설이는 순간 치즈케이크는 동행자의 뱃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니,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면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필수다.

녹는다 녹아

  이제는 포크로 치즈케이크를 한 조각 떠서 입 안에 넣어 보자. 그 맛은 어떠한가? 쌀쌀한 날씨 탓에 마음까지 쓸쓸해질 것만 같은 이 계절, 당신은 외출을 하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꽁꽁 얼어버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온수매트를 풀파워로 때려 넣는다. 편하디 편한 수면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온수매트 위로 동태 같은 몸을 누인 뒤 가볍지만 따뜻한 오리털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쓴다. 온수매트의 열기가 점점 올라오면서 꽁꽁 얼었던 얼음장 같은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있다. 녹는다 녹아, 퇼 커피의 치즈케이크를 한 조각 입 안에 넣는 순간 경험하게 될 당신의 기분을 겸손하게 묘사해 보았다.

맛나는 필터 커피

  서둘러 두 번째 조각을 입 안에 살포시 넣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일은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는 법, 경건한 마음과 우아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 맛난 커피를 한 모금 읊조려 보자. 시를 음미하듯 커피를 감상해 보자. 템포가 살짝 느려진 게 느껴졌다면 이제는 다시 치즈케이크를 맛볼 차례다. 커피의 잔향이 아직 감도는 내 안에 두 번째 치즈케이크 조각을 초청해 보자. 이것은 마치 저기 머나먼 타국, 클래식의 거장 모차르트, 그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서나 먹어봄직한 크림커피의 맛이 느껴질 것이다. 이름도 아름다운 비엔나커피가 내 몸 안에 스며드는 게 느껴지며 어디선가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듯하다.  


  세 번째 조각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직접 와서 맛보시길 바란다.


  퇼 커피의 치즈케이크는 밀리 사장님처럼 맛보면 맛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마성이 담겨 있다.

 

밀리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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