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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Nov 25. 2023

유레카


  내가 어쩌다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가 생각난다. 이토록 쓰고 검은 물을 사람들은 뭐가 좋다고 그렇게나 많이 마시나 싶었다. 성인이 되어 카페에서 약속이 잦아졌을땐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카페에 파는 거라곤 커피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쓰디쓴 커피를 쓴 한약 마시듯 눈 딱 감고 억지로 마시는 것도 한계에 다다를 무렵 구원자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바로바로 이름부터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또'였다. 달달한 시럽을 넣은 라떼에 카라멜 소스를 듬뿍 뿌려 나오는 카라멜 마끼아또는 커피계의 혁신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 맛 본 뒤로는 꽤 오랫동안 카페에 가면 카라멜 마끼아또만 먹었다. 그러다 알게된 또 다른 커피 메뉴는 카페모카였다. 역시나 초콜릿 소스가 듬뿍 들어간 달달한 커피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달달한 커피가 손이 잘 안가게 됐다. 그 무렵 친해진 커피는 라떼였다. 아메리카노는 아직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우유로 부드럽게 감싼 커피 라떼는 입맛에 그런대로 맞았다. 꽤 오랫동안 라떼만 마셨다. 그렇게 라떼만 줄창 마시다가 어느 날엔가 괜찮다고 소문난 필터 커피 전문점에 가게 됐다. 필터 커피 전문점까지 가서 라떼를 찾을 순 없어서 필터 커피를 주문했었다. 여러 종류의 원두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어떤 원두를 골랐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골랐던 원두로 내린 필터 커피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커피가 마냥 쓰기만 한게 아니었구나.'


  원효대사의 해골물에 비할 법한 깨달음이었다. 그 커피의 맛은 커핑노트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어떤 원두였는지 기억엔 없지만 향미가 가득한 차를 마신듯해서 인상 깊었다. 그 뒤로 필터 커피를 자주 마시진 않았다. 근처에 필터 커피 전문점이 없었기도 했고 대체로 필터 커피는 가격이 비싼 편이라 부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필터 커피 전문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카페는 바로 '퇼 커피'였다. 사실 커피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없었다. 귀여운 밀리 사장님이 보고 싶기도 했고 맛나다는 튀르키예 전통 디저트 '카이막'이 더 궁금했다. 커피는 디저트를 즐기는 보조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보니 원두 종류가 다양했다. 창가 쪽에 로스팅 기계가 있는거로 봐선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보여졌다. 가장 기대했던 카이막은 이미 품절되어 있었다. 실망이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치즈케이크와 함께 괜찮아보이는 원두를 골라 필터 커피를 아이스로 주문했다. 내가 고른 원두는 '에티오피아 테베 부르카' 였다. 이 원두의 커핑노트엔 '베르가못, 복숭아, 쥬시, 오렌지블라썸' 이라 쓰여 있었다. 산미가 가득해보이는 노트라 사실 걱정스러웠다. 이내 커피와 치즈케이크가 내 앞에 놓여졌다. 좁고 긴 유리컵에 담긴 커피 사이로 새초롬하게 얼음이 비치고 있었다. 일단 비쥬얼은 합격! 다음은 맛을 볼 차례였다. 조심스레 유리컵을 기울여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것은 마치 무릉도원, 신선이 사는 세계였다. 감미로운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숲을 거닐다가 만난 탐스런 과일나무, 그 나무에 열려있는 복숭아 같기도 하고 오렌지를 닮기도 한 이름 모를 과일을 갓 따내어 한 입 베어물었을 때 느껴지는 그 쥬시함, 자칫 산미가 도를 지나치는가 싶었을 무렵 기분 좋은 단맛이 살포시 감돌았다. 싱그럽고 푸른 초원에 포근하게 누워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맛이랄까?



  '찾았다, 내 최애 카페!'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그 유레카를 나도 외쳤다.


  카페를 나서는 길엔 '에티오피아 테베 부르카' 원두가 손에 들려있었다. 주말에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주중에도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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