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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Aug 20. 2022

시간과 공간

SF 꽁트 연습용

빛이 우주의 끝에 도착했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우주는 수축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나에게 먼저 고발한 것은 공간이었다. 우주가 지금껏 팽창하고 있던 것은 현상이었다. 즉,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출 수도 있었다. 우주는 전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방향이 역으로 변했다. 그 때까지 빛의 속력은 변하지 않았다. 광속으로 나아가던 빛은 어느 순간 우주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우주의 끝에 도달한 빛은 같은 속력으로 지금까지 나아갔던 방향의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간이 수축하며 시간은 확장되었다. 공간은 시간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우주의 법칙을 바꿨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멋대로 우주의 법칙을 바꾼 시간을 고발하고자 나에게 항의했다. 시간의 영역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현상이었다. 공간이 커지는 속도가 빛을 넘어서면서부터 에너지가 닿지 않는 영역이 생겼다. 에너지가 변하지 않는 영역에선 시간이 사라진다. 우주의 팽창 속도가 계속 빨라지니, 이대로 가다간 모든 물질 사이의 거리가 빛의 속도보다 멀어지는 날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 때가 공간에 시간이 잡아 먹힐 때였다.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 시간이 멋대로 우주의 방향을 비틀어버린 것일까? 심증은 있지만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었다. 애초에 시간 혼자 그게 가능한 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우주에 존재할 뿐이지, 그것의 원리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지 못 한다. 명확하지 않은 것을 조작할 수 없었다.

 

 공간의 주장에 시간이 반박했다. 빛이 닿는 범위 까지만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닿지 않는 우주의 끝까지 조작할 수 있냐고 했다. 어느 순간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우주가 수축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이었다. 우리가 관측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은 현상으로 인식하고자 했던 약속도 다시 말했다. 결국 누구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주가 이렇게 수축하면 우리는 존재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우주는 얼마나 이 현상을 반복했을까? 첫 번째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우리’들이 만들어졌다가 손도 못 쓰고 소멸했을 수도 있다. 우주가 다시 팽창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공간과 시간의 영역 다툼은 계속되었다. 우주의 수축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났다. 모든 방향으로 퍼지던 빛 중 우주의 끝에 도달한 빛이 반사되면서, 좁은 공간에서 빛과 에너지가 들끓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변하는 영역이 많아지며 시간이 빠르게 확장되었다. 에너지가 들끓자 물질들이 핵융합을 하며 빛과 에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물질과 공간은 사라지며, 빛과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우리가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예외는 있을 수 없었다.


  우주는 극한으로 수축했다. 공간은 소멸하기 직전이다. 온 우주에 빛이 닿는다. 우주가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우주는 빛으로 구성된 덩어리처럼 보이며,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는 사라졌다. 공간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시간으로 구성된 우주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다. 시간은 나를 쳐다보며 이제는 알겠냐고 물었다. 그 때까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우주는 사라졌다.

 

 공간과 시간이 사라졌다. 시공간이 소멸하니 차원이 사라졌다. 차원이 사라지니 방향도 소멸했다. 이제는 법칙만 남아있다. 나는 정해진 법칙을 되뇌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리고 우주는 생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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