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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Jun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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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를 읽고

 

 발성이 조합되어 언어를 만들었다. 발성 기관은 언어가 약속한 대로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구전된 목소리는 대를 이어져 규범과 도덕을 만들며 공동체를 만들었다. 자연 언어는 인류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준 코드다. 하지만 현재 구전은 기록된 문자가 발전되며 개인적이고 혼란스러운 누군가의 이야기 (p 60)로 치부된다. 구전은 화자가 사라지면 쉽게 소멸한다. 휘발하고 잊혀지는 구전을 세상에 붙잡아 두는 것은 기술이다. 사라져가는 이들을 잠시라도 이승에 붙잡아 두기 위해 사이보그로 화자를 구현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제한되어 있고, 그마저도 빠르게 노화된다. 생물학적 신체가 없는 이들은 생체 데이터가 없다. 이들은 실존하지만 과학의 시대에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 하는 유령으로 세상에 떠돈다. 대표는 주인공을 연민하며 연구를 지지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주인공은 대표의 감정을 일부만 수용한다 (p90).


 소설을 소비한다는 자기소개에 항상 들러붙었던 의문이었다. 불합리와 차별을 부르짖으며 폭발하는 소설들이 넘쳐나지만 결국 책장을 덮거나 스위치를 끄면 증발해버리는 글자들이었다. 한 겹의 종이를 넘지 못 한 채 종이에 갇혀 배양된 혁명이었다. 대중으로부터 버려진 탕아는 고립된 세계에서 선지자가 된 우월함에 빠지거나, 자신을 버린 대중을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서 제시된 구술학은 소설의 생산자, 특히 희망을 잃고 제한된 사이보그 육체에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연구론을 제시한다. 구술학에서 연구자는 자신의 의문이 개인적인 것이 아닌 중립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가정하에 (p65)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준에 만족하지 못 한 것들은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거나, 객관적이지 못 하다는 이유로 집계되지 않았다. 주인공은 이들을 만나고 이해하기 위한 경험의 절댓값을 얻기 위해 구술학, 즉 소설을 연구한다. 이 연구론은 구술된 이야기, 기술된 소설, 그리고 기록하는 블랙박스를 마주한 작가가 풀어내는 개인적인 자서전이다. 블랙박스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원하는 답을 바로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도 집계하지 않았던 데이터까지 끊임없이 기술하는 작가 덕분에 우리는 세상의 또다른 불합리함을 발견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무한한 순간이 모여 3차원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미적분학이 발전했고, 끝없는 우주로 나아가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끝없는 시도 끝에, 책을 덮은 후에도 종이를 뚫고 주인공과 동질감을 느껴지게 만들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다음 결과값을 기대하며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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