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티너디 May 23. 2022

스파링

자유단편소설



라운드


다온은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때렸다. 그는 10년 동안 쉬지 않고 링에 올라왔다. 물론 그보다 잘 때리는 무에타이 선수는 항상 있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링 위에서 그와 만났다. 싸구려 가죽과 얇게 도금된 철판으로 만들어진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종종 그를 이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쓰러졌다. 돈이 되지 않아서 쓰러졌고, 종합격투기 판을 기웃거리다가 사라졌고, 뼈가 더 이상 붙지 못해 은퇴하는 선수도 있었다. 이젠 그의 경기를 찾는 사람들 모두가 그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10년 동안 그가 보여주지 않은 유일한 모습이었다. 다온이 쓰러지기 위해선 링 위에서 죽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링 위에 있을 땐 아무나 죽어도 관객들은 환호할 것이었다. 다온은 오히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고 경기를 오는 게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바람대로 다온은 사람을 죽였다. 아쉽게도 링 밖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가 마지막 시합을 두 달 앞두고 있을 때였다. 달은 먹구름에 가려진 지 오래였다. 막 시작된 장마가 밤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빗방울에 산란하는 헤드라이트만이 희끄무레하게 바닥에 엎어진 그것을 비췄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리는 빗물은 끊임없이 눈꺼풀을 침범했다. 대부분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온은 차에 내리자마자 그가 누구를 쳤는지 확신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 상대인 하진이었다. 다온의 몸에 닿아 부서진 빗방울은 그를 손끝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체온에 가열된 소나기는 어둠이 덮인 아스팔트의 경계로 곡선을 그리며 흩어졌다. 그는 이 지경이 오기 전까지를 되짚어봤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졸지도 않았다. 알파벳과 한글을 뒤에서부터 세어보았다. 세 번을 반복한 후에야 그는 자신의 정신이 평소와 같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제야 바닥에 쓰러져있는 하진도 실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온은 그가 세워둔 차와 하진의 사이를 다섯 번 왕복한 후 주저 앉았다. 그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 도망치지는 말자는 결심의 표현이었다. 그가 10년 동안 링 위에서 살아온 방식이었다. 셔츠로 빗방울에 일렁이는 액정을 신경질적으로 닦았다. ‘11’까지 버튼을 누르던 그의 엄지손가락이 멈칫했다. 응급차를 먼저 불러야 하는 지, 경찰을 불러야 하는 지 헷갈렸다. 확실히 하기 위해 검색 창에 ‘뺑소니 신고’를 치려고 했다. 하지만 얼음장 같은 빗물에 생명력을 잃어버린 손가락은 액정에 부딪혀 딱딱, 삑삑 소리만 낼 뿐이었다. 다온은 얼어버린 손을 녹이고자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비볐다. 손의 온도가 약간 돌아오고 나서야, 다온은 그가 제일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것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타구니에 손을 넣은 채 엉거주춤 일어나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에 엎드린 채 그것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온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지글거리는 빗물만 뱉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코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이미 손의 감각은 빗방울에 얼어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 당장 차의 바퀴에 손을 짓이겨도 괜찮을 정도였다. 5분 동안 온갖 방법으로 그것을 건드려 본 뒤, 다온은 방법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진인지 시체일지 모르는 저것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잠수 하듯 가슴팍에 귀를 쳐 박듯이 가져다 댔다. 선명한 심장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귀로 흘려 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기쁨의 탄성을 겨우 삼켰다. 그러곤 태동보다 희열을 주는 고동을 다시 확인했다. 심장이 뛰는 것이 확실했다. 그 후에도 다온은 하진 옆에서 온갖 부위를 비벼대며 겨우 데운 손가락으로 119를 눌렀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구급차를 불렀다. 



라운드


다온은 1인 병실 문 앞에서 15분을 기다렸다. 구겨진 채 반년을 보낸 셔츠 옷깃 끝을 애써 잡아당겨 세월의 주름을 펴보려고 애썼다. 구두 뒤꿈치를 고쳐 신고, 시계를 쳐다보며 10분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대화는 끊길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온은 문을 두드리고 병실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삐걱거리는 스프링 소리, 살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구두굽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문틈에서 새어 나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시트러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버건디 롱코트를 검정색 블라우스 위에 겹쳐 입은 여자가 그의 앞에 섰다. 그녀의 키에 비해 코트가 너무 커 블라우스 아래 쪽으로는 그녀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온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다온을 비집고 문 밖으로 나갔다. 다온은 그녀가 병실 복도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고 나서야 다온은 하진의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끝까지 인사를 안 하네. 그는 들릴 듯 말 듯 볼멘소리를 내며 하진에게 다가갔다. 


“여자친구야?”


다온은 손에 들고 온 과일 상자를 풀며 물었다. 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쳐도 여자친구가 오네. 다온은 탄식을 내뱉으며 부러운 기색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의 병상도 온갖 지인들로 북적일 때가 있었다.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우는 전 부인도 있었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이긴 경기만을 열성적으로 떠드는 동료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이겨도 병상에 누워야 할 시간이 늘어났다. 부상이 예정된 일상이 될 때부터 지인들은 직접 방문하기 보단 위로 메시지와 물건을 보냈다. 위로 메시지는 갈수록 밝아졌고 내용물도 점점 가벼워졌다. 퇴원이 가까워질 때만 관장이 종종 방문할 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 고기의 육질을 살펴 보듯 이곳저곳 주무른 뒤 곧이어 퇴원이 진행됐다. 다온은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하진의 병실을 살펴봤다. 연분홍색 색지로 화려하게 장식된 과일 바구니가 창문 쪽 벽에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그의 서랍 위에는 형형색색의 편지지와 각종 선물들이 위태롭게 쌓여있었다. 다온은 편지 무더기로 쌓아져 있는 탑을 보며 감정의 정수만이 뽑힌 껍데기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온은 자신이 들고 온 스티로폼 상자를 과일 바구니 사이에 끼워 넣고 오렌지를 꺼내왔다.


“경기 일정 맞추는 건 가능 하겠어?”


다온이 칼로 오렌지를 깎으며 하온한테 물었다. 공중파에서도 여러 번 출현한 종합격투기 선수가 무에타이 챔피언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시합 직전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커뮤니티에선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하진 측은 사고가 일어난 후 일주일 만에 유명 격투기 방송 채널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사건은 결코 저의 자작극이 아님을 맹세합니다. 최대한 빨리 재활을 끝내고 이번 챔피언 매치는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진은 교통사고의 가해자인 다온에 관해서도 말을 덧붙였다. 하진은 자신이 폭우가 내리고 컨디션이 안 좋아 로드워크를 일찍 끝내고 싶은 마음에 무단횡단을 했다고 말했다. 마침 응원 차 방문한 다온이 폭우로 인해 자신을 보지 못 해 일어난 사고라고 해명했다. 끝에는 자신의 불찰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 죄송하다고 말했다.


“저에겐 선생님이 우상이었어요. 링 밖의 사고로 제 평생 소원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하진은 다온의 손을 감싸 쥐고 그를 바라봤다. 오렌지를 깎던 칼이 미끄러져 과육에 박혔다. 즙이 안개같이 터져 나와 손을 적셨다. 다온은 칼에 손이 베일까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하진은 그의 손을 쥐고 놓지 않았다. 칼날이 점점 과일 안쪽으로 박혀 들어갔다. 과즙이 진득한 방울을 만들며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다온의 손엔 불규칙한 형상으로 뭉개진 과육과 과즙이 진득거렸다. 하지만 하진은 다온의 손이 더러워진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온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고 있을 뿐이었다. 다온은 불안한 환대에 들고있던 칼을 떨어트렸다. 그제야 하진은 다온의 손을 놓았다. 다온은 늘어난 입 꼬리를 위로 당기고 물었다.


“우리가 예전에 만났나? 내가 종합격투기 쪽은 잘 몰라서.”


“고등학생 때 초빙 강사로 오셨어요. 저희 관장님의 절친한 친구 분이라고 소개하셨어요. 그 때 가르쳐주신 하이킥은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다온은 강사로 전국을 떠돌던 5년 전을 되짚었다. 그 때는 그가 국내에서 무에타이 챔피언을 받은 후, 일본에 원정 경기를 종종 나갈 때였다. 그리고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사를 하던 때였다. 손님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종업원은 없다. 마찬가지로 수 백명의 아이들 중에 하진이 기억날 리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종합격투기를 하고 있지만, 저도 예전엔 무에타이를 계속 하고 싶었거든요.”


“종합격투기가 돈이 되지. 돈 되는 쪽을 해야 돼.”


다온은 그렇게 말하며 종합격투기로 넘어간 선수들을 떠올렸다. 한 때 종합격투기가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이 퍼지며 자신을 과신한 수많은 선수들이 종합격투기 쪽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바뀐 룰과 관절기에 적응하지 못 하고 대부분 이름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다온은 그 모습을 보고 종합격투기로 돈을 벌자는 생각을 접었다. 상념에 빠져있던 다온의 머릿속을 비집고 하진이 물었다. 


“지금도 관장님과 자주 연락 하시나요?”


다온에게 그 일은 단순히 서비스업일 뿐이었다. 아마 그 때도 자신을 고용해 준 측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했던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장의 안부를 묻거나 놀랍다는 등 가벼운 칭찬을 이어갔다. 선수 프로필과 과거 이력 등을 짜깁기해서 만들어낸 대답이었다. 하진의 기대를 부정하는 순간, 그가 경기를 취소할 것이 뻔했다. 하진과 싸우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다온에겐 경기를 치룰 상대도 시간도 거의 없었다. 이 경기는 킥복싱 경기로는 이례적을 많은 스폰서와 계약금이 걸렸다. 화려한 전적의 오래된 챔피언과 여러모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신예의 경기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른 분야와의 대결, 노련함과 젊음의 대결 등 사람들이 좋아할 것들이 모여있었다. 대중들에게도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교통사고 해명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학생 때의 우상과의 경기가 기대된다’ 라고 언급한 덕분이었다. 거기다 과거 다온의 KO승을 이어 붙인 영상이 동영상 사이트에 남아있던 덕분에 경기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와 더불어 걸린 돈도 늘어났다.    


“이번 경기 이후엔 내 체육관을 열려고. 체육관 인지도나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이번 경기는 나한테도 꼭 필요해.”  


다온은 고개를 숙인 채 하진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묵이 흘렀고 다온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온의 고개 위로 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요. 저희가 경기 하는 이유가 돈 말고 뭐가 있겠어요? 이렇게 화제가 되었는데 예정대로 진행 해야죠.” 


 다온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하진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이었다. 서로의 경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목적을 이룬 뒤의 대화는 공허한 아지랑이처럼 부유할 뿐이었다. 길지 않은 대화가 끝난 후, 다온은 뒷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그가 문을 닫기 직전에 하진의 말이 문틈을 타고 흘러나왔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와주세요.” 



5라운드



다온은 앞다리를 뻗어 킥을 날렸다. 종아리 근육으로 한껏 팽팽하게 당긴 발가락이 하진의 복부 근육에 닿았다. 하진은 허리를 틀었고, 다온의 발가락은 하진의 뱃가죽만 긁고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다온은 자신의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리를 접고자 했다. 노화로 인해 생긴 사각지대는 수많은 경험으로 이루어진 예측으로 덧칠했다. 다온에겐 몇 초 간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감각이 겹쳐진 것 같았다. 하지만 탄력성을 잃어버린 근육은 머리에서 예측한 미래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발을 회수하는 것이 예측된 미래보다 2초 정도 늦었다. 하진은 그 틈새 사이로 폭발적으로 튀어올라 다리를 잡았다. 다온은 골반을 밀어 넣고 틀어 발을 손쉽게 빼냈다. 그에겐 십 년 동안 반복해온 일이었다. 뒤로 물러선 다온은 자신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심판과 하진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온은 흉통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하진이 뻗는 주먹을 피하고 주먹을 쳐올렸다. 하진은 가드로 주먹을 막았다. 그리고 다온에게 또 다시 돌진했다. 팔이 뒤엉키는 거리에서 하진과 머리를 맞댔다. 하진의 눈을 마주했을 때, 다온은 폐를 감싸 쥐는 이 두려움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거짓으로 생매장한 자신의 치부가 아드레날린에 적셔져 폐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감이 척추를 긁어 올라가 가슴까지 도약했다. 다온은 그물에 걸린 맹수처럼 온 몸을 비틀며 발작했다. 그는 뒤엉킨 상태에서 하진의 머리를 흔들어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니킥을 몇 차례 날리고, 겨우 몸을 빼낸 하진의 뺨에 하이킥을 명중시켰다. 그가 평소에 하던 방식이었다. 얼굴을 맞은 하진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온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온은 자신에게 터지는 카메라 세례도, 환멸과 환호가 뒤엉킨 함성도 듣지 못 했다. 피부 아래에서 서서히 고여 드는 피멍이 주는 고통에 다온의 이성이 돌아왔다. 그는 이 경기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부축을 받으며 선수 대기실로 걸어갔다. 반대편에서 버건디 코트를 입은 여자가 걸어왔다. 그 여자는 좁은 복도에서 다온과 팔이 맞닿을 정도로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그 순간 엉킨 피딱지로 채워진 다온의 코를 비집고 독한 시트러스 향이 폐까지 도달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명치 부근에 ‘PRESS’라고 써있는 명찰이 부산스럽게 덜렁거리는 것을 봤다. 시큼한 냄새가 폐를 타고 올라와 심장을 쥐어짰다. 숨이 가빠진 다온이 관장에게 속삭였다. 


“관장님, 하진 씨 대기실로 갑시다.”


관장은 체면은 나중에 자기가 챙기겠다고 말하며 다온을 끌다시피 부축했다. 찢어진 배근육이 명치를 압박했지만 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지금 가야한다고!”  


관장은 다온의 눈빛을 바라본 뒤 한숨을 쉬었다. 그는 방향을 틀어 하진의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문 앞에는 5명의 청년이 몸을 구겨 넣듯이 벽을 이루고 서 있었다. 다온은 비키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문 틈 사이로 시큼한 위액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했다. 다온은 관장에게 빨리 ‘하진’을 검색해 보라고 소리쳤다. 잠시 뒤 관장의 스마트폰에서 하진의 음성이 들렸다.


“저의 팬 분들께 좋지 못 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저의 몸 상태는 교통사고 이후로 거의 회복되지 못 했습니다.”


다온은 관장에게 스마트폰을 건네 받았다. 하진은 대기실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하진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희 체육관 관장님의 협박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 폭언과 폭행으로 그의 앞에선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협박했습니다.”


화면이 잠깐 멈췄다. 뒤이어 흑백의 CCTV 영상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보행자 신호로 바뀐 후 사람이 뛰는 모습이 녹화된 영상이었다. 잠시 뒤 다른 CCTV 영상이 재생되었다. 세찬 폭우로 도로에 생긴 물웅덩이가 회백질 빛을 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 사이를 하얗게 번쩍거리는 세단이 화면 끝 쪽에서 서행하고 있었다. 동시에 사람의 상반신이 화면의 반대쪽 끝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 안으로 세단이 들어오자마자, 세단은 속도를 높였다. 사람 형상을 향해 화면의 반대쪽 끝으로 갈수록 속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모든 과정이 연속 이미지처럼 느리게 반복 재생되었다. 하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 교통사고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다온은 제가 있는 곳까지 저를 미행했습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고의로 사고를 냈습니다. 다온과 오랜 유착 관계였던 저희 관장님은 계획적으로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저의 커리어를 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협박하였습니다.” 


다온은 문 앞에 세워진 인간 바리케이트로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가 한 마디를 끝내기도 전에 턱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 



라운드



다온은 반원을 그리며 쓰러졌다. 기절하며 머리가 부딪혔는지 옆머리가 화끈거렸다. 그의 앞엔 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이나 뻗었던 거야?”


관장은 10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다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체육관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는 바닥에서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다온은 고개를 들고 체육관을 둘러봤다. 같이 스파링을 했던 청년은 이미 퇴근을 한 듯 보였다. 체육관엔 관장과 자신 밖에 없었다. 맑던 하늘은 어느새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부턴 라이트 스파링만 하는게 어때?”


관장은 목과 얼굴에 얼음찜질을 하며 다온을 쳐다봤다. 다온은 관장의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고개를 숙였다. 관장은 한숨을 내쉬고 목 뒤를 찜질 팩으로 비볐다.


“스파링은 실전처럼 해야지.”


30분동안 진행된 얼음 찜질이 끝나고 다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한 걸음도 쉽게 뗄 수 없었다. 결국 다온은 관장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관장이 글러브를 입에 갔다가 떼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는 수신호였다. 다온은 관장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자고 말했다. 관장은 다온의 다리와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다온은 관장의 담배를 거절했다. 관장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완벽하게 반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너 위험할 뻔 했어.”


다리를 들어 킥을 찰 땐 한 발로만 몸을 지탱해야 한다. 킥을 차는 발에 힘을 가할수록 균형은 쉽게 위태로워진다. 그 순간 다리가 걸리면 몸 전체가 반원을 그리며 넘어진다. 온 몸이 폭발하는 난타전에선 어떤 부위도 넘어지는 몸을 지탱하지 못 한다. 완벽한 반원일수록, 충격은 모두 머리로 전달된다. 


“내가 왜 쓰러진 거야? 난타전까진 잘 따라갔던 거 같은데.” 


관장은 늘어진 다온의 손을 잡아 올리고 턱을 눌렀다. 


“후반에 가드가 내려 갔어. 우리 나이면 5라운드까지 끌고 가기 힘들다. 하진은 20대 초반이고 너는 30대야.” 


 다온은 관장의 빈정거림에 입을 몇 번 움찔거렸다. 터진 입술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관장의 담뱃갑을 뺏었다. 마지막 담배를 입에 꼬나 물고 빈 담뱃갑은 관장에게 건넸다. 그도 담배 한 개비 적게 피운다고 돌이킬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스파링을 뛸수록 근육이 찢어지고 있었다. 근육 사이로 누런 고름과 함께 회환이 차 올랐다. 몸이 노력을 완전히 배신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월을 먹고 비대해지기만 한 전적은 그를 끊임없이 링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대회 나갈 수 있겠어?” 


관장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다온은 그의 어깨를 잡은 팔을 쳐내고 주먹을 날렸다. 그가 링 위에서 평생을 해오던 반격이었다. 깜짝 놀라 휘청거린 관장은 이내 팔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다온은 가드도 올리지 않은 채 그를 초점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관장은 치켜 올린 주먹을 어찌하지 못 한 채 빈 담뱃갑을 다온에게 구겨 던졌다.


“다온아, 하진 쪽에 연락해서 이번 대회 포기한다고 말해라. 그 정도 파이트머니는 강사로 몇 년만 뛰면 충분히 모을 수 있어.” 


 다온은 관장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만 바라봤다. 관장은 그의 침묵에 화가 난 듯 했다. 관장은 다온을 향해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몇 번 반복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할 거면 가드라도 올리든가.”


 체육관을 나서며 관장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링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라운드



거세진 빗방울이 차 유리창을 때렸다. 머릿속이 포말로 가득 찼다. 생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올랐다 터지길 반복했다. 2년 전부터 심해진 두통이 두개골 채로 머리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하진의 경기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온은 자신이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생각했다. 경기를 취소하자고 할 것인가? 그럴 순 없었다. 그는 이미 이 경기 이외에 정해진 날짜까지 양육비를 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진이 머무는 체육관에 거의 도착한 다온은 신호등 신호에 멈춰 섰다. 신호를 기다리며 다온은 자신이 이 곳까지 온 이유를 되짚었다. 그는 오직 하진이 스파링 연습을 하는 모습을 대면하고자 했다. 하진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스파링 연습을 하는 지, 한다고 해도 상대편 선수에게 그 모습을 쉽게 보여줄 지 알 수 없었다. 다온은 체육관에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고 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측된 방문은 거절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침입은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다온은 하진의 과거 이력과 경기 비디오를 끊임없이 분석했었다. 하진이 예전에 킥복싱을 했다라는 것과 종합격투기에선 이례적으로 하이킥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이킥은 얼굴을 가격할 수 있지만, 무게중심이 쉽게 무너져 종합격투기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경기 영상을 100번 이상 봤을 때 하진의 하이킥이 자신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500번 이상을 봤을 때 다온은 하진이 자신을 존경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하이킥을 매 경기에 넣을 이유가 없었다. 한편으론 그 믿음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불확실한 맹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에 떠도는 이 불명확한 믿음을 직면하고자 했다. 하진의 스파링을 눈 앞에서 보면 이 믿음에 확신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존경한다면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충분히 존중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진이 잠깐의 열기를 위해 그의 마지막을 처참하게 끝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수 만 갈래로 부서진 이미지 사이에 허황된 믿음을 얼기설기 꿰매 만들어진 ‘하진’은 그의 전적을 충분히 존경했다. 그를 보며 격투가로서의 꿈을 꾸었다. 그가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다온은 ‘하진’에게 할 말을 중얼거리며 어지럽게 흘러내리는 폭우를 지나가고 있었다. 도로에 고여있는 빗물과 폭우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빗물이 웅덩이에서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빗줄기가 짓눌린 어둠에 회백색의 소묘를 그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폭우를 뚫고 사람의 형태가 나타났다. 빗물이 양 갈래로 갈라지며 사람 형태의 곡선을 그렸다. 다온은 저 형체가 하진인 것을 확신했다. 다온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그가 링 위에서 평생 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찢어진 다리 근육은 말을 듣지 않았다. 차는 굉음을 내며 폭우 속을 질주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죽였다. 다온은 그 순간 ‘하진’이 죽었음을 확신했다.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차 경적 소리만이 폭우와 뒤엉켜 도로에 흩뿌려졌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뛰어내릴 곳을 찾고자 여행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