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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May 19. 2023

날갯죽지

소설 연습

 


 숨을 내쉴 때마다 날갯죽지가 꿈틀거린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돋아날 듯 격렬하다. 나는 손바닥으로 날개뼈를 지그시 눌렀다. 얇은 피부 아래에서 넓적한 뼈가 펄떡거린다. 가볍게 튕겨 나온 손으로 등을 쓰다듬었다. 등을 부드럽게 유영하던 손에 뼈마디가 걸린다. 뼈마디를 따라 등의 중앙에 얕은 골이 파여있다. 골의 끝엔 엉덩이뼈가 걸쳐있다. 허리를 따라 옆으로 가니 치골이 만져진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어깨가 들썩거린다. 그 순간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고개를 드니,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손으론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통화를 하는 중이다.

“그러면 나 다 씻었으니까 이만 잘게.” 

통화가 거의 끝나간다. 그녀는 통화를 끝낼 때쯤이면 항상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도 사랑해 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스마트폰을 향해 애교 섞인 입술소리를 낸다. 

“예배 끝나면 지하 주차장으로 갈게.”

그녀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침대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내 팔뚝을 찰싹 치며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하지 말라니까.”

나는 모른 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내 표정을 보더니 더 세게 팔뚝을 쳤다. 제법 매워 몸을 움찔했고, 그녀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곤 몸을 기대 나를 눕혔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등 간지럽히는 거. 이번엔 진짜 위험했어.”

그녀는 간지럼을 정말 잘 탔다. 신기한 것은 다른 데는 별 반응이 없는데, 등만 유독 간지럼을 못 참는다는 것이었다. 뭘 하고 있던 등에 손이 닿기만 하면 꿈틀거렸다. 몸이 원체 말라 움찔거릴 때면 뼈마디가 슬쩍 보인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등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물었다.

“보통 등이 제일 덜 예민하지 않아? 여긴 아무리 만져도 안 익숙해지나 보네.”

“보통 등을 만지진 않아! 네가 특이한 거야.”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가 내 양 손목을 붙잡더니 몸을 뉘었다. 대자로 뻗은 자세 위에 그녀는 그대로 몸을 밀착시켰다. 얼마 전부터 주짓수를 배운다더니 제법 단단하게 몸을 조인다. 나는 고개를 겨우 돌린 채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교회 꼭 가야 해? 나 누나랑 가고 싶은데 있는데.”

“교회는 못 뺀다니까.”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얼굴을 간질이는 그녀의 머리칼에서 나는 독한 냄새에 코가 찡할 정도의 독한 냄새가 난다. 나는 뒷머리에 코를 비비적거리며 물었다.

“20년 넘게 다녔다며. 그분은 질리지도 않나 보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처음에 일요일에 가게에 못 온다고 했을 땐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마 다른 가게에 가나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날 밤, 그녀가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거기엔 그녀의 모습이 아래에서부터 찍혀 있었다. 시끌벅적한 환호성과 오열하는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리고 있었다. 방송용 화장을 한 그녀는 한 손엔 마이크를, 다른 손은 공중에 뻗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빠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집사 되고 찬양 인도 처음 해봤어.”

그녀는, 화면엔 오만상을 다해 찡그린 모습과 반대로, 해맑게 웃으며 영상을 보여줬다. 집사가 뭐길래 이렇게 신났냐고 물으니 높은 자리라고 했다. 애들 관리도 하고 사람 모집도 하는 팀장이라고 했다. 우리 박스 담당하는 실장 형 같은 거냐고 물으니, 누나는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며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야, 룸에서도 이렇게 해 봐. 팁 존나 받겠는데.”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내가 교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었다. 특히 호스트바 단어를 섞어 말하면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며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는 그러게 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어느새 몸을 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녀가 제풀에 지쳐 내려와 옆에 누웠다. 그녀는 내 쪽으로 누운 채 말했다. 

“너흰 주말에 바쁘지 않아?”

“오늘 밤이 피크지. 일요일 밤엔 많이 안 와서 일찍 접어.”

“의외네. 교회 가서 그런가?”

그녀는 침대 끝으로 굴러가더니 선반에 올려둔 가방에 손을 뻗었다. 그녀는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휘저었다. 나는 일어서서 가방을 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룸에서 손님이 놓고 간 가방을 가져다드린 선배가 뺨을 맞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손님은 뺨만이 아니라 머리통 가슴, 정강이 가릴 곳 없이 때렸다. 놔두면 지갑에까지 손댈 놈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는 세 번 만에 가방을 낚아챘다. 

“그래? 준성이 피크 타임까지 빼서 와 준거니 팁 더 줘야겠네.”

블랙 엠보싱에 샤넬 로고가 박힌, 리세일가가 800만 원이 넘는 가방이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 그녀의 손엔 5만원 두 장이 들려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광대를 올려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그녀는 팁을 많이 주는 쪽은 아니었다. 하지만 줘야 하는 건 정확하게 주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팁 받았으니까 자기 전에 누나 고민이나 들어줘.” 

그녀는 고민이 참 많았다. 그리고 고민 대부분은 남을 욕하는 것이었다. 저번이랑 같을 때도 있고 아예 새로운 사람이 주인공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든 간에 참 살벌하게 물어뜯었다. 그녀는 남 욕을 할 땐 항상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팔을 손을 들어 그녀를 안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갈 곳 잃은 팔을 그녀의 어깨에 불편하게 걸쳤다.

“아까 통화한 사람 어때?”

“목소리만 듣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보통은 그녀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거나, 같이 욕해주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무슨 의도로 질문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 얘랑 결혼할 거 같아. 같은 교회 청년부 소속인데, 물어봐도 교회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만 하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시간을 끌기 위해 미소를 지은 채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사진 보여줄까? 아저씨같이 생기긴 했는데 귀여운 구석이 있어.”

그녀는 신이 난 듯이 몸을 일으켜 가방에 손을 뻗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급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누나, 전에도 말했잖아. 함부로 사진 보여주고 다니면 안 된다고.”

나는 그 전에도 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노래 부르는 영상 보여줄 때였다. 나는 그녀의 양 손목을 붙잡은 채 말했다.

“누나, 다른 데서 이런 사진 보여주면 안 돼.”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입을 뗐다가 한숨으로 말을 삼켰다.

“실물보다 너무 못생기게 나왔잖아. 사이킥 조명에 아래에서 찍으니까 진짜 잘 안 나온다.”

그 말에 한참을 삐져서 사과하느라 애먹었다. 룸 밖에서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은 손님이나 나나 위험했다. 그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은 형이었다. 복도에서 개처럼 처맞았다는 그 형이며 나에게 담배를 가르쳤던 형이다. 그는 담배 피울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30 넘어선 이 일 쪽팔려서 못 한다. 무조건 보험 들어놔야 해.”

“보험 들 돈 있으면 내 돈이나 갚아요.” 

“조만간 대박터져서 다 갚는다. 구찌 손님 (팁 많이 주는 손님을 이르는 말) 찾았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형이 룸에도 못 들어가 TC도 못 벌고 다니는 건 박스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였을까. 그가 얼굴이 터졌던 날의 그의 30살 생일날이었다. 그를 때렸던 사람은 그의 오랜 지명 손님이었다. 생일 축하 겸 선물 좀 달라고 불렀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형의 지명 손님이었다. 그러니 서로 알고 지낸 지 4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보름 뒤 그 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박스에서 사라졌다.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일이니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차피 밀린 TC도 안 줘도 되니 실장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방에 초이스를 보러 들어갔다. 그곳엔 그 지명 손님이 앉아 있었다. 핏발 어린 눈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당연하게도 그 방에선 나만 선택되었다. 

“그놈 지금 어딨어?”

자리에 앉자마자 그 손님은 나를 노려보며 속삭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우리 박스도 지금 찾느라 혈안이라고 말했다. 박스 안 사람들 모두한테 돈 빌려놓고 잠적하였다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디서 뺑이쳐. 감싸다 너도 죽는 수 있어.”

그 손님은 양주를 한 잔 따르더니 입을 뗐다. 몇 년 동안 나눈 카톡, 전화, 선물 등 모든 내역을 가족들과 회사 메일로 모두 보냈다고 했다. 그중 상당수는 법인 카드로 썼기에 대대적인 내역 조사가 시작되었다. 아내는 곧바로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이전부터 준비하며 증거를 모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자, 이제 알겠지? 걔 주소 말해.”

어쩌라는 것일까?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은 뒤 소감이었다. 왜 그 형이 벌인 걸 나에게 따지러 오는데.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으며 사실대로 대답했다. 모른다고. 지금까지 그 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건 다 거짓말이었다고. 

후두부로 오는 재떨이를 팔로 겨우 막았다. 불로 지진 듯 팔 전체가 욱신거리고 뜨거웠다. 나는 팔을 부여잡고 문으로 뛰쳐나갔다. 테이블 넘어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등 뒤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문이 열렸다. 실장 형이 나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복도가 가득 찰 정도로 거대한 덩어리 두 명이 서 있었다.

“그거 깨면 그대로 특수폭행이에요. 합의 없이 깜빵이라고.”

실장은 그 손님의 손에 들린 양주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아있던 양주가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합의금 낼 돈으로 흥신소 가는 게 확실합니다. 괜찮은 데 소개시켜줄테니까 여기 찾아가 보세요.”

실장은 발로 쏟아진 안주들을 밀어내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손님에게 태연스레 걸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명함을 꺼내 그 손님의 손에 쥐어졌다. 동시에 손에 쥔 양주병을 자연스럽게 낚아챘다.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덩어리들이 손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복도 밖으로 끌려나갔다. 실장은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초이스 보던 애들이 말해주더라. 쟤 며칠째 돈도 안 내고 돌아다닌다고. 혹시나 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그럴 거면 아예 들여보내질 말아야지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멈췄다. 애초에 증거를 잡기 위해 날 넣었을 것이다. 실장은 나를 훑어보더니 명함을 하나 건넸다. 흥신소 명함이었다. 

“너도 그 새끼한테 돈 좀 빌려준 거로 아는데, 찾으면 받을 돈에서 반 줄게.”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실장은 덩어리를 따라 복도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사진 봤다가 룸에서 마주치면 나 어떻게 해? 나 표정관리 못 하는 거 알잖아.” 

나는 입술을 죽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내 대답에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네가 말해줘야지! 룸 근처에 얼씬만 해도 개 같은 놈, 죽여버려야지.”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며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그녀는 천장에 손가락을 뻗은 채로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저었다.

“결혼 준비하느라 바쁠 거야.”

“어느 정도 이야기 나왔나 보네.”

“부모님 인사는 드렸으니까. 나이도 찼고 서로 뻔히 사정 알겠다. 꾸물거릴 이유가 없지.”

한참을 휘적거리던 그녀는 만족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

“넌 이 일 언제까지 할 거야?”

“대학 등록금이랑 생활비 갚으면.”

“거짓말 말고. 너 나 처음 만날 때도 똑같이 말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레퍼토리 5개는 준비하고 돌려쓰라고. 너무 적으면 겹칠 위험이 있고, 너무 많으면 배우도 잘 기억 못 한다고. 그 형이 항상 하던 말이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너 이 일이랑 잘 안 어울려.”

“다음 주 일요일에 말해줄게.”

“몇 번 말해! 나 일요일에….”

그녀는 말을 중간에 멈췄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담배 피워도 돼?”

“상관없어.”

“누나 담배 안 피우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냄새 안 나게 화장실에서 피고 와.”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부스럭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닫은 채 담배를 피웠다. 불을 켜면 환풍기도 켜질까 봐 불을 켜지 않았다. 타들어 가는 담배 불빛이 타일에 번들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밖으로 나와보니 그녀는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날갯죽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죽 아래 단단한 뼈가 얕게 움찔거릴 뿐 반응이 없다.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그녀의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X준우, 010-4256-...” 

흥신소에서 요구했던 것은 간단했다. 이름이랑 전화번호만 있으면 웬만한 건 다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주로 다니는 장소까지 특정했으니 일주일 내엔 무조건 나온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집어넣은 뒤 그녀의 옆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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