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어플 사기를 당했습니다
공기가 부스러지기 시작한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두 번째 사기를 당했다. 첫 번째 사기를 당하고 1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내가 처음 사기를 당한 날은 눈이 내리던 1월의 중순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콧속에 냉기가 끈적거렸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문자로 통보받자 숨이 막혀왔다.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는 몇 차례에 걸쳐 나한테 돈을 보낼 것을 요구했지만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밤늦게 몇백만 원의 돈을 요구받았을 때 생각이 든 것은 사고였다. 연초에 갑자기 그 정도 돈이 필요한 것은 음주운전 인명사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합의금이냐고 되물었지만, 누나는 말을 돌릴 뿐이었다. 나는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보냈고 30분 뒤에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총 800만 원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만남 앱에서 환전 사이트로 유도하고 유료 환전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는 돈을 얻을 수 있다는, 로맨스 스캠과 통신금융사기가 결합한 사기였다. 몇 달 후 누나는 겨우 내가 송금했던 돈을 보냈고 그 후에 나는 더는 피해액 환수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금융사기의 경우 어떠한 형태의 보상도 받지 않고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고 금액으로 보아 변제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 분명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돈을 돌려받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검거되었던 사기 범죄의 구조 분석에 빠져 살던 철없을 때의 지식이 이른 체념을 만들어냈다. 돈을 움직이기 전에 미리 설명해달라고 당부를 했으니, 더는 내 주위의 누구도 당할 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만남 앱에 회원가입을 했고 한 여학생과 연결되었다. 유학 중이며 곧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여러모로 평범했다. 기존 사례에서처럼 과장된 문구를 쓰거나 능력을 과시하지도 않았고 성적으로 접근하지도 않았다. 대화를 여는 것도 내가 유료 재화를 냈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대화가 잘 진행되었고 그게 이상했다. 매력적인 사람이 널린 이 앱에서 나랑 대화가 잘 될 이유가 있을까. 평범한 프로필에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굳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에 이런 의심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사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돈을 급하게 보낼 일이나 성희롱/성폭행 관련 고소를 당할 수 있는 언행과 분위기를 주의하기로 했다. 그녀는 한국어가 약간 어색해서 한국에 최근에 언제 방문했는지 물었다. 서류 때문에 몇 년 전에 한국에 방문했다는 말에 예전부터 외국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학생 때 외국인 응대나 해외 거주 중인 한국인들과 활동을 자주 했는데, 외국에 어린 나이에 간 한국계 이민자 중에는 한자어나 조사 사용이 약간 서투른 때도 있었다. 첫날에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갔던 것에 비해 이튿날부터는 일상적인 대화가 좀 더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녀는 주로 귀국할 짐을 싸거나 운동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떠날 준비를 하는 유학생이었기에 일정에 관한 정보가 많이 없다는 것에 이해가 갈 수 있었다. 자연스레 내 일상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취미, 여행, 일상 등 평범한 이야기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큰일이 났다고 했다. 내용은 예상했던 시나리오보다 허술했다. 사이트에 돈을 맡겨놓고 한국에서 빼려고 했는데, 사이트의 문제로 인해 한국 계좌로 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 계좌가 없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맥이 풀리는 결말이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걸 말한다고 해서 좋을 게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금융사기의 경우 공신력 있는 기관의 명칭이나 용어를 사용하고 기본적인 자료 조사로는 피해자가 확증할 수 있게 설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계획은 사이트 링크를 확인하고 끝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곧바로 못 도와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에 소중한 사람이 이렇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서 추적하고 있다고 말하자 대화는 끝났다.
사기 범죄 대상이 되었을 때 제일 좋은 것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도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걸 싫어한다.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아무 말 없이 사라져야 했다.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으면 좀 더 동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외로웠던 나에게 질문과 관심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운동을 건너뛰었을 몸 상태에도 매일 운동을 했고, 시간을 더 들여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갈지 고민했던 전시회도 갔다. 나는 그녀에게 더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고 가고 싶었다. 사기 범죄를 조사했을 때, 피해자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나도 믿고 싶었다'였다.
그녀가 정말 한국에 돌아오는 유학생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감정은 서비스직을 하던 때보다 진한 농도의 감정이었기에 닦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씻어도 번들거리는 기름이 손에 남았다. 그녀는 몇 시간 뒤 같은 계정으로 심심하다는 말을 올렸고 수많은 사람이 자기랑 보자는 댓글이 달렸다. 격정적인 감정이 들지도 않고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도 않았고 돈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덕분에 며칠 동안 더 좋은 하루를 보냈고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났었다.
방금 또 한 명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장문의 문자와 함께 메신저로 연락하자고 한다. 시대에 따라 형태가 바뀌어도 이런 일들은 역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