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는 무신론자
그동안 이슬람 국가는 서구권 중심의 미디어에서 상당히 편협한 시선과 제한적인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나 역시 중동 분쟁, 난민, 종교 갈등과 같은 카테고리에서만 이슬람 국가를 접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튀르키예 여행은 귀한 기회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하루빨리 미지의 이슬람 문화권을 온 감각으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나름 국제고등학교에서 세계문제, 국제정치, 국제법을 개괄적으로 배웠고 중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곳을 향한 나의 무지는 덜 할 것이라는 믿음 아닌 믿음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인종과 종교를 잣대로 두고 반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일종의 오만함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랍인과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움츠러들고 말았다. 찰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두려움 내지 경계심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특정 인종을 향한 즉각적인 거부감은 나의 무의식과 무지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고 폭력적인지 드러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시내의 중심에 있는 탁심 광장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광장에 도착하자 완전히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둥그란 돔과 첨탑의 탁심 모스크 아래로 튀르키예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슬람 사원이었다. 인간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를 모시는 종교 건축물 고유의 경건함과 성스러운 분위기는 실로 대단하다. (필자는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성 안에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에 갔을 때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바로 신을 믿을 뻔했다.) 모스크의 웅장한 분위기에 금방이라도 압도될 것 같았다. 이외에도 돼지고기를 찾아볼 수 없는 메뉴판, 히잡을 쓰고 있는 여성들, 예배를 보기 전에 몸을 청결하게 하는 공간인 세정대, 의상부터 건축까지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여기가 무슬림의 동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결의 ‘다름’이었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알 수 없는 남자의 고함소리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거쳐 동네에 울려 퍼졌다. 순간 섬뜩한 기분에 걸음을 멈추었다. 낯선 곳에서는 경각심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어둠 속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는 기계소리와 함께 들렸으니 말이다. 잔뜩 움츠러든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더니 친구는 한참을 웃었다. 이슬람 국가에 여행 왔으면서 하루 다섯 번 울리는 ‘아잔’ 소리를 무서워하면 도대체 어쩔 셈이냐는 친구의 말에 그제야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오지선다형 시험을 위해 머릿속에 욱여넣었던 세계지리 수업 내용을 떠올렸다.
아잔(Azan)은 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이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이슬람신도는 의무적으로 매일 5번 예배를 드려야 한다.
나를 이스탄불로 초대한 장본인이자 그곳에서 1년 간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는 튀르키예에 지내면서 무슬림을 향한 편견과 아집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했다. 이슬람 문화권에는 큰 종교 행사가 두 가지 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식사, 흡연, 음주, 성행위 등을 금하는 기간인 ‘라마단’과 양을 도축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쿠르반’이다. 라마단의 목적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다 같이 굶주림을 경험하기 위함이고, 쿠르반은 굶주린 이웃들이 없도록 자신의 자산과 음식을 나누기 위한 행사다. 가난한 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가 질 무렵 모스크 한 켠에 돈을 두고 가는 문화도 있다. 당연히 거의 모든 종교가 베풂과 사랑을 중시하겠지만 그동안 이슬람을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상으로 강하게 인식해 왔던 나에겐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 이슬람 문화와 중동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단순히 ‘편견’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내전과 전쟁, 독재와 아랍 민족주의, 폭력과 빈곤, 여성 인권 침해와 탄압. 중동의 현주소를 논할 때 이 단어들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대충 들여다보기만 해도 무슬림과 이슬람을 향한 적대심과 의구심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이들에게 묻고 단순히 사상과 민족의 문제로 여기기엔 모호한 부분이 있다.
모든 것에는 단연 여러 층위가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일례로 서구를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개편되는 동안 근대 중동은 상당히 무력한 위치에 놓여있었으며 기나긴 피식민의 역사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지금의 이슬람 국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많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동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서 태어났을 뿐인 사람들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과 무조건적인 차별은 멀리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항에서처럼 ‘나’의 뒷걸음질은 그저 오해와 불통의 골만 계속 깊어지게 할 뿐이니 말이다.
다음 날, 가까스로 시차에 적응한 탓에 눈을 떠보니 꽤나 날이 밝아있다. 아잔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퍼진다. 하루에 다섯 번씩 울려 퍼지는 이 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부지런히 기도해 왔을 사람들. 아마도 주변인의 평안과 사랑 가득한 평생을 빌었을 사람들. 그 사람들의 도시를 누비면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들의 꾸준한 기도가 향하는 곳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무신론자다. 제대로 종교를 가져본 적도, 신실한 믿음을 지녀본 적도 없으니 내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 믿음 때문에 테러나 전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평화로운 기도실의 풍경과는 상반되어 당황스러울 뿐이다.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에 덩달아 기도라는 것을 흉내 내본다. 진실된 소망을 담은 채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박애와 사랑을 논하는 언어만으로 존재하길, 이번 여행이 내 선입견에게 작별을 고하는 기회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