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에벌린이 갑자기 맞닥뜨린 멀티 버스 우주. 전 우주에 걸친 악마적 존재 ‘조부투파키’를 물리치기 위해 다른 우주에서 전사가 왔다!
미국에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벌린은 국세청에서 조사를 받는 중에 이 우주의 전사와 마주친다. 과거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갈라진 모든 멀티버스의 에벌린을 찾아다니는 전사. 전사가 있던 우주의 에벌린은 멀티버스 우주의 또 다른 나와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초우주적인 존재 조부투파키를 만들어 낸다. 조부투파키는 전 우주를 다니며 에벌린을 죽여왔다. 왜냐하면 조부투파키를 막아설 유일한 인물이 에벌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세탁소를 하는 우주의 에벌린 차례였던 것. 과연 에벌린은 조부투파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멀티 버스 우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이 설정은 영화 터미네이터네! 이걸 깨달은 순간 얼마나 웃기던지.
처음에 전사가 갑자기 립밤을 먹길래 그게 폭탄이 되나 했더니 바지에 오줌을 싼다던가, 팔을 부러뜨린다거나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하면 다른 우주와 연결되고, 그 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능력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렇다 이건 또 영화 메트릭스, 혹은 더 원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다른 우주와 연결하기 위해 온갖 행동을 하는데, 복사기 위에 벌거벗은 엉덩이를 복사하는 장면도 있다.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건데!) 아 진짜 웃겨 죽는다. 아무튼 우주 전사가 생각하기에 이 우주에서 세탁소를 하는 에벌린은 지금껏 실패만 해 왔기 때문에 the one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국세청 직원이 세탁소에 왜 노래방 기계가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에벌린은 자기 계발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기 계발도 다 실패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에벌린이야 말로 그 모든 능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놀라운 논리인 거다! ㅋㅋㅋ
라따뚜이, 홍콩 무술 영화들, 특히 성룡의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등이 패러디된다. 소시지 손가락을 갖게 되는 우주는 으아- 자그마치 멀쩡한 손을 가진 유인원들을 소시지 손가락 유인원들이 학살했기 때문이다! 으아~! 특히 새끼손가락에 알통이 생기는 장면은 정말 미치도록 웃겼다. 하여간 이 영화에는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영화들의 향기가 묻어있다. 이건 아는 만큼 보이겠지? (많이 찾은 분들 존경!)
마침내 조부투파키가 에벌린의 딸 조이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름도 조부슈크림, 조부츄바카... 아, 조부투파키 이게 젤 웃기다 이걸로 하자. 하며 만들었을 거다. 결국 언제나 소란스럽고 바쁘기만 한 엄마, 딸을 부끄러워하고 딸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려는 엄마. 그런 엄마가 딸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딸은 다른 우주를 뒤져가며 그렇지 않은 엄마를 찾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딸과 맞짱 뜨다가 패하고 멀티버스 유니버스에서 하나씩 죽어갔다. 그러면서 점점 절망하는 딸은 모든 우주를 소멸시킬 베이글을 만드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모든 멀티 버스를 베이글에 집어넣어 소멸시키는 게 목표다. 아니 난데없이 무슨 베이글? 하겠지만 진지하게 진짜 베이글이다. ㅋㅋ 하지만 세탁소 에벌린은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딸을 그 파괴의 베이글에서 끄집어 내려한다.
온갖 우주에서 에벌린은 셰프, 경극 배우, 무술가, 청소부 등등 온갖 직업으로 살고 있다. 심지어는 문명이 발생하지 않은 우주에도 있다. 그곳에서 에벌린은 황무지뿐인 세계에 돌멩이로 있다. 곁에는 나란히 딸 돌멩이가 있고. (하지만 아빠 돌멩이는 없다!) 엄마는 각성했지만 딸은 자신을 소멸시키려 베이글로 향한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딸을 붙잡는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에벌린에게 그랬듯 손녀를 떠나보내라 하지만 에벌린은 결코 딸을 버리지 못한다. 돌멩이가 되어서라도 그렇게 딸 곁에 있겠다고 했을 때 어찌나 울컥하던지. (그러니까 온 우주를 뱅글뱅글 돌았지만 딸과 엄마 이야기였던 것!) 마침내 딸 돌멩이가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엄마도 뛰어내린다! 그리고 나는 이 대목에서부터 주책없이 눈물을 마구 흘리기 시작한다.
소멸하려는 딸을 구해 내려는 에벌린. 이런 에벌린을 막아서는 이들을 물리칠 때 쓰는 무기는... 아 이 장면은 정말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웃느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딸은 떠나려 하고 엄마는 마침내 딸을 놓아준다. 나도 에벌린의 심정이 되어 딸을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얼마나 답답하던지! 과연 조이와 에벌린은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딸이 말한다. 모든 것은 헛되고 죽을 것이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둬라.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그래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살아갈 것이다. 몇 번이고 사랑하는 딸이 있는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체인지 링이 생각났다. 소설 속에서 엄마는 죽은 아들을 부여안고 말한다. 나는 몇 번이고 널 낳을 거야!)
웃다가 울면 똥X멍에서 피가 나려나? 실컷 웃다가 마지막에 느닷없이 감동으로 두드려 맞고 정신없이 꺼이꺼이 울었다. 이건 딸 가진 아빠라 더 크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정말 이렇게 무례하고, 이렇게 정신없고 이렇게 소란스러우면서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영화는 혼내줘야 한다. 큰 상을 줘서 내쫓아야 한다!
베이글!
영화에서 주인공이 선택을 할 때마다 화면이 유리처럼 쪼개진다. 멀티 버스다. 이 멀티 버스 즉 다중 우주란 양자역학을 다루면서 나온 개념이다. 양자 얽힘을 설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우주가 분기되는..... 여기까지 하자. (더 하면 위험해진다. 내가...)
오래전 나는 16살짜리 남자애가 납치되는 영화 시놉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 남자애들이 어떤가 하는 인류적 지식을 배경으로... 시놉에서 유괴범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니 아들을 납치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야이 미친 새끼야!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지금 전화하는 거 누구야? pc방 알바야? 학원 형이야? 너 우리 아들놈한테 말해. 너 들어오기만 해. 죽는다고! 혼날 줄 알라고! 이젠 별 지랄을 다 해요!”
그러자 이번엔 유괴범들이 아빠에게 전화한다. 아빠가 말한다.
“아이구 잘하셨어요. 개는 고생을 좀 해봐야 해요. 그리고 아들한테 이 말 좀 전해줘요. 아들아 잘됐다. 너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는데. 너 유괴된 동안 엄마랑 제주도라도 다녀와야겠다. 잘 있다가 와라. 하고요. 아이고 고생하십시오.”
그리고 유괴범들은 16살짜리 남자애가 얼마나 골 때리는지, 얼마나 사고뭉치인지 진저리를 치고 자중지란에 빠져서 어떻게든 집으로 되돌려 보내려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엣원스에서 딸 조이가 만일 아들이었다면 감동적이지 않았을 거다. 이 모든 사단이 아들의 고민 때문이라면 엄마는 십중팔구 그녀가 가진 무술 실력으로 흠씬 패줬을 거다.
“으이구 못 살아! 너 땜에 온 우주가 고생이잖아! 온 우주가 난장판이잖아! 으이구! 너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이거 다 니가 다 치워! 알았어?!”
내가 아들 출신이라 그런지 이런 영화를 구상할 때 이런 역할을 남자 애가 하면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감동적인 분위기가 잘 안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런 역할은 늘 딸이다. 딸 낳은 아빠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딸이 힘들어하는 고민을 풀어놓으면 일단 눈물부터 나니까.
예전에 보일러 룸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 남자 주인공이 딱 그랬다. 아빠와의 관계 때문에 그걸 되돌리고는 싶은데 계속 어긋나기만 한다는 식의 인물로 나왔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 보면 감정 이입이 잘 안 된다. 주인공인 아들이 도리어 좀 병신 같다. 진작 말을 하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주인공이라는 자식이 좀생이 같이. 하면서 공감이 잘 안 됐었다. 이 영화도 조이가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들 기르는 엄마들은 그래도 똑같이 애달파할지는 모르겠다. 엄청 영화 보고 감동의 물결이었는데 아들을 대입해서 생각하니 금방 감정이 차갑게 식는다. 아들도 뭐 나름 자기 몫이 있네.... 세상의 아들들도 파이팅. 고민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