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glish Patient
“말에는 마법이 있어.”
전 여자친구는 내게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 말은 내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리고 멜러도 그렇다.
벌써 30년 전에 나온 영화였다. 이제 겨우 보게 됐다. 이 영화는 그 시절 굉장한 유명세를 누렸지만, 나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마침내 이 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나는 이 장르에 대해서는 참 무심하구나 하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잉글리시 페이션트> 나는 별로 재미없었다. 끝.” 이렇게만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이 영화에 흥미를 못 느끼는가? 그것은 대체로 이 영화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대사를 비틀어 말하자면 나의 “심장은 차가운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만 이 사랑의 우여곡절을 그나마 이해할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정체불명의 화상 환자 알마시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간호사 한나는 그를 폐허가 된 수도원에서 돌보며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1> 만남
제프리 부부는 사막으로 알마시 일행을 찾아온다. 제프리의 아내 캐서린은 알마시의 책을 읽어봤다고 말하고, 캐서린에게 끌리는 알마시는 괜스레 퉁명한 표정을 짓는다. 캐서린은 알마시가 가지고 다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왕비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왕비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미래가 된다. 서로의 감정을 알기 전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조바심을 내는 남자의 마음을 알마시는 퉁명스러운 무표정으로 표현한다.
<2> 재회
카이로의 시장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우연히 마주치는 두 사람. 하지만 어색하기 그지없는 알마시의 표정에서 캐서린은 그의 설레는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 왜 따라오냐고 묻는다. 우연이라고 우기는 알마시. 하지만 결국 일부러 따라왔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춤을 추는 내내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이런 순간을 기억한다. 선뜻 마음을 고백할 수 없지만, 상대를 향한 눈빛은 거둘 수 없는 순간!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까? 아닐까? 끊임없이 상대의 의향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조바심과 의심, 그리고 설렘이 뒤범벅된 그런 숨이 막히는 순간을 나도 기억하고 있다.
<3> 어긋남
사막에서 캐서린은 알마시에게 그림을 선물한다. 하지만 부담감 때문에 알마시는 거부한다. 하지만 그녀는 부담감이라는 말에 한 발짝 물러서게 된다. 하지만 알마시의 부담감이 그녀 자신 때문이 아닌 “불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캐서린. 그것은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캐서린은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자 자진해서 사막에 남기를 택한다.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알마시는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캐서린은 그의 마음을 확인했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사히 도시로 돌아왔을 때 알마시는 들어오라는 그녀의 제안을 거부하며 일부러 캐서린을 “부인”이라고 깍듯하게 부른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캐서린은 알마시의 행동에 모욕감을 느낀다. “그러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미치도록 끌리지만 억지로 버티는 알마시. 그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그의 태도는 그녀를 몹시 아프게 한다.
<4> 사랑
며칠이고 폐인처럼 지냈을 알마시의 머리카락에는 아직도 사막의 모래가 섞여 있었다. 결국 캐서린은 눈부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알마시의 집을 찾는다. 얼마나 보고 싶던 그녀인가. 알마시는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가 매달린다. 캐서린은 알마시가 다가오자마자 그에 대한 원망을 담아 힘껏 때린다. 그것으로 서로의 진심은 통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이성은 욕망에 굴복하고 만다. 첫 정사 후 두 사람은 행복에 겨워 있다. 하지만 캐서린의 말속에는 그녀의 남편이, 그들의 대화에는 불륜의 그림자가 서성였다. 마침내 알마시는 그녀에게 말한다. “이곳을 떠나면 날 잊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남자는 다시 여자를 찾았고, 여자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남자를 찾았다.
“새로운 연인들은 초조하고 예민하지만, 모든 것을 박살 낸다. 심장은 불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알마시는 매일 밤 심장을 도려내지만, 다음 날이면 심장이 다시 자라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캐서린은 이곳이 다른 세상, 다른 인생.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아내라고 말한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이 활활 불타고 있다. 어떤 것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만다.
<5> 이별
전쟁이 일어났다. 캐서린의 영국은 연합국이었고, 알마시의 헝가리는 추축국이었다. 캐서린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울었다. “이제 작별해.”라고 했을 때 남자는 “난 동의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난 아직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아.” 나는 이 말을 30년 전에 들었다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의 언어는 때때로 내게 암호 같았다. 그러자 캐서린은 대답한다.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돌아서는 그녀는 “깡!” 소리를 내며 쇠 파이프에 머리를 부딪힌다. 그리고 이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헤어지는 연인이 있다. 여자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복도에 선 남자에게 말한다. “헤어지자. 이제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그리고 문이 닫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땡!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열린다. 두 사람은 몹시 당황스럽다. 캐서린이 이마를 부딪치는 장면도 그래서 도리어 더욱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장면을 잊을 것인가.
<6> 상처
상처 입은 알마시는 연회장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가장 멍청하고, 어린아이 같은 소란을 피운다. 버릇없이 빈정거리며 보란 듯이 헛짓거리를 한다. 그리고는 캐서린이 다른 남자와 춤을 추었다고 불같이 질투를 한다. 다른 남자와 춤을 추면서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다음엔 저 남자를 꼬드길 거냐고 캐서린에게 독을 뿜는다. 왜 그런지 말해줘? 캐서린이 말했다. “당신만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 알마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상처는 두 사람 모두를 할퀴었다. 상처를 대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남자들은 제 아픔에 겨워 바보 같은 짓을 한끝에 “당신만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 하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자신의 이기적인 멍청함을 깨닫는다. 이 선명한 깨달음은 나도 겪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 같은 알마시의 추궁에 등을 보이고 외면하는 캐서린의 마음을 몰랐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7> 파국
영화가 시작되면 알마시는 웬 여자를 태우고 사막을 날아간다. 영화가 끝났을 때 이 장면이 다시 나온다. 그녀는 바로 캐서린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알마시 앞에 나타났고, 비행기를 타다 죽음에 이르렀고, 죽은 그녀는 알마시 마저 추락시킨다. 이 모든 것은 장대한 사막 위에서 벌어진다. 이 영화는 사막과 비행기와 두 사람의 사랑이 전부였고,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임에 틀림없다.
과연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내가 머리로 이해할 뿐 가슴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누구도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영화임에도 그렇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은 다른 커플로 변주되고, 물불 가리지 않는 게이 커플의 행위로 예감되며, 사랑에 헌신적인 한나 (줄리엣 비노쉬)로 캐서린의 비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과 광활한 사막의 고립감이 영화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읽을 뿐 공감하지 못한다.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나는 여전히 30년이 지나도 사랑에 관해서는 무감각한 모양이다. 여전히 말에 서툴다. 멜러는 언제나 말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말은 마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법을 믿지 않았다. 내 글쓰기는 그래서 언제나 “멜러”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때문에 내게는 이런 뱀발이 더 재미있다. 영국 군인이자 인도인인 킵스는 기다리겠다는 한나를 두고 떠났다가 <LOST> 되고, 그와 함께 야광봉을 들고 교회의 성화를 보는 줄리엣 비노쉬(한나)는 사실 몇 년 전 퐁네프의 연인과 안대를 하고 미술관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캐서린 남편역의 콜린 퍼스는 이후에도 연인을 빼앗기는 남자 역으로 언제나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