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극 글쓰기 4>

by allen rabbit

<19>

전쟁이 끝난 뒤에 사람들은 운명이란 것이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전쟁 속에서 죽고 사는 갈림길은 시시각각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주 명리를 공부하게 됩니다. 사주 명리는 태어난 연월일시를 천간과 지지로 나누고 총 여덟 글자를 부여하여 운명을 풀이합니다.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사람이 팔자(八字)대로 산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명리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만사를 모두 해석하는 만능열쇠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 20>

역모는 실패했기에 역모입니다. 인조 시절 수많은 역모는 그저 왕을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광해에서 인조로 왕이 바뀌었던 것처럼, 설사 역모가 성공했다고 해도 큰 변화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유교 세계관의 한계라고도 하고, 또 이런 한계 때문에 공화국이 탄생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세계관이나 제도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 편입니다. 어떤 세계든 가장 순조롭던 한때와 최악의 한때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모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어떤 사회가 최악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는 구성원들이 "나만의 안위, 나만의 호사"를 추구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태산도 옮긴다."고 합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어떤 사상이나 체제도 결국 무력해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어떤 세계든, 어떤 상황이든 이것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어떤 난관이 가로막아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인터스텔라)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최악의 한때를 향해 달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21>

맹자는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사단을 펼쳤습니다. 저는 그중 으뜸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 속에서 역모의 중심에 서 있는 권진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사주팔자 여덟 자를 받을 때는 남자 여자 구분이 없는데, 오직 사람이 이를 구별할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고, 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마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에 서로 다르다고 여긴다. 천민이 양반을 이해하기 어렵고, 양반은 서얼을 깔보며, 남자는 여자를 헤아리기 힘들고, 평범한 이는 괴이(怪異)하게 태어난 자를 꺼린다. 그래서 구별 짓고 차별하고 박해한다. 누가 그리하는가. 오직 사람이 하는 짓이다. 그러니 만약 서로가 본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리 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이다.”



<22>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수많은 왕가 사람들과 양반들이 강화도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인조는 오지 않았고, 강화도는 하루 만에 청군에 함락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 내외와 소현세자비 등이 포로가 되어 강화도 밖으로 끌려 나갑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인조는 항복하게 됩니다.


청의 군대가 돌아갈 때 인조는 강화도에서 잡힌 사대부 포로 천여 명을 풀어달라고 간곡히 애원합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인조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가는 일반 백성들이 삼 일 밤낮으로 끌려가는 참혹한 광경은 끝내 모른 체 합니다.



<23>

병자호란이 발발하는 과정에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전쟁이 있기 딱 1년 전 인조의 왕비인 인열왕후가 승하하였습니다. 청나라는 용골대와 마부대 등을 보내 조문하게 했습니다. 비록 말뿐이었지만 존명배청을 줄기차게 외친 탓에 조정은 청나라 사신을 푸대접합니다. 노골적인 천대와 모욕이 이어지고 조문조차 온갖 핑계를 대며 허락하지 않습니다.

계속 조문을 청하자 인조는 장막에서 따로 조문하도록 합니다. 신위에는 왕비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의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돌풍이 불어 장막이 넘어집니다. 그러자 총과 칼로 중무장한 조선 군인들이 보였습니다. 사신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놀란 사신들은 다급한 마음에 민가의 말을 훔쳐 달아납니다.

끔찍한 외교적 참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조정도 난리가 났습니다. 인조는 다급히 사신을 달래는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너무나 놀란 청나라 사신들은 관아를 피해 노숙을 했습니다. 간신히 평양 인근에서 사신들을 만난 전령은 인조의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용골대는 갑자기 전령의 몸을 수색합니다. 그리고 전령의 품속에서 또 다른 편지를 발견합니다. 편지는 청과의 관계를 끊으니 평양감사는 전쟁을 준비하라는 인조의 지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용골대는 그 편지를 가지고 도망치듯 청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계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