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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존재 Jan 17. 2023

12. 내 목소리에서 진짜 나를 만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참 듣기 좋고 편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혼자' 말하는 것을 말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니 좀 더 부연설명을 하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빠의 영향으로 라디오를 곧잘 즐겨 들었는데 라디오 대본을 쓰고 라디오 DJ처럼 읽는 것이 나는 그렇게 재미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사말 주제가 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날씨, 어떤 날은 연예인, 어떤 날은 화제의 뉴스...


화장실에서 읽으면 목소리가 좀 더 울리고 좋게 들려서 종종 화장실이 나만의 라디오 방송국이 되기도 했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면 잘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렇게 혼자 무언가를 읽고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심히 충격을 받았던 날이 있다.


바로 카세트테이프로 내 목소리를 처음 녹음하고 재생했던 날.


너무나 낯설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왜인지 모를 창피함이 몰려왔다.

창피할 것이 전혀 없는데 조금 과장하면 벌거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목소리는 내 목소리일 뿐인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조용하다, 온순하다, 차분하다, 참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나에 대해 평가하며 붙인 형용사들이었고, 나는 이런 류의 단어를 들을 때마다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몹시 분했고 저항하는 마음이 들었다. '말을 참 조근조근하게 한다'라는 말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좀 더 당차고 자신 있고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는데 녹음기를 통해 듣는 내 진짜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느낌이 맞았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나의 목소리와 성품,  말하는 방식에 대해 그렇게 느껴왔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그동안 내 진짜 목소리를 모르고 살았던구나'라는 당황함, 창피함, 어색함, 분함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참 아이러니하다.  내 진짜 목소리는 내가 들을 수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내 진짜 목소리를 듣고 있다니.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는 뼈가 진동하면서 발생하는 소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진짜 목소리와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내 진짜 목소리가 좋다.


목소리를 통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번 주 부터 온라인으로 한국에 있는 성우 분께 보이스 레슨을 받고 있다.


내 목소리를 바꾸고 싶다거나 성우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예전부터 목소리 연기나 내레이션을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10살 남짓의 내가 내 방에 방송국을 차려놓고 라디오 DJ가 되었던 그날부터 30대 후반을 향하고 있는 지금까지 품어왔던 꿈이라면 꿈이기에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데 일단 발부터 들여놓자는 마음으로 즐겁게 배우고 있다.


선생님께 내가 찍고 내레이션을 한 영상을 첫 레슨 전에 보내드렸었는데 진솔함이 느껴 저서 좋았다고 하셨다. 발음, 전달력 다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레이션은 진솔함이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내레이션 한 영상은 모두 나에 관한 얘기여서 진솔하지 않을 수 없기는 했지만 성우 분께 그런 칭찬을 받아서 참 영광이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내 목소리나 또는 내가 말하는 방식, 말하는 습관을 제대로 알기가 참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과 레슨 한 영상을 다시 봤는데 몇 개의 단어를 쓸데없이 중간중간 반복하는 습관이 눈에 띄었고, 선생님도 지적해 주셨지만 내가 말을 할 때 입을 작게 벌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큰 소리를 들을 때 심리적으로 위축감이 느껴 저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큰 소리를 듣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게 됐고,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먼저 살피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이 내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또 어떤 상황 때문에 말을 많이 해야 하거나 크게 해야 하거나 시끄러운 곳을 가거나노래방을 가거나 하면 내 목은 여지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쉰다.


안 그래도 크지 않은 목소리를 쥐어 짜야하고, 그렇게 목이 쉬면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더 작아져서 피하고만 싶은 상황들이지만 인생이 어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던가.




올해의 나는 어느 때보다 내 목소리를 제대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앞에서만이 아닌, 위에서, 옆에서, 뒤에서, 아주 가까이, 조금 멀리... 다양하게볼 수 있으리라.


그러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40여 년을 늘 붙어살았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이거 꽤나 흥분되고 들뜨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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