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읽다.
다할 진盡자가 있다. 진자는 聿+火+ 皿로 구성되어 있다. 풀어보면, 붓으로 그릇에 남은 재(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할 진자에 다시 火를 변으로 더하면 불탄 끝 신燼이라는 단어가 된다. 그릇의 재를 붓으로 털어 냈는데도 남겨진 끝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 모두 다 타버림이라는 뜻에 소신燒燼, 남김없이 없애다는 뜻에 신멸燼滅이라는 단어에 쓰인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을 남김 없이 불태워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사람도 있고, 최선을 다하면 죽어. 그러니 지속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에너지를 잘 관리하라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남김없이 불태우라는 사람은 아직 남김없이 불태운 적이 없는 사람이고, 최선을 다하면 죽어! 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봤더니 허무하더라 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라면 후자의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이 있는 자로서 최선을 다하면 죽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남김없이 불태우기는 했는데, 패착은 그 대상을 잘못 정했다는 데에 있었다. 기실은 그 대상을 정할 때, 세상이 그게 옳다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비판적 사고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대상을 잘못 선택해 남김없이 태운 대가는 집중력 상실이었다. 세상이 모두 비슷한 색깔과 맛으로 느껴진다는 것이고, 확실히 잿빛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불탄 끝 신에는 깜부기불이라는 뜻도 있다. 깜부기불은 숯을 뒤적이면 보이는 불씨다.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꺼져가는 그 불씨는 무척 빨갛고 검다. 자작이면서 꺼져가는 그 불씨를 보고 있노라면 따뜻해지고 고요해지며 어두워진다. 그것을 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근원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태워본 적이 있으니 우쭐해야 할까? 아니면 그 너머엔 특별한 게 없었으니 허무하다해야 할까? 그 모든 것을 넘어서야 한 생을 온전히 살았다 할 수 있다면 나는 큰 숙제 하나는 한 셈이니 우쭐한 쪽에 넌지시 나를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