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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Nov 03. 2023

손톱이 안 자라면 좋겠다

깎기 귀찮아

손톱이 안 자라면 죽은 사람이지


  7살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처음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 잘 치고 못 치고와는 관계 없이 좋았다. 음악이 즐거워서 매일매일 피아노 앞에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바이올린을 알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당시 내 장래희망은 모두 음악과 관계된 직업이었다.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뮤지컬 배우 등등.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는 확고한 희망이 당시의 나에게 있었던 것이리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음악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실기 시험에 악기 연주가 필수여서, 피아노를 선택한 나는 늘 오선지가 아니면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했다. 정시로 무사히 음대에 합격한 순간부터는 더이상 피아노에 묶여있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작곡을 하려면 피아노가 필요했다. 악상을 점검할 때, 악보를 찍을 때도 건반을 이용했다. 


  음대를 그만두고 나서도 피아노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내가 음악과 완전히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 선배가 본인이 운영하는 학원에 알바 자리를 맡겨 주었다. 어리게는 5살부터 초등학교 3학년생까지의 초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피아노와 함께했다. 

  그러다 적을 두고 있는 성당 수녀님께서 내가 피아노 연주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아시고 당장 나를 평일미사 반주자로 앉히셨다. 성당에서는 주로 전자오르간을 사용하는데, 오르간 주법이 피아노와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본격적으로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오르간을 전공하신 교수님께 레슨을 받았다. 피아노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서 꽤 오래 배웠다. 성당에서 쓰이는 악보 연주는 무리가 없어서 교중미사 페이 반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활동을 지금도 이어가는 중이다. 


  장장 33년, 내 인생에는 건반이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손톱이 길 겨를이 없었다. 건반을 연주할 때 손톱이 길면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고, 제대로 연주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손톱 정리를 해 주어야만 한다. 싫다고 안 할 수가 없는 일이고, 그러므로 손톱을 치장하는 것은 내 인생에는 지금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 손톱을 정리해야하는 시기가 오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한 번쯤 거르고 싶은데, 매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고. 나는 타임 리미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손톱깎이를 찾아 든다.


  하루는 정말 손톱 깎기가 너무 귀찮아서 깎으면서 투덜거렸다. 


  "손톱이 안 자라면 좋겠다."


  곁에 있다가 내 말을 들으신 엄마께서 바로 한 마디를 얹으셨다. 


  "손톱이 안 자라면 죽은 사람이지."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번쩍 하는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렇겠구나.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구나. 


  사람은 별 것 아닌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살아있어서,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서. 손톱은 자라고 있었다. 

  투정하지 말아야 겠구나, 생각했다. 건강히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어느 때보다 손톱을 정성들여 깎았다. 


  그런데 사람은 간사해서, 2주가 지난 뒤에는 또 길어난 손톱이 귀찮다. 대신 이제는 귀찮다 투덜거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들었다. 


  '손톱이 안 자라면 죽은 사람이지.'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살아서 할 수 있는 일, 살아서 하고 싶은 일, 살아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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