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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데드 Oct 27. 2023

수면

01]

현대사회에서 SNS시장은 얼키설키 뭉뚱그려진 실타래와 비슷하다. 실타래 한 올을 코바늘로 집어 유심히 살펴보면 대게 바이럴마케팅에 AI를 입힌 '빠른 돈 벌기'가 주된 화두거리. 어디 나도 한번?

가벼운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간 큰코다칠게 뻔하다. 코딩을 잘 모르면 우선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 가정의 안전을 위해, 삶의 안위를 위해,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빠른 돈 벌기라면 그 일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된다. 달리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 거머쥔 그 일은 '곤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인생에 돈 버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쌓은 멘털이 쉽게 소비된다. 동시에 주변인들이 물수제비처럼 저 멀리 달아난다. 그렇다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란 없다. 예컨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면서 귀찮은 이유로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면서 펜을 잡지 않은지 오래되어 굳이 그 일을 안 하는 결정. 이유를 둘러대기 위한 대범한 핑계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매일 걷기를 좋아한다면서 춥단 이유 하나로 나가지 않으면 잘못된 결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만들게 된다. 애당초 인간은 사회관계적인 동물이지만, 여기서 관리가 빠지면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게 된다. 고등한 생물로 진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등 한 생물로 퇴화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퇴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바닥을 또다시 마주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처음부터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차라리 망설이지 말고 당장 시도하고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


반대로 멘털에 치중하다가 본전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획득한 것 하나 없이 어물쩡거리는 우주쓰레기의 표본에 불과하다.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발생되는 것이 비교이고, 비교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잘 절여진 비교는 쉰내를 풍겨 파리떼를 유혹한다. 부패한 마인드 굳히기 징조. 길과 흉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차이로 인생은 조금씩 달라진다.


자기혐오는 견디는 것이라기보단, 받아들이는 것. 이를 아는 것에서 우리는 삶에 새로운 도미노를 세운다. 목표를 세우기 전에는 모르던 것들을 자기혐오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 지 알게 되고,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벽은 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미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한번 더 바라보자. 과연 이 벽이 내가 넘어야 할 산인지, 혹은 열어야 할 문인지, 오래 보아야 사라지는 문인지. 생각해 보자. 문을 밟고자 하면 그 문이란 문제는 나를 담지 못하고, 문을 열고자 하면 그 문제를 통해 다음 문을 봐야 한다. 문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다음으로 크기를 가늠해봐야 한다. 문의 높이가 농구골대보다 높으면 옆으로 지나쳐 회피할 방법을 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왜 높은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문짝 같은 도미노가 나열된 인생의 미로에 갇혀있지만, 문간에 갇혀 살고 있지 않다. 문제가 괴롭다고 해서 자기혐오를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쉬운 문제들은 자신을 탓할 새도 없이 쉽게 무너지니까. 하나 정말 돈을 벌 심산이라면 그 누구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선택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버는 일에는 배경을 감추기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인색하지 않고 내지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화가 덜 된 이들은 공교롭게도 도태되어 버리고 말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데에서 사회성은 빛을 발한다.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사회적인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십 대 후반에 들어 뚜렷한 주관을 확보했고 나아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뤄나가고 있다. 

반대로 나는 하기 싫은 감정을 가진채 해야만 하는 일들을 처리해야 될 때도 있었다. 무엇이든 겪는 것이 더 낫다는 현재의 포지션 또한 애매하기에 그 간극에서 자본주의의 틀을 지키며 사는 중이다. 발전을 도모하는 일을 하고자 하면 경험은 장점으로 남게 되고 쇠락을 도모하는 일을 하고자 하면 경험은 퇴화된다. 뇌건강과 육체와 정신단련에 좋은 음식과 공부와 활동과 취미는 발전해야 하는 것, 그것에 해당하지 않는 게임과 약물, 술, 담배 등은 퇴화를 야기한다. 좋은 예시와 안 좋은 예시를 두고 비교했을 때 적당한 수면과 과한 수면 사이의 괴리처럼 우리는 무엇이 더 좋은지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르기 전에 좋고 나쁜 걸 분류하여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적으로 적용된 걸 찾아 나만의 것으로 만든다. 게다가 일정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이상한 수면패턴을 지키면서도 제법 괜찮게 살고 있다. 아무튼 잠은 잘 자는 것이 자고로 최고다. 


이미지 출처 : istockpho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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