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어른을 생각하다.
아주 늦게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의 사적인 일과는 상관없이 그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호평에 언젠가는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방학이라 여유가 있어 넷플릭스로 마지막 회까지 말 그대로 정주행을 하였다.
나의 아저씨를 본 나의 생각은 한마디로 '따뜻한 가족과 치열한 직장 속에서 바른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은 상훈, 동훈, 기훈 삼 형제와 어머니의 가족과 결혼한 동훈의 가족이 주를 이룬다. 우리나라 문화 때문에 겪는 50대의 고민과 고충을 나름 느낄 수 있는 면이 많아 동감이 되기도 하였다.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사회에서의 아들로서의 부모를 생각하는 일과 딸로, 아님 며느리로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많은 차이가 있는 듯하기도 하다.
남자들은 자신을 낳고 키워준 부모와의 연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새로운 가정을 오롯이 자신의 가정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을 키워준 집도 우리 집, 내가 새로 결혼해서 꾸린 집도 우리 집이라는 개념이 있을 것이다. 이 점이 결혼한 부인인 여자에겐 서운한 점일 테고 그런 부인이 시어머니는 탐탁지 않아 지는 것이 우리나라 결혼과 시댁문화가 아닐까 싶다. 그걸 극복하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남자가 결혼한 여자인 아내와의 새로운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것이겠지만 유교 사회를 살아온 남자들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와의 관계를 잘 정리하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또 형제들 간의 우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지만 각기 다른 성격의 형제들이 티격태격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은 어쩌면 가장 의리 있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웃고 울었던 것 같다.
가족을 위해 노력했지만 믿었던 부인에게 배신당하고 힘들었던 동훈과 가족의 소중함,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지안이 서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모습들이 참 울컥하기도 재미있기도 했던 드라마였다.
직장에 대한 이야기
또한 치열한 직장생활을 해 나가다가 반 백 살이 될 즈음 회사나 직장에서 퇴출당하는 이 시대의 힘든 아버지 세대를 느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 짠 함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난 드라마라서 조금 차이는 있지만 주인공인 동훈이 74년생이라는 점으로도 나와 같은 년생이라는 동질감을 뛰어넘어 동훈이 나인 듯한 (물론 직장과 환경 모든 것은 다르지만)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오래된 건물처럼 삐걱 거리는 이 시대의 중년들의 마음에 동감이 되어 가슴이 저려왔다. 위로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도 해야 하고, 성과도 내야 하고 아래로는 젊은 부하들 챙기며 다독거려야 하는 중간에 끼어 힘든 중년들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인 듯했다. 그 안에서 정치적이어야 하고 착하게만 살 수 없는 사람들과 다르게 바르게 살아온 주인공 동훈이 더 짠 한 것은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불쌍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 출신등 이런저런 연으로 엮여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아저씨들은 어쩌면 가장 편한 후계 조기 축구회처럼 언제나 편한 농담과 일상을 주고받으며 저녁에 소주 한잔 마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사람들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주변엔 지금 누가 있고 누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외쳤던 나지막한 '행복하자'를 위한 한마디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바른 어른의 이야기
동훈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열심히 사는 모범생이고 바른생활 사나이다. 그런 사람이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정말 어려운 것이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동훈의 인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힘든 지안을 챙기고, 자신을 배신했던 아내를 보듬고, 가족을 생각했던 삶이 결국에는 좋은 결말을 보여주어서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분위기가 많이 어둡고 우울하다. 주인공의 힘듦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우울한데 음악도 그렇게 슬프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어두움과 추운 겨울로 대비되는 힘듦이 따스한 봄과 함께 스르륵 풀리는 드라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맘엔 겨울보다 따스한 봄이 더 편하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자란 지안이란 소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지켜봐 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는 어른 동훈이 있어서 이야기는 따뜻했다. 지안 할머니 장례식장에 따뜻한 화환을 준비해 준 상훈이 있기에 따뜻했고 자신 때문에 힘들었던 여배우를 마음으로 안아주고 구김을 펴준 기훈이 따뜻했다.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 돌봐주고 이해해 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독거려 줄 어른이 되고 싶다.
오래간만에 다음화를 기다리면서 (실제로 기다리진 않았다-넷플릭스는 언제나 볼 수 있으니) 본 드라마였던 것 같다. 주인공들의 연기도 좋았고 생활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여서 좋았다.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인 동훈의 낮은 목소리를 이제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어려운 시대. 우리 모두 편안함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우린 이미 엄청 좋은 사람들이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