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말들-글쓰기 그 미친 희망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을 걸으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마주 오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멈칫했다. 아저씨는 빙그레 웃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뒤돌아 골목길을 나오며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사진작가냐고 물었다. 글을 쓴다고 했다. 훌륭하다고 한다. 아, 글을 쓰는 일이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저씨는 경상도에서 왔다고 했다. 일을 찾아 충청도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부인이 모아둔 목돈을 들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한탄했다. 그래도 딸이 하나 있는데 결혼해 잘살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 했다. 고향 친구들은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몸이 더 쇠약해지면 그때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저씨는 거의 한 시간가량 골목길 구석에서 나에게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나는 무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낯선 타지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살아온 그의 인생이 무겁고 슬펐다. 은유 작가는 『쓰기의 말들』(은유, 유유, 2020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슬픈 일은 터놓을 마땅한 장이 없다. 복잡한 서사와 감정이 중첩되어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말하고 나도 영 개운치 않다. 자기 슬픔을 내보이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해관계로 얽힌 경쟁사회에서 슬픔 말하기는 금기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갈 때 인간의 슬픔을 말하는 책은 좋은 자극제다. 슬픔을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어느 마을에 갔을 때 여든을 바라보는 남성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노인은 혼자 살고 있었다. 1990년대 처음 집을 장만했다는 노인의 집 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꽃을 좋아했던 아내는 사시사철 볼 수 있도록 연못 주변에 꽃을 심었다. 아내는 10년 전 먼저 떠났다. 홀로 남은 노인은 우울증 약을 먹으며 거실 창밖으로 꽃들이 지고 피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거의 대부분 오전 10시가 지나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도 별다른 할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불면증으로 늦잠을 자는 일이 많다고 한다. 우유 한 잔으로 빈속을 달랜다. 세수를 하고 지저분한 것들만 대충 정리한다. 젊었을 적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진 노인은 집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점심은 집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요양보호사가 오후에 온다. 한 시간 정도 청소와 빨래를 도와준다. 저녁은 냉동실에 넣어둔 얼린 떡으로 대신한다. 이제 찾는 친구들도 별반 없고, 생존한 형제자매들도 없다. 어쩌다 마을회관에 잔치가 있으면 가기도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니 요즘은 거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와 찍었던 사진도 모두 태워버렸다. 딱 한 장만 남기고 말이다. 왜 저 사진만 남겼냐고 물었다. 아내를 그리워할 수 있는 ‘유일함’이라고 했다. 사진 속 노인과 아내는 다른 부부들과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아내의 어깨를 두르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고 있다. 그 사진을 보며 존 버거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눈빛, 2007년)이 생각났다.
모든 사진은 과거에 속한다. 사진 속에서 과거의 한순간은 우리가 살았던 과거와는 달리 결코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사진 찍은 사건에 대한 메시지, 다른 하나는 불연속성의 충격을 전하는 메시지. 기록된 순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사진 속 노인과 아내는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을 지으며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기념일에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무엇을 기념하려고 했을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사진 속 노인은 지금보다 머리숱도 풍성했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사진 속 노인의 과거와 지금 노인의 현재는 사뭇 달라 보였다. 액자 속에 박제된 사진은 밥그릇 속에 담긴 시간 같았다.
아저씨의 슬픔과 노인의 슬픔은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하염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 잡기가 끝나지 않았을 무렵, 대문 앞에 정차해 뒀던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는 노인을 다시 만났다.
-어디 가세요?
-밥 먹으러. 이게 내 다리야.
나는 어깨 위로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탄 노인을 향해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