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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n 03. 2024

인터뷰하는 시간

쓰지 못한 말들-글쓰기 그 미친 희망

난생처음 성당 미사에 참석한 날이었다. 일요일이었고, 성당 주변 주택가는 고요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손님인 나는 맨 뒷자리 나무 의자에 앉아 볼펜만 만지작거렸다. 무교인 나로서는 이 상황이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내가 자처한 일이었다. 100년이 된 성당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 신부님은 신학대학원생들과 100일 기도를 드리며 성당 안팎을 쓸고 닦고 페인트를 칠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신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전도 한 번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것만으로 신부님은 그 지역에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미 신부님에 대한 인터뷰 기사는 넘쳤다. 신부님이 수집한 성당에 관한 자료도 꽤 되었다. 성당에 대해 취재하고자 했던 나는 수많은 자료 앞에서 어떤 방법으로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미사 참석이었다. 


성당 내부 정면에는 예수상이 있고 양쪽으로 아치형 창문들이다. 신부님이 공수해 온 빈티지 장식장에는 성경책과 각종 묵주가 먼지 하나 없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 성당 옆 작은 공간은 원래 신부님이 거주하는 곳이다. 신부님은 이곳을 리모델링해 서점을 열었다. 물론 판매하는 책은 아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와서 읽으면 된다. 이곳에서 독서 모임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주민들과 영화를 함께 본다. 미사가 끝나면 신도들과 점심도 먹는 곳이다. 

 

장백의를 입은 신부님이 들어오고 찬송가를 부르며 미사가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미사의 순서나 방법 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다. 그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아치형 창문으로 쏟아지는 고요한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성당 내부에 오래된 침묵의 소리가 나무마루 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을 내내 바라보았다. 


내게 인터뷰를 하는 시간은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의 공간에서 인터뷰이의 오래된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말이다. 그의 눈빛, 행동, 말투, 옷차림 등등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느끼고 호흡한다. 어쩌면 시간보다는 그의 공간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공간은 그의 일상의 냄새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부님은 미사 마지막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쏟아지는 햇살에 의지해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세상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꿈을 잃은 청춘들과, 빈곤에 내몰린 노인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전쟁이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변화는 이미 나의 내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그저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성찰하고 만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인터뷰는 듣는 시간이다. 질문하는 일보다 잘 들어야 한다. 잘 듣기는 쉽지 않다. 내가 얻고자 하는 말을 얻기 위해 서두르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말을 삼키기도 한다. 여지없이 그 인터뷰는 망한 인터뷰다. 다시 간다. 물론 실례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두 번째 만남에서 뜻하지 않은 보석 같은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저 듣기만 하는 시간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생애를 알기 위함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거대한 담론도 있고 아픈 역사도 있다. 다만 내가 모를 뿐이다. 그렇다고 어떤 대안이나 해결 방법은 모르겠다. 그러나 잘 들어야만 좋은 질문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집을 접했다. 국어 시간에 배운 시인들은 아니다.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 나희덕, 기형도, 체사레 파베세 등 얇은 시집 한 권에 펼쳐진 시인의 절절한 언어는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인의 세상에 대한 고달픔과 애처로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밑줄 긋기밖에 없었다.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화폭에 미처 담기지 못한 아름다움에 나는 절망했다. 시인이 될 수도 없고 화가가 될 수도 없었다. 다만 지금은 매서운 바람에 뺨은 얼얼한데 쨍한 하늘 햇볕 한 줌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고드름 같은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인터뷰가 그 길을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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