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영"이 남긴 잔상들
언제부턴가 잔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는 글과 꼭 맞닿아 있기에 끄적여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허상이 된다. 짤막하게 기록해 둔 잔상은 지나간 순간을 허황된 상상이 아닌 조금 더 실체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주었다.
글을 읽고 글이라는 잔상을 남기는 건 조금 웃기다. 영상을 봐도 글이 남고, 바람을 맞아도 글이 남는데, 글을 읽어도 글이 남는다. 오늘 적어볼 작품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내게 글의 형태로 가장 많은 잔상을 남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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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글을 또 읽는 걸 정말 즐기지 않는데, 이 글은 연달아 3번을 읽었다. 방금 5번째로 읽기를 마치니 몇 구절은 그 모습 그대로 읊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떤 단어들은 단어 혼자 덩그러니 버려져 있어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소년, 동경, 젊음, 질투, 열렬과 같은 짜릿한 단어로 점철된 작품을 쉽게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젊음을 동경한다. 열일곱에서 스물세 살, 모두가 추켜세우는 젊음을 추한 시절이라 부르던 장 피에르도, 네가 싫어하던 그 무엇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면서 소년임을 좇는다.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 아슬아슬하면서도 북돋아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계속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기운을 그리고자 한다.
이런 얄팍한 수작에 넘어가는 건, 반대로 어른이 되고자 했던 스무 살의 아이들이다. 권위에 대항하면서도 가냘프고, 와인을 즐기면서도 수줍던 장 피에르의 상반된 이미지들은 손쉽게 스물을 홀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계속해서 순수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순수라는 건, 아이들만이 가지는 권리이자 특성이기 때문이다. 장 피에르는 순수라는 이름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뒤돌면 우스울 연기를 했다.
연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연수는, 장 피에르 같은 사람은 모든 걸 다 소유하고서도 불행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저런 우울함은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은 장 피에르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수가 그에 매료되었던 것은, 그가 한평생 사랑에 빠지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분화된 파편들을 정리해 보자면 조명등 아래에 서 빛을 받고자 노력하는 이와, 그저 조명을 차지하는 이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도, 매사에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와 분명한 여자도,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무지한 사람도, 점심을 같이 먹는 사람과 혼자 먹는 사람도, 모두 그 분류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 집합에 들어간다. 빛을 받고자 노력하는 이라는 집합.
내가 주목한 건 연수가 외치는 경멸이 담긴 한마디이다.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세상은 변했고, 작품 속의 세상도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미지는 낡고 보잘것없게 되어 구식 취급을 당하나, 들여다보면 여전히 젊음을 동경하는 이들로 가득 찬 세상이기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개꽃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한 건, 연수가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라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듯이 분명히 어떤 것들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음과 청춘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