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안경이 좋았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누군가는 싫었다. 동그란 테두리 안으로 세상을 느끼며 내가 보는 세상이 그뿐임에 만족했다. 동그라미 너머를 보는 헛수고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삶은 그럭저럭 살만하니까.
그렇게 더 좁은 생각과 더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갇힌 생각은 단순하지만 가볍다. 딱히 재단하지도,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맘에 들지 않으면 얼룩이 묻었다 치고, 닦아내면 그만이다. 가까이 오는 자는 안경알이 뿌예진다며 밀쳐내면 되었다. 눈과 눈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거리가 주는 안정에 기대었다.
남는 것은 또 있었다. 무서운 것을 마주하고 크게 움직여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딜 가든 따라오던 그 진득한 눈길을 조금은 떨쳐낼 수 있었다. 내 눈동자를 보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읽고, 허황된다며 비웃을까 전전긍긍하던 나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일부로 손자국이 잔뜩 찍힌 안경을 닦아내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이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그 눈길에 배가 꾸르륵 소리를 내고, 미간을 긁어대던 시간이 싫었다.
그렇다. 나는 온전한 모습을 내비치는 게 두려웠다. 무게가 얼마 나가지도 않는 안경테에 기대어 조금이라도 가리고자 했다. 안경을 그저 멋으로 보아 벗으라 말하던 이들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들 삶에도 그들만의 안경이 있을 테니. 그리고 난 그들의 안경이 무슨 모양을 띠는지 듣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