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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비 Jul 21. 2021

Ep 11. 중앙청 탈환

우리 손으로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다

  중앙청 쪽의 적정을 탐지하기 위해 광화문에 도착한 나는 넓은 도로 양편에 방공호가 파인 것을 보고 괴뢰군들이 남대문 앞에서와 똑같은 방법의 진을 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적의 주변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당장 진격을 해도 적의 저항이 그렇게 심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서대문 아현동 고개까지 진격한 미 해병이 쏘아대는 포탄이며 항공기에서 투하한 네이팜탄 등의 화력을 피해가야 하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이날(25일) 오후 4시 나는 중앙청을 향한 1차 공격을 시작했다.


  소대가 광화문까지 진격했을 때였다. 내 옆에 있는 무전병의 무전기에서 우리 부대를 호출하는 신호가 나왔다. 나와 무전병은 서로 쳐다보기만 했을 뿐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 5분이 흐른 뒤에는 연대본부와 전투 본부(퇴계로의 구 해군 본부)에서 1소대가 행방불명이 된 것 같다는 얘기를 주고받는 내용을 무전기 속 흘러나오는 잡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진격부대가 갑자기 교신이 두절되었으니 본부는 온통 난리가 났던 것이다.


  말단 소대장으로서 소대를 이끌고 진격하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무전병에게 응답을 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리고 10명의 선발대를 뽑아 광화문을 건넜다. 꼭 기관총탄이 터질 것만 같던 괴뢰군의 방공호가 그때까지도 조용했다.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왔다. 10여 보를 더 진격했다. 괴뢰군의 첫 번째 방공호가 15m 앞으로 가까워졌다. 내가 수류탄을 던질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너무도 뜻밖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길 우편 건물에서 우리를 향해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다. 일단 후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전신전화국 건물 내에 괴뢰군 지연 부대가 있었던 것이다. 후퇴를 한 나는 방공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곳에는 적군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 이유는 미 해병이 쏘아대는 155mm 105mm 등의 야포 그리고 전차포 박격포 항공기의 공중폭격 등 때문에 모두가 죽었거나 아니면 전화국 건물 안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우리가 방공호에 들어간다면 전화국을 정면에 두고 적과 사격전을 벌일 수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가까스로 방공호로 뛰어 들어온 나는 호안의 풍경을 보고 질겁했다. 하마터면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기관총탄 속으로 다시 뛰어나갈 뻔했다. 아무도 없을 줄로만 알았던 방공호 속에 두 명의 괴뢰군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괴뢰군 1명은 신음하고 있었으며 다른 1명은 기관총의 방아쇠를 잡은 채 죽어있었다. 먼저 시체를 보니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미 해병의 포탄이나 또는 항공기 기총소사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신음 중인 괴뢰군에게 “총에 닿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 괴뢰군은 나를 한번 쳐다볼 뿐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수통 속의 물을 마시도록 했다. 약 2~3분이 지나자 괴뢰군은 "배가 고프다"라고 했다. 방공호 속의 괴뢰군들은 벌써 며칠째 보급물자를 받지 못해 굶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뒤에 안 일이지만 호 속에 배치된 괴뢰군들은 전화국 건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괴뢰군의 사령부에서는 자신들의 완전한 도주를 위해 방공호 속의 병사들은 결사적인 저항을 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호를 뛰어나와 전화국 안으로 들어오는 병사는 그들의 기관총이 용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죽음만을 기다려야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방공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어떤 방공호에서는 미 해병의 포탄에 명중된 적병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아직은 배고픔을 참아낼 정도의 괴뢰병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사격할 사기를 잃어버린 채 포로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반면 일부 중앙청 안의 괴뢰병과 전화국 내의 괴뢰병은 우리에게 거의 필사적으로 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 해병의 포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억세어지기만 했다.


  우군인 미 해병의 포격과 중앙청 그리고 전화국 안의 괴뢰병의 사격 등 엉뚱하게 3면 공격을 받는 우리는 도저히 더 이상 진격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CP에 이 사실을 알리고 미 해병의 각종 화력을 중지시킨 뒤에 중앙청을 탈환키로 마음먹고 무전병에게 CP를 부르도록 했다. 나의 무전 연락을 받은 대대장 김종기 소령은 첫마디로 "너는 총살이다"라고 외치면서 지금의 위치를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대장은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미 해병의 작전지역을 협의 없이 들어간 것을 추궁하겠다"라고 했다. 나는 시간의 긴박성을 주장하면서 "우리의 중앙청에 미 해병이 태극기를 꽂는 것은 수치가 아니냐"라고 맞섰다. 대대장의 응답은 변함이 없었다. "잔소리 말고 즉시 CP로 돌아오라"라는 호령이었다.


  더욱이 이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더 이상의 전투를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 꼭 3시간 30분 동안의 일진일퇴에 종지부를 찍고 CP로 발길을 옮긴 것이 밤 7시 30분이었다. 대대장은 CP 밖까지 나와 있다가 나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 갈겼다. 그러나 나는 중앙청은 한국 해병의 명예를 걸고 우리 손으로 탈환해야 한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김 대대장은 나를 지프에 타도록 한 뒤 운전사에게 본부로 직행할 것을 명했다. 김두찬 전투 단장은 나의 대대장을 흘겨보면서 "박 소위를 총살하라"라고 외쳤다.


나는 이날 밤 끝내 중앙청을 공격하라는 명을 받고 말았다.


  본부에서 미 해병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다. 26일 새벽 나는 소대원을 이끌고 중앙청으로 진격했고 6중대가 전화국의 괴뢰군을 소탕했다. 미 해병의 집중 화력을 받은 중앙청은 화염과 불덩이였고 나는 구토를 참으면서 청 내의 불과 30여 명이 못 되는 적병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전원 사살했다.


나는 준비한 태극기를 몸에 감고 양병수 선임 하사관과 함께 중앙청 꼭대기인 돔에 올라가 감격의 태극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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