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굣길> - 강동원 감독
지금의 나는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 하교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하교한 게 작년이니. 그래도 하교한 게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인지 교복을 입고 떠드는 이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다 나도 다시 교복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교복을 입던 순간에는 늘 어른을, 자유를 꿈꿔왔는데 막상 성인이 되니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종종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뿐이다. 작품은 그런 나에게 과거로의 추억여행을 보내주며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모두가 학창 시절이 문득 생각나는 날 또 친구 관계, 나와 다른 친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날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
작품은 시작부터 시험이 망했다는, 그래서 엄마한테 왕창 깨질 거라는 말로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온다. 그 와중에 망했다면서 시험을 한두 개 틀린 애들은 얼마나 얄미운지. 하지만 그런 시 덥지 않은 말은 놀면서 풀리니 시험 끝 하굣길은 놀러 가는 게 국룰이니 작품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친구들은 모두 일정이 있다며 주인공을 두고 떠난다. 주인공은 그렇게 혼자 하교하게 된다. 나는 혼자 하는 하굣길도 무척이나 낭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인공 모습을 보니 너무 초라하고 쓸쓸해 보여 가슴이 아팠다. 그러다 주인공은 몸이 불편한 학교 친구 현지가 휠체어를 타고 가다 넘어지는 것을 보고 도와주며 말을 건다. 하지만 현지는 계속 주인공에게 됐다고 말하며 주인공을 밀어낸다. 나는 그런 현지를 보면서 의아했다.
주인공이 현지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싫은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현지를 돕고 말을 건다. 이내 현지는 그런 주인공을 받아 드리고 함께 하교한다. 둘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하교를 한다. 나는 이때부터 주인공이 아니라 현지에게 눈길이 더 갔다. 휠체어에 앉은 현지와 높은 곳에 앉아 발을 달랑거리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현지. 그 순간 현지의 눈에서 보이는 부러움. 또 현지에게 오는 엄마의 이상하고 무서운 집착적인 문자까지. 현지는 위태로워 보였고, 왜인지 무슨 일이라도 날 것만 같은 느낌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대화를 끝낸 둘은 이내 움직이는데, 주인공은 현지에게 나중에 노래방을 가자고 하고 돌아다니는데 불편하겠다고 말하며 현지를 걱정한다. 나는 이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몇 초 뒤 빠르게 증발했다. 주인공이 대학 이야기를 하며 절망하다 현지에게 넌 그래도 장애인 전형이 있으니까 잘 될 거라고 말하는데 진짜 미친 줄 알았다. 그 말을 듣는 현지가 딱딱하게 굳는데 그게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말을 할 때 생각을 좀 하고 말해야지. 진짜 보다가 머리가 지끈했다. 나는 그때부터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내 재밌어?라고 현지가 말하고 작품이 끝나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은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면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줄 수 있는 상처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김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