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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15. 2023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

영화 <내 이름은 김수진입니다> - 문정현 감독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인가? 너무 어려워서 쉽게 답을 구할 용기가 나지 않음에도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수많은 우연들과 선택의 갈림길 중에서, 그리고 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무수한 경우의 수 중에서, 왜 나는 하필 지금의 나여야 하는지. <쥬-마뻴 수진킴>에서 두 명의 수진도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수없이 이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실존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현실 속 지금의 나다.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결론에 도달했을 때 두 수진의 반응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한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고, 한 쪽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저주했을 것이다. 




수진은 보수도 받지 못 하는 단역 배우다. 생계를 위해 식료품을 훔쳐야 할 정도이며, 아버지는 돈을 빼앗고 폭행을 일삼는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 지쳤을 때 수진은 자신이 수진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집을 찾는 외국인을 만난다. 자신에게는 절실한 돈과 옷을 가지고 있는 이 수진은 어렸을 때 프랑스로 입양을 간 자신의 자매이다.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보이는 것 같아 한국의 수진은 같이 살고 싶다는 프랑스의 수진에게 불쾌함을 표한다. 그러나 자신의 친가족의 진실을 알게 된 뒤 그가 끝내 자리를 떠나버렸을 때, 수진의 얼굴에 남은 것은 원망과 무력감 뿐이다. 




반면 프랑스의 수진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친가족의 행방이 궁금했을 것이다. 아기 때 입양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친부모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이 뒤섞인 채 한국을 찾았을 것이다. 친부모에게 왜 나를 떠나보냈냐고, 나를 보고 싶지 않았느냐고 묻는 눈물의 상봉이나, 친자매와의 감동적인 재회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양되지 않은 한국의 수진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을 사는지 깨달았을 때 그는 동정과 미안함, 당황이 섞인 표정으로 자리를 떠난다. 마지막 포옹과 두고 간 돈 봉투는 연민과 죄책감의 표시다. 



영화는 입양되지 않은 수진의 현실은 충분히 묘사하는 데 반해 프랑스의 수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입양된 쪽이 한국의 수진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더욱 궁금하게 한다. 프랑스의 수진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수진의 얼굴에는 이 질문들이 서려있는 것 같다. 입양된 것은 왜 내가 아니라 저쪽일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지? 고민할수록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원망한들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는 점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너무나 다른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무력한 두 수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제갈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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