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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Apr 17. 2024

할머니 도시락

'띠링, 띠링'

경쾌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난다.

'하, 격하게 더 자고 싶지만 준비해야지. 암, 아침밥은 먹여야지.'

아침 7시, 아이들을 위한 식사 준비 시간이다.

반드시 아침은 먹여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나는 무조건 아침밥을 준비한다.

매일 도시락을 싸지 않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되뇌어본다. 아침 식사만 준비해서 참 다행이다, 부족한 잠은 이따 아이들 학교 가고 나면 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도시락까지 매일 두 개씩 싸야 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다 아찔하다.

정말 우리 엄마들 할머니들은 어떻게 하루에도 몇 개씩 도시락을 싸주셨을까.

솜씨 없는 엄마지만 엄마 집밥이라고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들을 보면서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떨어져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할머니가 항상 도시락을 싸주셨다. 봄, 가을이면 예쁜 플라스틱 도시락통에, 겨울이면 보온통에 따뜻한 밥을 싸주셨는데 늘 좋아하는 감자채소시지 볶음이 함께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책상을 붙이고 앉아서 서로 반찬을 나누어먹었다. 따돌림도 코로나 같은 질병도 없던 시절, 우리는 항상 오늘의 도시락을 맛나게도 먹었다. 특히 인기 있었던 반찬은 소고기고추장 볶음을 싸 오던 친구의 것이었다. 걔 중엔 감자샐러드 도시락을 싸 오던 친구도 있었다. 서로 나눠가며 돌려가며 도시락을 먹고 교정으로 산책을 나가면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당시 나의 모교는 교정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여름에 녹음이 울창해지면 학교는 온통 초록색이 되었다. 풀벌레도 개의치 않고 잔디에 앉거나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도 앉고 친구들과 나는 짙푸른 여름을 함께 보내고 뜨끈한 난로 위에 보온 도시락을 올리며 겨울을 보냈다.




할머니는 늘 잊지 않으시고 손녀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겨주셨다. 감자채볶음. 기름을 살짝 입은 감자채는 늘씬하게도 쭉 뻗어서 채 썬 당근, 양파와 함께 있었고 어떤 날은 김치볶음도 참기름에 달달 볶아 고소하게 반찬통에 넣어주셨다. 철없는 손녀는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 한마디 없이 참 열심히도 먹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도시락을 매일 싸주시던 할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머니는 그런 생각은 안 하셨을 거다. 그냥 내 손 주니까 내 새끼니까 해야 되는 줄 알고 하셨을 것이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겪은 평범한 옛날 분이었던 할머니. 자식 사랑, 손주 사랑만은 애틋하셨던 할머니의 도시락이 생각이 난다. 그건 그냥 도시락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나는 먹고 자란 거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학교 급식이 되면서 도시락을 쌀 일은 없어졌고, 할머니의 도시락도 더 이상 먹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이 난다.

곱게 화장을 한 채 관에 누워계시던 모습과 가지런히 놓인 두 손.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늘 맛난 음식을 해 먹이는 게 가장 큰 일과 중 하나셨던 할머니.

가끔씩 아이들의 도시락을 쌀 때면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엄마와 헤어져있던 시간 할머니의 도시락은 엄마의 사랑과도 같았다.

어쩌다 한 번 챙기는 도시락도 힘든 엄마인 이 손녀가 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려서, 영원히 계실 것만 같아서.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지금 내 아이의 도시락을 보며 전한다.

아무리 다양하고 예쁜 도시락이 많아도 할머니께서 싸주신 점심 도시락이 최고였어요.

평안히 쉬세요, 나의 할머니.  



그건 그냥 도시락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나는 먹고 자란 거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할머니의 도시락도 더 이상 먹을 수는 없었다. 엄마, 아빠와 다시 같이 살게 되었고 이제 도시락 싸는 몫은 엄마에게 돌아갔다.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면 자연스레 할머니 도시락이 생각났다. 맛깔스러운 전라도 음식을 잘 만드셨던 할머니. 손녀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챙겨주셨던 도시락. 겨울에 춥다고 따로 챙겨주신 짭조름한 된장국. 일찍 일어나시는 게 피곤하지도 않으신지 으레껏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시던 굽은 등. 누가 그녀에게 알려줬을까? 이렇게 음식을 하는 삶을.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그분의 뒷모습이 이제는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겹쳐지는 건 나의 모습. 자식이 혹은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을, 너무나 먹이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젠 내가 닮아있다. 점심 도시락을 열었을 때 환하게 웃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김밥을 만다. 과일꽂이에 딸기, 토마토, 삶은 메추리알을 꽂아본다. 할머니처럼 맛깔스러운 반찬이 아니지만 정성을 담아 나름 준비해 본다. 아이에게도 엄마의 도시락이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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