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들지 못하는 건, 정말로 못해서일까 안 해서일까.
행동이 느려진 건지 할 일이 많은 건지
글을 써야 한다, 매일 쓰자라는 계획은 틀어지기도 하는데 오늘 밤은 기어이 글 하나 쓰고 자야겠구나 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책을 읽다 자고 싶었다.
시간은 딱 10시쯤이면 좋겠다.
하루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ASMR을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드는 밤이 좋기 때문이다.
큰 녀석이 고등학교에 간 이후로 잠드는 시간은 무조건 11시 이후다.
평소에도 그랬겠지만 10시 이전엔 잠들 수 없다는 암묵적인 룰이 혼자 마음에 생겼다.
하교하는 자식 얼굴은 보고 자야 할 것이 아닌가.
초저녁이면 여상하게도 잠이 오는데 그때쯤 자서 새벽에 일어난다면 정말 개운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이젠 어림없다.
고등학생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기도(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와
하교 후 얼굴을 보는 것과 돈을 많이 버는 것.
이 세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교복을 빨고 다리거나 학원 상담을 하거나 진로에 대해 애쓰는 것은 별개로 한다.
비타민을 우적우적 씹다가 물을 마셔 삼켜야 함을 깨닫고 얼른 입에 털어 넣는다.
이틀 정도 밤 10시에 먹은 저녁 식사가 일주일 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 일어난 일로 인해 현재까지 고통받는 현재완료와 같은 삶이 펼쳐지고 있다.
말로만 듣던 적게 먹어도 뱃살은 안 빠지는 40대의 삶(운동을 안 한 죄)
소화력이 떨어짐을 느끼며 가스활명수를 찾게 되는 이 손길.
갑자기 박카스와 가스활명수의 용도가 혼동이 된다.
자양강장제와 소화제의 차이겠지.
가끔 난 어떤 인간인가 생각해보려 한다, 의식적으로.
사실 거짓말이다.
비타 500을 먹다가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상콤하게 터질 듯하다가도 속이 꽉 막히는 요즘 난 생각하는 인간이 과연 맞는가.
그냥 대충대충 되는대로 살아온 것 같은 마음이 늘 있다.
세탁기 급수와 건조가 잘 되지 않아 서비스를 요청해놓고 드는 생각이 혹시 배수구가 막힌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역시나 맞았다. 온갖 쓰레기를 다 건져내고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나니 세탁 후 물도 안 넘치고 건조도 잘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돈 몇만 원은 아낀 거라며 생각하고 행동하다니 하며 칭찬을 했다.(에라이)
어쨌든 돈 아꼈으니 되었다. 이럴 땐 비타 500처럼 달고 상큼한 게 나란 인간 같다. 여전히 내 속은 가스활명수를 들이부어도 뻥 뚫리지는 않지만 배수구는 뚫렸으니 되었다.
방귀대장 뿡뿡이처럼 방귀만 나오니 내 속도 곧 뚫리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