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계속해서 죽어간다
우울병이 도졌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순간은 그럭저럭 살 만해서였는데, 지금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쓰는 행위가 그렇게 날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몇 주 전부터 다시금 식욕이 부쩍 줄었다.
20대 초반, 거의 한 달 동안 밥은 입에도 대지 않고 커피만 마시던 어리고 우울했던 나로 돌아갔다.
입맛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다.
퇴근 후 간간히 시켜 먹던 찜닭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속이 허해서 그런지 술을 먹어도 금방 머리가 아파서 잔을 내려 놓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도 재미가 없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도 재미없고, 아무 의미 없이 틀어 놓으면 감상에 젖을 수 있던 음악들도 소음 같다.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고양이가 관심을 갈구하며 야옹거릴 때는 너무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소리 지를 힘도 없어서 그냥 안아 준다.
다만,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소리내서 우는 날들은 더 많아졌다.
아마 내 고양이들이 내 눈물을 다 챙겨간다면, 너무 무거워서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살았다.
나도 한편으로는 죽고 싶지 않아서, 살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이 남들을 죽이고 있었나 보다.
나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타인들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난다.
차라리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나를 모른다면 그들이 힘들지 않았을 텐데.
눌러 왔던 자책감과 자괴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때는 내가 우울을 즐기나 싶을 정도로 우는 걸 좋아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 감정이 너무 지겹다.
내가 뭘 하든 남들처럼 평범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또 나를 울게 만든다.
어제는 속이 너무 답답해서 자살 예방 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가 않아 짜증이 났다.
그닥 나에게 도움이 되진 않았고, 세상 모든 이들의 짜증과 우울을 새벽까지 듣고 있는 이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끊어 버렸다.
정신과에 다시 가 보려고 했으나, 대면 진료 예약이 너무 힘들었다.
왜 정신과는 응급실이 없는지 모르겠다.
비대면 진료라도 받아야겠다 싶어서 후기가 좋은 정신과에 예약했다.
의사는 나보다 말이 많았고, 나는 또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짜증이 났다. 다들 너무 말이 많고 시끄럽다.
내가 한마디 하면 백마디 하는 의사는 나에게 심한 우울증세와 불안증세가 있다고 했고, 몇 가지 약을 처방해 줬다.
나도 내 힘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된다.
사랑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더니, 역시 정신병 치료도 못해 준다.
내가 나랑 싸워서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 나는 생각보다 엄청 강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인간이나 사랑이 아니라 약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야겠다.
당장 내일 청부살인업자가 와서 그동안의 내 과보를 말해 주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 주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꼭 고양이가 옆에서 운다.
그럼 나도 걔네들을 보면서 운다.
나밖에 없다는 듯이 부비는 얘네들 때문이라도 아직 조금은,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