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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Oct 30. 2023

잘 나가는 남편을 질투하는 아내

바로 나야 나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남편이 잘 나가는데 질투하는 아내가 바로 나다.
 
 
 팀장을 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며 선배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는 남편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며 오히려 부추겼었다. 욕심을 내도 된다고, 당신은 그 자리에서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상반기 내내 남편 대신 팀장이 된 그 선배 밑에서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보며 답답해했다. 제발 다음에는 좋은 기회를 남주지 말고 꿰차라고. 욕심과 도전은 한 끗 차이이니,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도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그렇게 남편은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잡아 팀장이 되었다. 입사 동기 중에서도 팀장 승진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부서 내에서도 최연소 팀장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뻤다. 팀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하자, '이제 사모님이라고 불리겠는걸. 꼭 임원 돼서 제대로 사모님 소리 듣게 해 줄게.'라고 남편은 화답했다. 사모님이라니. 이 나이에 사모님 소리를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늘 애써주는 남편에게 고마웠고 늘 그렇듯 실력으로 인정받고 노력하는 남편을 존경한다.


 고맙게도 남편은 내게 '내조를 잘해주어 팀장이 될 수 있었다. 고맙다.'라고 말했다. 내조에 신경을 쓰기는 한다. 예를 들어 회식이 아무리 잦아도 불평불만하지 않기, 주말 출근에도 짜증 내지 않기, 남편이 주말에 밀린 잠을 잘 때면 내버려 두기, 가사노동 시키지 않기, 시댁과 친정 부모님께 알아서 안부전화 드리기, 집안 대소사 알아서 정리하기, 아이 키우기 등. 이게 내조지 뭐. 별거 있나. 뭐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내조하는 아내로서는 상위권이라고 감히 스스로 예상해 본다. 말이라도(진심이겠지?) 그리 해주어 역시 고마웠다. 내조만으로 팀장이 될 리가 없을 터, 남편이 잘 해온 거다.  


 지난 한 달 동안, 남편은 새로 꾸려진 팀원들과의 라포 형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빠른 시간 안에 팀원들과 친밀감이 생겨야 업무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회식으로 퇴근은 항상 늦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와 마주하는 잠깐의 대화 시간에 그는 계속 팀원들 이야기를 했다.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을 설명해 주면서 곰, 여우, 새끼곰,  새끼여우라는 별명을 붙여 내가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직장 생활이라고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6-7년뿐인 경력단절여성인 나에게 조언을 구하다니. 그래도 남편보다는 두 살이나(?) 어리니, 팀원 입장에서 남편이 MZ세대들에게 꼰대 팀장으로 생각되지 않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또한 고마웠다. 바쁜 일상 중에 아내인 나를 잊지 않고 애쓰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물론 조언을 구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팀장으로서 팀 내에서 적응을 했을 테고, 또 오히려 늘어난 여러 업무로 정신도 없을 테고.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핸드폰과 노트북과 마주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갔다.  






 난 주말은 내 생일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주말에 맞이한 생일이다. 특별한 생일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이미 한 달 전, 남편은 내 생일날 골프 약속이 잡혔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지난 몇 년 간 내 생일은 평일이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은 출근하고, 각자의 하루를 보낸 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케이크에 초를 꼽고 노래를 부르는 정도의 이벤트로 생일을 보냈기에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냥 평일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남편은 출근했다고 생각하고 골프 라운딩 후 돌아오면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 되지 뭐, 생일이 별 건가. 하지만 아침에 출발해서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골프 스케줄이 확정된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자꾸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이 났다.


 생일 전 날인 금요일에 남편은 퇴근을 한다면서 직원이 추천해 준 식당에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생일날 함께 할 수 없으니, 미리 식사를 하려는 남편의 의도는 알겠다. 다른 사람들의 저녁 약속 제안을 몇 번은 거절했을 그림도 훤히 그려졌다. 그래도 나는 남편에게 고맙기는커녕, 짜증이 났다. 일단 그가 보내온 식당의 메뉴와 비싼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추천해 준 팀원에게 고맙다고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 식당에 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상 그래왔으니까. 그래서 다른 말을 보태지 않고 일단 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맛도 그저 그랬다. 식사 후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이 돈이면 그냥 고기를 배불리 사 먹지 싶었다. 생일 밥을 먹는 건데 왜 나에게 저녁 메뉴를 상의하지 않은 건지, 나에 대해 생판 모르는 팀원한테는 왜 추천을 해달라고 한 건지, 팀원들과 할 회식 장소는 그렇게 고민하면서 와이프를 위해 식당 검색할 시간은 없었던 건지,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만 가득 차올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왜 자꾸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피곤한 남편은 일찍 잠이 들었다.



 생일 아침, 남편은 오전 10시쯤 집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눈을 뜨자마자 남편과 딸의 아침을 대충 준비해 놓고는 수영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수영을 다녀온 사이 남편은 이미 출발하고 없을 테니까. 운동이라도 하고 와야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오후에는 부모님께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모처럼 사위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말이다. 남편 없이도 부모님과 딸과 함께 즐겁게 생일을 보냈다. 분명히 즐거운 생일이었다. 늦은 밤 남편 돌아왔고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는 생일날 라운딩을 가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그냥 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삼켰다. 대신 쌤통이라고 말했다. 사실 종일 남편의 카톡도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 그 또한 라운딩에 영향을 미쳤겠지. 자꾸만 뚱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게 되는 내가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쿨하게 라운딩을 다녀오라고 해놓고는 왜 자꾸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는 짜증으로 가득 찬 건지. 그렇게 30대의 마지막 생일을 보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내 안의 짜증과 남편에 대한 언짢은 감정은 내 안의 문제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이 발동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들어앉은 나, 이제는 어디에서도 써주지 않을 경력단절 여성인 나, 잘하는 것이 현재는 수영 뿐인(하지만 수영마저도 그냥 우리 동네 수영장에서 조금 잘하는 거뿐인) 나. 그런 나를 잘 나가는 남편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었던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도 잘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생각만 바꾸면 현재 누리는 모든 것들에 감사함이 넘치고 내 삶에 만족할 텐데, 나야말로 욕심이 끝이 없다. 아직도 성장 중인 나는 한 번씩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 그저 넘어지고 만다. 그나마 이번엔 이유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건가. 나 스스로를 내가 사랑해 주고 인정해주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고 인정할까 싶다.





남편의 승진이 진심으로 기쁘다. 그리고 남편의 성공을 응원한다.

동시에 나는 남편에게 질투를 느낀다.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남편이 살짝 밉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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