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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Aug 07. 2022

어머님은 방학이 싫다고 하셨어

#5 방학을 바다 깊은 곳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게.



엄마는 방학을 싫어하셨다.




방학만 되면 엄마는 언니와 나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으휴, 방학이 빨리 끝나든가 해야지."



시간이 흐른 2022년.

엄마가 방학을 싫어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학원가는 방학마다 특강으로 바쁘다. 학년 불문, 과목 불문.

 학부모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은 오전 특강은 언제나 만석이다.




 처음 학원가에서 일하게 됐을 땐, 방학 시즌 전부터 걸려오는 특강 문의가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당시엔 그저 부모님들의 교육열이 참 높구나.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렸던 시절만 하더라도 학원을 많이 다닌다의 기준은 기껏해야 2-3곳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떠한가.

 5곳은 기본에, 많게는 7곳까지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부모님들은 아이가 집에서 쉬는 게 그렇게나 싫을까.'싶은 생각까지 들곤 한다.



 "방학인데 늦잠 좀 자면 안 돼?"

 나의 물음에 엄마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흥.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지금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는 방학을 참 싫어하셨다.

 아니, 치를 떠셨다.


 "엄마는 방학이 너무 무서워."


 당시엔 '엄마가 날 참 싫어하나 보다.'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학원 선생님으로 여러 번의 방학을 겪어 본 현재는 방학을 두려워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넘치는 것은 체력이요, 남는 것은 시간이로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이 붕 뜨기 시작한다.

 모처럼 맞은 방학을 고생 끝에 주어진 자유 시간이라 생각할 테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가뜩이나 똥꼬 발랄 한 아이들의 끼는 넘치다 못해 선생님의 에너지까지 흡수해간다.


 배움의 공간인 학교, 학원에서도 자신들의 넘치는 끼와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제 집에선 얼마나 토끼처럼 뛰어다니겠는가.  온종일 아이들을 감당해야 할 부모님들의 고단함이 어느 정도 일지 느껴진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보는 나도 아이와의 만남이 가끔씩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그 만남의 시간이 하루 종일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상대라도 하루 종일, 게다가 매일같이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공포 아닐까.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똥꼬 발랄함이라면 어디서도 지지 않았던 초등학생 시절. 그 혈기 넘치던 초등학생을 키우던 나의 엄마도 그랬다.


 응석이 길어지면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간혹 가다 들려오는 중얼거림으로 그녀가 얼마나 방학이 끝나길 간절히 바라는지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맞벌이 가정이 늘었다 해도 돌봄은 여전히 모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출근하는 날이나, 쉬는 날이나 여성이 맡은 배역은 대부분 일인 다역.

 

 전업 주부의 삶은 어떤가.

 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는 맞벌이보다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며 돌봄은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사치라는 것을 여실히 알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zoom으로 학교 수업을 듣던 시절,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아이라면 제시간에 일어나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보호자의 감시 아래 수업 과정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었겠지만 부모의 부재로 인해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수업 시간을 소홀히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학원가를 전전하며 다니는 것은 단순히 높은 교육열 때문이 아닌, 학교란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대다수의 아이들이 적절한 수준의 돌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님들이 학원에 기대하는 것은 엄청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일정 시간 동안 적절한 돌봄을 받는 것. 그것이 부모님들이 학원에 바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보내는 방학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나름 선생님이라고 부웅 뜨는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 앉힌다.

 평소엔 학교를 핑계로, 체력을 핑계로 요령을 부리던 아이들의 고삐를 다시 한번 잡아 본다.

 


 지금은 돌봄이 필요한 방학이니까.















 오늘도 방학이란 고난 앞에 하루를 일주일처럼 보내는 전국의 가정 내, 외 보호자분들의 무운을 빕니다.




















어느 늦여름, 벤치에서 메로나


카톡!


"선생님 학교 숙제로 이런 과제를 받았는데 조언 좀 해주세요."


"..."



"아~ 부탁드려요~"










"올 때, 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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