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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은 Oct 12. 2023

그 웃음이 아름다웠던 이유

<웃어> 소연((여자) 아이들) Feat. 다비(DAVII)


 왼쪽 입꼬리를 반쯤 올려보고 다시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내 얼굴은 강한 경련을 일으키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언제쯤 ‘진짜’로 웃어보려나. 거울 앞에서 억지로 근육을 잡아 올리는 내 모습이 조금 애처로워 보였다.      


 무표정이 익숙했던 어린 시절 사람들은 웃지 않는 나를 보며 어둡다, 밝지 않다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이 더는 듣기 싫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척’을 했다. 마음에도 없는 손뼉도 치면서. 어색하기만 했던 웃음은 점점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갖추더니 어느덧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땐 나의 웃음이 ‘진짜’ 웃음인지, 아니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웃음인지 나조차 헷갈리게 되었다. 작위적인 웃음 뒤에 숨어 ‘진짜’ 웃음을 찾던 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본 건 ‘프로듀스 101’이라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아이돌 그룹 (여자) 아이들의 리더 ‘소연’이지만 당시에는 연습생으로 출연했었다. 전쟁 같은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미션곡인 Pick me에 자신만의 랩을 덧붙여 멘토에게 어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는 소녀들 틈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분투하는 그녀의 몸짓은 내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때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녀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여성 래퍼들이 경쟁하는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당시 세미 파이널에 오른 그녀는 경연곡으로 <웃어>라는 곡을 발표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담고 있는 이 곡은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연습실 구석에서 몰래 과자를 먹고 몸 관리 때문에 배고픔을 참았다는 그녀, 친구들이 수학여행 가는 모습이 조금 부러웠다는 그녀. 한 자씩 또박또박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작지만 강하고 어리지만 당찬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무엇보다 3분 남짓의 짧은 공연 중 내 귀를 온전히 집중시킨 부분이 있었다.     


‘힘들면 뒤돌아 눈감어’

‘언젠가 진짜로 웃자고’     


 눈물을 보이기 싫은 그녀의 마음인지, 약해진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그녀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주저앉아 울기보다 웃는 모습을 선택했다. 그런 강한 의지가 담긴 그녀의 마음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놀랐던 건 언젠가 ‘진짜’로 웃자고 말하는 그녀 때문이었다.     


 ‘진짜’ 웃음을 기다리는 나와 그녀지만 우리는 방향이 달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아서, 부정적인 말이 듣기 싫어서 짓는 나의 ‘웃음’은 나를 위한 웃음이 아니었다. 타인을 기준으로 내가 짓는 웃음일 뿐.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금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웃음으로 이겨내는 모습. 분명 내 안에서 세상을 향해 짓는 웃음이었다. 출발점도 시작점도 정반대인 나와 그녀의 웃음을 보며 내가 왜 ‘진짜’ 웃음에 가까워질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짓는 웃음은 아닐지라도 의지적으로 웃으며 인내의 시간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고 조금 존경스러웠다.    

  

 다시, 곡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곡을 잘 들어보면 Verse와 Bridge 부분이 끝나고 후렴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잠깐 멈추는 구간 있다. 음원으로만 들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약 1초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순간 공연을 하던 그녀는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 그녀가 지은 웃음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건 분명 ‘웃을 때 가장 예쁘다’라는 그녀의 웃음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지은 웃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웃는 얼굴을 끝으로 계속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퀸덤’을 넘어 ‘방과 후 설렘’에서는 멘토이자 선생님으로, ‘나 혼자 산다’에서는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하는 그녀였다. 연습생을 넘어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되고, 이제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눈부신 성장을 이룬 그녀를 보며 어쩌면 내가 오랜 시간 그리던 ‘진짜’ 웃음보다 웃고자 하는 그 ‘웃음’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무슨 웃음이냐 싶고, 도대체 마음 편하게 웃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웃어보았으면 좋겠다. 내 안에서 세상 밖으로 짓는 웃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안다. 애써 짓는 미소라도 말이다. 혹시 또 모르지, 그렇게 웃다 보면 그 웃음이 ‘진짜’로 웃게 되는 날로 데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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