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3. 지도 가운데 찍었더니 ”단양“이래,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23

by 한자카


Chapter23.


지도 가운데 찍었더니 “단양“이래,


아, 오늘이 그날이구나.


6월 6일. 금요일. 현충일.

황금연휴의 시작. 단양행 골프 일정이었다.

며칠 전 서울 본사 임원들과 지방 임원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 서로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고르다 , 대한민국 지도를 펴고 정확히 가운데를

꼭? 찍었단다. 단양이 나왔단다. 정답처럼. 딱 “


오늘의 정해진 일정은 대충 이랬다. 아침 7시 반, 출발!

10시 반쯤, 딱 맞게 도착해서 도착하자마자 식당으로 직행 후 따뜻한 국물에

속을 달래고, 잠깐 숨 고른 뒤, 11시 반. 라운딩이 시작되는 보람찬 일정?


회장님 댁에서 전무님과 함께 출발. 출발은~정확했다.

처음엔 여유로운 듯했지만, 강변북로에 오르자마자 도로는 곧 “정지 상태.

경부고속도로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동쪽으로 직진. 포천세종고속도로를 탔다.


전면 유리 너머로 옴짝달싹 못하는 차량들. 차창 밖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도로 위 풍경은 이미 회색빛, 어느덧 오전 9시. 용인 신갈 ic부근부터 차들이

고사직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도 어제 자기 전에 한 번 확인했었다.

그때도 3시간 남짓, 조금 긴 여정이겠다 싶었지만 뭐, 감내할 만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차에 오르기 직전에 다시 찍어봤더니 3시간 반.

살짝 늘어난 시간에 잠깐 눈썹이 올라갔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 주말이니까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면서 네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도착 예정 시간을 자꾸만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AI 기반의 실시간 데이터 교통 예측 알고리즘.

수많은 차량의 이동 패턴, 도로 상황, 시간대별 혼잡도를 학습했을 거라 믿었던

내비게이션은 그 순간, 그저 나만큼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는 아직은 약한가 보다.


그때, 회장님이 조용히 전화를 건다. “어이, 매니저!

오늘 두 팀 다 늦는다. 점심 이후로 티타임 넘기라고 해.”

잠시.. 후 회장님 폰이 진동한다.

“예, 지금 조율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달랍니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컵홀더에 있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바라만 본다

화장실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네비 화면에 휴게소라는 글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5km 전방.

마침 뒤에서 전무님이 말했다. “화장실 좀 들르죠.”

넵, “하지만 휴게소 진입로

1km 전부터 꼼짝없이 밀렸다. 우리는 결국 그냥 패스 ㅡ


조금 더 내려가다 기적처럼 내비게이션에도 없던 "졸음쉼터 "발견!

차를 겨우 밀어 넣고 , 잠시 줄을 서야 했다. 여자 화장실 쪽을 힐끗 보며, 남자라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가 이미 10시 반쯤.


다시 전화벨. 전무님이 누군가와 통화한다.

“야, 우리 밥 못 먹는다. 어디서 김밥 열 줄만 구해놔.”..

피식,,!ㅋㅋ 고오~급 스포츠와 김밥“이라니. 아이러니하고, 천국 갈 일이다.


회장님은 언제나 정확하고, 말수가 적고, 표정도 거의 없다. 그런 분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 한마디는 아주, 강렬했다.


“야, 조선 왕들은 아주 다 ~혼나야 돼!

이 먼 데까지.. 위배를 보내다니.. 너무 했다 진짜,,

”차 안의 공기, 순간, 정지, 정적을 뚫고 전무님이 푸흣, 나도 동시에 킥킥.


그리고 마침내 단양 골프장 도착. 12시 반, 딱 5시간 걸렸다.

골프백을 내리고 주차장으로 이동. 이미 늦은 시간,

주차장은 한산했다. 빈자리 맨 끝, 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배가 너무 고팠다. 근처 식당을 검색해 봤지만,

단체용 해물탕이나 닭백숙뿐. 혼자 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뚜벅뚜벅 다시 클럽하우스로 향한다. 안내 데스크에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직원 식당 있나요?”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한다. 저~쪽“

“외부인인데 결제 어떻게 하죠?” “현금만 받습니다.”

“계좌이체도 안 돼요?” “네.”. 네?


그 순간, 입술을 꽉 깨문다,


현금은.. 차에 있었다. 200미터 떨어진, 저 ~아래에 있는 그늘진 주차장.

다시 그 길을.. 또! 내려가야 한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아주 작게.


이미 배고픔을 넘어선 어지러움으로.. 빈혈? 나.. 죽나??


겨우 현금을 챙겨 다시 그 오르막길을 또 걸어 걸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판을 받아 들자마자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었다.

가격은 5000원, 오래된 식판에 담긴 반찬은 단출했지만

정말 최근에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그렇게 흡입하듯 허기를 달래고, 나는 조용히 차로 돌아왔다

그냥 그대로 운전석에 등을 묻었다. 가슴 밑바닥 어딘가에서 퍼지는

피로가 몸을 꾹꾹 눌러댔다.

그대로 몇 십분, 혹은 몇 시간을 눈 감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 도착은 밤 10시쯤,


오늘 하루, 총 운행거리 350여 km. 총 운행시간 8시간.

어제 채워 둔 기름 게이지가 반의 반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운행시간, 운행 거리, 바닥난 연료보다 내 기운이 먼저 탈탈 털린 기분이다.

아 ~운전이 이렇게 힘들구나. 새삼 느꼈다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와락 몰려오는 피곤함도 잠시,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오랜만에 주말이 비어 있었다. 스케줄표 어디에도 회장님의

존재가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잡히는 대로 훌러덩 벗고, 밀려있던 빨랫감을 한 무더기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예약 타이머. 8시간 뒤, 자동으로 돌아갈 고마운 세탁기.


그리고 최대한 스마트하게 씻은 후, 오랜만에 라디오를 ON'

늘 켜놓는 음악채널. 무심히 흐르는 선율에 몸을 맡긴 채 향초를 하나 꺼낸다,

오렌지 블로썸. 불을 붙이자 작은 불꽃이 꺼질 듯 말 듯 리듬을 탄다.


불빛이 없는 방 안, 음악만 흐른다,

휴대폰.. 너도 좀 쉬어라.. OFF. 휘릭~ 낙법 하듯 침대에 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이 평온함, 너무… 고생했다..




이전 22화 Chapter22. 지워지지 않는 "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