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22
Inner Monologue (내면 독백)ㅡ
내 몸엔 아기자기한 타투가 몇 개 있다. 대부분 잘 안 보이는 곳에 있다.
반팔 입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근데 딱 하나, 보이는 타투가 있다. 왼쪽 귀 아래 내 신분증..
그건 일부러 그런 거다.
그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2016년 여름이었을 거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대박을 친 그때였으니까.
9년을 버텨온 가게를 조용히 정리했다.
늘 손에 익던 와인잔을 마지막으로 닦던 날, 손끝이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놓는다는 건 그런 건가 싶었다.
내 소유의 오피스텔도 정리했다.
밀린 세금 고지서, 주류대금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연체였고, 몇 달 치 급여를
못 받은 직원들 눈빛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걸 마치고 나니, 남은 건 오피스텔 월세 보증금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마치 ‘당신 고생했어요’라며 세상이 건넨 마지막 위로 같았다.
짐을 싸며 나는 더 이상 ‘사장님’도, ‘액션배우’도 아니었다.
촬영 인맥은 이미 하나 둘 멀어진 후.
지인과의 대화창은 늘 텅 비어 있었고, 입금 알림보다 빠르게 고정 지출이
빠져나갔다. 잔고는 숫자를 잃어가고, 마음은 점점 작은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말을 꺼낼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이 그때 나는 그냥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냥 눈 딱 감고 , 한 번 저질러?’‘한탕, 어때.?.’
이상하게.. 그날은 유독 술이 당겼다.
가게 정리하고 남은 양주 몇 병이 집에 있었다
맥켈란 17년, 절반쯤 비어 있는 병.
그리고 선반 구석에 굴러다니던 삼양라면 한 봉지.
유리컵도 귀찮아서, 그냥 조그만 종이컵에 따라 부었다. 한 잔, 두 잔.
아니, 그냥 들이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알코올이 목을 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날은 무슨 감정 같은 게,
속을 타고 위로 쓸려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은 조용하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떠오르는 얼굴들, 실패한 결정들,
애써 외면해 왔던 어떤 선택들.
생각이 아니었다. 그건 잡념도, 고민도 아닌, 그냥 흘러넘치는 무언가였다.
후회도 아니었다, 어떤 감정, 감각만 가득한.
진짜 미친 듯이 마셨다. 다 필요 없고, 다 꺼지라고. 그리곤 그냥 뻗어버렸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가끔 연락하던 타투이스트한테 전화했다.
“야, 너 출장되지? 나 지금 술 먹어서 못 움직여.
그냥 이쪽으로 와. 빨리.”그렇게 그는 기계와 잉크를 들고 도착했고
나는 마치 옛날 노비들처럼**“각인”**을 요구했다.
‘나이 먹고 나쁜 짓 하면 안 되잖아.’
‘요즘은 CCTV도 어디나 있고, 어디서든 다 찍히는 세상이니까.’
혹여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도망 못 가게,
내가 한 짓을 나 자신이 먼저 기억하게. 흔적을 미리 박아둔 거다. 나 스스로한테.
그리고 지금도 그 타투는 남아있다.
그날의 나쁜 생각, 그날의 결심, 그날의 술 냄새까지, 다 각인처럼 붙어 있다.
지우고 싶지 않다. 잊고 싶지도 않다.
“그건 타투가 아니었다.
흔들리는 날마다 나를 붙잡아 줄 단 하나의 신호, 내가 나에게 남긴 구조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