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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색 Nov 23. 2022

[책 리뷰] 법정의 고수ㅣ모두가 주인공인 법정 이야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피소드 원작

자극적인 소재 없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따뜻한 드라마로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끝난 뒤에도 드라마 속 인물들과 에피소드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중심으로 법정 안팎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정감 있게 그려져 사람 냄새나는 힐링 드라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OTT라는 창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고 각종 SNS에 리뷰나 리액션 콘텐츠가 넘치게 만들어져 지금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니 한동안 쉽게 잊히진 않을 듯싶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우영우와 한바다 변호사들이 현실에 존재하길 바라기 때문에 기억 속에 흐릿해지지 않는 것일 수도.

드라마에서 매회 다루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일어날만한 일상에 가깝고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기에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화제가 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 7·8회 차에 등장한 '소덕동 이야기'편 에피소드 원작 사건이 담긴 책 <법정의 고수>를 읽게 되었다. 책에는 5~7장에 걸쳐 ‘높고 단단한 벽, 그리고 계란들’이라는 주제로 실제 법정 공방과 결과까지 다뤄진다.

저자이자 실제 사건을 맡았던 신주영 변호사는 당시에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이긴 경우가 거의 없고 관련 사건도 선례가 없었음에도 '법은 상식'이라는 생각으로 열정을 불태우며 사건에 몰입한다. 드라마 속 우영우와 한바다 변호사들처럼 주민들 및 각종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2009년 제2자유로 도로구역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으로 효력정지 가처분 승인을 받게 된다.


그러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선 본안소송에서 패소해 마을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전용도로 공사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다 10년 후 두 번째 효력정지를 받게 된다. 도로공사 중 구석기 유물 8천여 점이 대거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열정을 다해 부딪히고 애쓰다 비록 소송에선 실패했지만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도로공사에 관련된 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세상이 바뀌듯 관점이 달라져 관련 사항도 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후일담이 더욱 궁금해졌다.

<법정의 고수>는 단순히 법정에서 벌어지는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과 반론으로 점철된 법정 공방과 판사의 판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건 자체보다는 관련된 고소인, 피고소인, 변호사, 판사의 관점과 개인으로서 또는 법관으로서 현장 안팎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속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사건 자체도 교통사고나 사기 등 매우 평범하고 주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결국 승리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관점이 승리한다. 어떤 경우는 선입견과 편견이 깨지고 가해자였던 사람이 피해자임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건에서는 판단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분쟁이 해결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존의 관행에 맞서 한 개인의 억울함을 풀어보려는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려운 용어들로 알아듣기 힘든 법정 공방의 화려한 말솜씨와 기술 자랑이 아닌, 변호사의 마음과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신선했고 어렵고 멀게만 생각했던 법과 변호사나 판사 등 딴 세상 사람들 같던 법률가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어려운 법률 용어들은 저자가 주석으로 자세하게 풀어 사건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혔다.


법에 규정된 법률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법조인이자 직업인으로서 역할에 대한 책무와 양심, 개인적인 도덕관과 세계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람으로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들과 그 지난한 수고로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세상에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열정적으로 처리하고 보람을 느끼는 변호사가 위너”라고 말한다. “법정의 위너는 재판에서의 승소와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일에 대한 태도는 나를 감동시키고 영감을 주었다.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들 앞에서 그에 굴하지 않고 열정을 일으키고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은 모두 위너들”이라 말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하는 저자의 말이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에 남았다.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면 의뢰인의 마음에 직진하는 열혈 신입 변호사의 살 냄새나는 진심이 담긴 법정 이야기인 <법정의 고수>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법정에서 법조인과 모든 당사자들이 주인공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글들이 많았는데 이 중 개인적으로 마음을 울리는 글을 인용하고 마무리하고 싶다.


'소송은 생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송은 시작할 때, ‘사실이 이러이러하므로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불쑥 새로운 증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당사자의 마음이 바뀌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엉뚱한 데서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쉽게 승소를 장담할 수도, 패소를 예상하고 포기할 수도 없다. 소송은 살아 있다. (120쪽)

생각이나 관점이란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바뀔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이나 관점을 공격받으면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방어적이 되면서 필사적으로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의 인격까지 의심하면서 서로 대립할 필요가 없는 것, 사람은 누구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불완전한 관점을 보충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에게 하나의 진실을 추구해나가는 동반자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295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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