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날씨의 아이(2019)>
*영화 <날씨의 아이>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여름밤, 넷플릭스로 '날씨의 아이'를 봤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1,110만 달러 제작비다. 어떻게 애니메이션 한 편에 한화로 120억이 넘게 들어갈 수 있을까? 동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제작비가 1,100만 달러로 알려졌는데, 세트를 짓고 몸값 높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보다도 제작비가 오히려 더 들었다는 점은 상당히 놀랍다.
제작비가 많이 든 만큼 흥행 성적도 대단한데, 전 세게 적으로 1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세계에서 2억 6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이 정도의 극장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기생충이 아시아, 유럽, 미국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흥행한 반면, 날씨의 아이는 전체 1억 9천만 달러의 수익 중 약 70%인 1억 3천만 달러를 본토인 일본에서 벌어들였다. 일본의 남다른 애니메이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감이 오는 수치다.
영화는 고등학생인 주인공 '호다카'가 지방에서 도쿄로 배를 타고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간단한 배낭 짐을 지고 다니며 겨우 잠을 잘 공간 정도를 제공하는 숙소에만 머무르며 일자리를 구하는 호다카는 한 눈에도 가출 청소년으로 보인다.
대도시를 배경으로 가출한 소년의 이야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때쯤, 주인공이 실제로 읽는지 아니면 라면 받침으로 가지고 다니는지 싶은 책의 제목이 공교롭게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집을 나가는데 그 책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지만, 그가 가출한 배경은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호다카는 우연히 100% 맑음 소녀인 '히나'를 만나 함께 날씨를 조작하며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노 페인, 노 게인'이라고 했던가? 아쉽게도 날씨를 맑게 만드는 능력은 No Cost가 아니었는데, 히나는 제 살을 깎아가며 맑은 날씨를 만드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고, 부작용으로 그녀는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돌풍과 비가 멈추지 않는 인류가 마주한 대재앙 앞에서, 결국 히나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을 강행하여 마지막으로 맑은 날씨를 불러내곤 세계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호다카는 은혜를 입고도 고마운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잡으라는 테러리스트는 안 잡고 고등학생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경찰들을 따돌리고 하늘로 날아간다.
결국 매우 극적으로 히나와 다시 조우한 호다카는 그녀를 구해 다시 세상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고, 이에 열 받은 하늘은 보복으로 끊임없는 비를 내려 도쿄를 반 수장시켜 버리는 다소 암울한 결말에 이른다.
날씨의 아이를 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비교하여 본다면, 소녀를 선망하는 소년이 고난과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기시감이 들 정도로 예상되는 전개와 결말일지 모르지만 한 층 차원이 높아진 감각적인 묘사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이 영화를 감상하는 주된 포인트인 것 같아 아쉽지는 않았다.
비에 젖은 아름다운 도시의 몽환적이고 매력적인 색채와 맑은 날의 청량한 분위기가 대비를 이루어 감성적인 측면을 극한으로 자극하는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 중간중간 누가 봐도 PPL 같은 APPLE 제품들이나 기타 여러 상표들이 과하게 클로즈업되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었다. 영화였다면 현실적이라고 느끼고 넘어갔을 부분들이 애니메이션에선 너무 자극적으로 눈에 띄어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진달까?
아무튼, 전작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룬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카페로 치면 인테리어에 돈 엄청 쏟고 트렌디한 인스타 감성이 넘치는데 커피 맛을 보면 왜 6천 원이나 받는지 모르겠지만 손님은 넘쳐나 발 디딜 곳 없는 그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