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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Oct 03. 2021

한낮의 공포 속으로

영화 <미드소마(2019)>

*영화 <미드소마>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포란 무엇인가. 사람은 저마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다르다. 누군가는 싸이코 살인마는 무섭지 않지만 귀신이 무섭고, 누군가는 귀신은 무섭지 않지만 광대는 무섭다고 느낀다. 저 머다의 공포의 대상은 달라도 대다수의 공포영화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두운 밤에 사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공식은 깨지기 어렵다. 밤과 어둠은 공포를 끌어내는 가장 기초적인 근간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없는 공포영화란 물 없이 벌이는 수영 시합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불변의 법칙에 대범한 도전장을 내민 감독이 나타났다. 바로 유전을 연출한 ‘아리 애스터’다. 그는 차기작으로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시기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미드소마’를 내놓았다. 스스로 몸에 쇠사슬을 감고 강물에 빠져버린 감독은 과연 마술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결국은 감정이다

 필자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을 리뷰하며 강점으로 인물 구도를 꼽았다. 모자의 갈등이라는 구조에 컬트를 첨가한 느낌이라고 말이다. 미드소마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커플인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이야기가 중점을 이루고 있다. 이별에 근접한 두 남녀 이야기에 유전과 마찬가지로 컬트 집단을 끼워 넣은 구조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대니와 헤어지고 싶지만 연민과 느긋함으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크리스티안. 결국 계획에도 없던 스웨덴 여행을 떠나게 되고,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둘의 이별은 점점 더 기정사실화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보일 듯한 이별의 서사는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여자 친구 생일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소원해졌지만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헤어지지는 못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이 답답함을 자아낸다. 그럴수록 대니는 점점 더 기댈 곳을 잃어가고, 결국 호르가 마을 사람들과 동화될 수밖에 없는 당위와 공감을 이해시킨다.


 귀를 기울이면

 완성도 있는 일물 구도에도 불구하고, 미드소마는 아직 공포라는 장르를 완성하지 못했다. 과연 한낮의 공포를 어떻게 구현시킬까? 감독은 해가 지지 않는 특수성이 주는 불안감, 심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의식들과 예상을 뚫고 등장하는 고어한 연출로 어둠 없는 핸디캡을 메꾸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효과적이고 기발했다고 생각한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끊임없는 긴장감과 위화감으로 불쾌함까지 자아내는 특유의 음악이 그 주인공이다.


 감독의 전작인 유전에서도 음악의 활용이 도드라졌다. 낮은 음역의 지속음들이 음형을 이루어 전달하는 미묘한 감정은 멀미가 느껴질 정도로 효과적이었고, 미드소마에서도 마찬가지로 빠지지 않으며 불길함을 전달한다.

 미드소마에서는 음악의 역할이 한층 강화되었다. 호르가의 성전인 ‘루비 라드르’는 일련의 악보로 이루어졌는데, ‘조시’는 이를 사진으로 찍다가 걸려 살해당한다. 호르가 일족에게 음악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토록 상징적인 호르가의 음악은 굉장히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대, 중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형식으로 매우 반복적인 음형과 선율은 목가적인 분위기를 내는 동시에 해가 지지 않고 기괴하고 이질적인 의식을 반복하는 호르가와 매우 닮아있다. 스토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까지 아우르는 음악의 비중이 무겁게 다가온다.

노래하는 호르가 주민들


 그럼에도 드러나는 빈틈

 미드소마는 분명 훌륭한 작품이지만 빈틈은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역시 러닝타임이다. 150분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감독판은 무려 30분이 더 추가된다. 원래도 긴 이야기에 사실 감독이 하고 싶은 30분의 분량이 빠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판을 감상할 때는 몇몇 지점에서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감정선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대니에게 크리스티앙이 나름의 변명과 분통을 털어놓는 장면이 극장판에선 삭제되었는데, 해당 부분이 잘리고 맛이 가버린 크리스티앙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해당 장면을 감독판에서 확인하고 납득은 되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시청하면서 멘탈 관리가 힘든 영화를 세 시간 관람하느니, 타인에겐 극장판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앞서 말한 단점은 미드소마의 가치에 비한다면 확실히 미미한 수준이다. 왜냐하면 영화가 가진 개성과 매력이 이를 무마해 버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전작인 유전과 비교하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완성도에 있어서는 유전이 앞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 특유의 세계관을 더욱 확고히 구축한 점과 무엇보다 흥행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발전한 작품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과연 다음엔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될까? 장준환 감독의 불운의 명작 ‘지구를 지켜라’ 할리우드 리메이크 제작에 참여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부디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두 명장의 협업이 현실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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