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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로 쓰여지는 문학

여성의 몸과 기억이 프랑스 문학을 바꾸어온 방식

by 프렌치 북스토어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였던 엘렌 식수(Hélène Cixous)가 1975년 발표한 『메두사의 웃음(Le Rire de la Méduse)』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써야 한다(La femme doit écrire son corps)"고 얘기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여성은 지금까지 자신의 몸으로 말해오지 못했고, 남성의 언어 속에서 말하도록 강요받아왔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기 몸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당대 문학의 한계로 비판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문학에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쓰는 일은 드물었다. 역사적 기록에도, 문학의 서사 속에도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그들의 입으로 표현한 서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 오래된 질서는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정치적 권리가 확장되면서 자신들의 경험을 직접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여성 해방 운동(Mouvement de libération des femmes, MLF)이 프랑스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말하지 못했던 삶을 말하기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침묵했던 여성으로서의 경험들을 글의 중심으로 끌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주제 하나가 던져졌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억의 권력이 이동한 사건이었다. 임신, 차별, 폭력, 감정, 성적 경험이 문학의 일부러 편입되었다. 모든 것이 여성들의 시선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마침내 이러한 변화에 결정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작품들은 그녀의 몸에 각인된 경험과 감각의 기억을 사회적 구조와 그 속에서 권력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서술하는 문학적 증언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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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 『사건(L’Événement)』은 여성의 몸을 둘러싼 기억을 서술하는 것이 어떻게 문학적 실천에서 정치적 증언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 중심에 놓인 1963년 불법 낙태 경험은 프랑스 사회 전체에 존재했던 억압적 구조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낙태는 형법상 범죄였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합법적으로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고, 비위생적이거나 비등록 시술자에게 비밀리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 했다.


이러한 관행은 여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심각성을 달리했다. 부유한 여성들은 몰래 의사를 부를 수 있었지만, 가난한 여성들은 생명까지 위험한 방식으로 낙태를 감행해야 했다. 여성들이 처해있던 계급적 현실은 더욱 잔혹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계급적 불평등을 여성의 몸에 새겨지는 폭력성에 멈춰있었다.


에르노는 이러한 경험을 차갑게 기록했다.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한 문장들을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육체적 고통을 마치 사건을 기록하듯 써 내려갔다.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 통증이 밀려오는 리듬, 바닥에 쓰러졌던 장면, 혼자 감내해야 했던 절망감과 공포의 순간까지 이 모든 과정이 묘사되지만, 감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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