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에 손으로 빚은 지식, 책
빛보다 느리게 움직이던 중세 시대의 책은 금보다 귀했다. 책 한 장을 넘기는 일조차 기도처럼 정중했고, 지식을 옮긴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함께하는 수련에 가까웠던 시기였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학교와 학문은 자취를 감추었다. 신이 곧 진리였던 시대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설명되었고,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유럽의 중세 시대 동안 이러한 긴 침묵은 계속되었다. 빛이라 얘기했지만 지식을 담은 책의 입장에서 암흑 같았던 시기는 천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신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은 종교에 철저히 종속되었던 시기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축적된 철학, 과학, 수학은 이교의 지식으로 여겨졌고, 교회의 허락 없이는 논의조차 금기시되었다. 인간의 이성과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종종 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고, 지적 호기심은 사탄의 유혹처럼 억눌렸다. 지식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신앙을 흔든다는 사고방식은 교회가 학문을 통제하는 데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 되었다.
당시 유럽의 대학이 생기기 전까지 지식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수도원이었다. 학문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기 위한 도구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 역시 신학과 라틴어 경전 중심으로 제한되었지만, 고대의 지식을 제한적으로 보존하고 기독교적 틀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은 존재했다. 수도원의 회랑 깊숙한 곳, 사슬에 묶인 책 앞에 조용히 앉아 글자를 옮기던 필경사들이 바로 그 희미한 등불이었다.
고대 도서관은 불타고, 도시의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그 잿더미 위에서 수도원은 지식의 마지막 피난처로 남았다. 대부분의 수도원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스크립토리움이라 불리는 필사 작업 전용 공간을 마련해, 책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지속했다. 마치 성경의 말씀을 다루는 예식처럼, 신성한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책상마다 사슬로 묶인 필사본이 자리 잡았고, 수도사들은 정해진 규율에 따라 조심스럽게 책을 펼치고, 거위 깃펜을 꺼내 들었다.
책을 베끼는 일은 그들에게 단순한 기도와 다름없는 행위였다. 수도사의 하루는 새벽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었고, 기도, 식사, 노동으로 이어졌다. 그 고요한 일과의 일부로 필사 작업이 배정되었다. 필경사들은 햇빛이 드는 좁은 창가에 앉아 검은 잉크를 찍은 깃펜으로 한 글자씩 옮겨 쓰는 이 단조로운 작업을 이어갔다. 그들에게는 지식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신을 향한 신성한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실제로 몇몇 수도사들은 필사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피로를 책의 여백에 남기기도 했다. 9세기의 아일랜드 어느 필경사는 '눈이 아프다. 손이 얼었다. 신이시여, 제가 오늘의 마지막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와 같은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수도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필사하던 도중, 어느 필경사가 실수로 문장을 한 줄 건너뛰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를 눈치챈 또 다른 수도사는 옆 여백에 정중히 이런 주석을 남겼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두 번 죽였습니다.
한 번은 건너뛴 줄에서,
한 번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프랑스 리르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에는 벽에는
쓰라, 필경사들이여.
후세가 배울 수 있도록!
Scribite, scriptores:
posteri discant!
이라는 문장이 남아 있기도 하다.
중세의 책은 만들어지기보다는 탄생하는 것에 가까웠다. 수많은 손과 눈, 기도와 정성, 시간과 정밀함이 녹아든 한 권의 필사본은 예술과 신앙, 노동과 지식의 결정체였다.
당시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글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부분의 필사본은 양피지(parchemin)로 만들어졌다.
양피지의 제작은 가축의 가죽을 벗이고, 털을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가죽은 라임 워터(lime water)에 담가 기름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불순물이 제거된 양피지는 목재 틀에 팽팽히 고정시켜 건조시켰다.
건조된 양피지가 준비되면, 글을 쓸 자리를 결정해야 했다. 필경사들은 양피지 위에 실을 이용하거나 뾰족한 도구로 직선을 긋고, 좌우 여백과 단 열 수를 표시했다. 때로는 칼로 아주 얕은 홈을 내어 정해진 자리에 글자를 쓸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기도 했다.
줄을 긋는 작업은 단순했지만, 매우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했다. 한 장에 너무 많은 줄을 넣으면 읽기 힘들었고, 너무 적게 넣으면 공간이 낭비되었기 때문에, 줄 긋기는 균형과 집중이 핵심이었다.
필사를 할 종이와 그 위에 공간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본문을 옮겨 적는 작업을 진행할 차례였다. 필경사들은 거위 깃펜(quill)을 매일 관리하면서 자신이 쓸 글자에 맞는 펜촉을 직접 다듬었다. 잉크는 철가루와 오크나무 수액, 꿀벌 왁스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잉크가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색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필사본에는 가장 중요한 문단이 시작될 때는 크고 화려한 이니셜 장식 문자(illuminated initial)를 넣기도 했다. 금박이나 붉은 안료가 자주 사용되었고,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 성인의 얼굴을 새겨 넣기도 했다.
일부 필사본은 다양한 삽화와 장식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예술가 수도사들이 별도로 담당하기까지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책의 여백에 꽃무늬, 새, 성인들의 얼굴, 성경 장면 등을 세밀하게 그려 넣었고, 금박을 입히거나 청금석에서 추출한 안료로 채색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필사본 중에 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필사본으로 아일랜드에 켈스의 서(Book of Kells)가 있다. 정교하고 환상적인 장식과 색감으로 중세 미술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모든 필사가 끝난 후에는 마침내 제본 작업이 진행되었다. 종이를 한 장씩 꿰매어 한데 모은 뒤, 두꺼운 나무판 표지에 가죽을 씌워 마무리했다. 책의 표지에는 금속 장식이나 자물쇠, 혹은 버클이 달리기도 했다. 책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책 자체를 보관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중세 필사본은 800~1,000년 이상을 버틴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가장 많이 필사가 된 책은 당연히 성경이었다. 수도사들은 라틴어 성경을 수없이 베껴 쓰면서,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의미를 새겨 넣었다. 여기에 교부에서 발간한 철학자들의 주석서와 기타 신학서가 주된 필사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도사의 손끝에 놓인 책들이 모두 성경이나 성인의 전기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신학서가 아닌 낯선 이름의 문장들이 조심스레 옮겨지곤 했다. 키케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오비디우스와 같이 종종 위험한 고대의 지식들이라 불렸던 책들도 조심스럽고도 은밀하게 라틴어로 베껴졌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수사학, 자연학, 역사, 문학은 교회 바깥에서는 사라졌지만, 몇몇 호기심 많은 수도사들의 손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키케로의 《웅변론》과 《의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자연학》, 플라톤의 《국가》와 《향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리고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같은 책들은 집요하게 필사되었다.
이 지식의 복원 작업은 12세기 이후, 스페인의 톨레도나 시칠리아 등 이슬람 세계와 접경한 지역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아랍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던 고대의 지식과 이슬람 학자들의 서적들이 다시 라틴어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필경사들의 작업 범위는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아비센나(이븐 시나)의 의학서, 알후와리즈미의 산술서, 알하젠의 광학 이론이 번역되어 유럽 사회에 새로운 사고의 빛을 밝히기도 했다.
그 느리고 단단했던 손끝의 흔적은 여전히 유럽 곳곳에 남아 있다. 기적처럼 보존된 중세 수도원 도서관들은 인류 기억의 유산으로서 조용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스위스의 생갈 수도원 도서관(Abbey Library of Saint Gall)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도서관 중 하나로, 지금도 약 2,100권의 중세 필사본이 목재 서가에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 여기엔 기독교 신학서뿐 아니라, 고대 철학, 의학, 문법, 농업, 음악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이 담겨 있다.
책들은 나무 뚜껑과 쇠장식이 달린 제본 상태로 남아 있는데, 다수가 세계 유일본으로 존재하는 필사본들이다. 속지에는 여전히 수도사들의 작은 메모와 몇 세기를 지나도 바래지 않은 염원이 묻어 나온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는데, 인류 문명의 연약한 기억을 담은 성소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체코 프라하 외곽의 스트라호프(Strahov) 수도원 도서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크 양식의 장대한 천장화 아래, 금박 제본으로 장식된 고문서들이 벽면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약 1,200권의 중세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일부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지의 수도원에서 넘어온 유랑 필사본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도서관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아드몬트(Admont) 수도원 도서관에도 눈부신 백색과 금색의 조화, 높게 솟은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함께 1,400권 이상의 중세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이 도서관은 공간 자체에서 주는 신비함이 인상적이다. 필사본이 만들어졌던 공간에 들어서면, 책이 단순한 정보가 아닌 하나의 예술이자 신의 흔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 이미지 정보
1. 아일랜드에 켈스의 서
2. 스위스의 생갈 수도원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