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이 가져온 도서관의 변화

지식 큐레이터의 등장

by 프렌치 북스토어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언제나 시끄럽고 요란하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망치 소리 몇 번, 철을 깎는 정적 속에서 조용히 도래하기도 한다. 1450년, 이제는 연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인쇄술을 등장은 독일 마인츠의 한 금속공,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에 의해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계의 판을 바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인쇄기를 만들었을 당시만 해도, 아무도 이 기계가 유럽 전체의 정신 지형을 뒤흔들 것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성경을 조금 더 빠르고 깨끗하게 찍어낼 수 있는 수단쯤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그저 책을 만드는 방식만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지식의 유통 구조를 통째로 뒤집어놓게 되었다.



인쇄술 발명 이전에는
지식이 희귀하고 비쌌으며,
소수에 의해 통제되었다.
그러나 인쇄술은
이 모든 질서를 뒤집었다.


그가 도입한 활판 인쇄술(letterpress printing)은 책의 탄생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전까지 필경사들이 한 자 한 자 손으로 옮겨 써야 했던 작업을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정확하게 찍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자를 금속으로 빚고, 잉크를 덧입히고, 종이에 눌러 새기는 일련의 공정을 통해, 한 장 한 장에 동일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정밀하게 찍어낼 수 있는 기계적 지식 재현 시스템과도 같았다.


방식은 간단했다. 수 백 자의 글자들의 금속 활자를 만들고, 이를 하나하나 조합해 문장의 배열을 완성하는 식자 작업을 하고, 정돈된 활자판에 잉크를 고르게 묻히고, 그 위에 종이를 올린 후 압력을 가해 눌러 찍는 방식으로 인쇄가 이뤄졌다. 한 페이지를 다 찍고 나면, 활자판은 해체되고 다시 조합해서 다음 페이지를 찍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과정의 변화는 무엇보다 복제본을 만드는 속도 측면에서 눈에 띄는 강점이 있었다. 필경사가 성경 한 권을 옮겨 쓰는 데 몇 달에서 1년 이상 걸리던 작업을, 인쇄소에서는 단 며칠 만에 수십 권을 찍어낼 수 있었다. 같은 텍스트를 반복 제작하는 데 최적화된 구조 덕분이었다.


속도와 더불어 책 제작과 접근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양피지, 수작업, 장식, 필경사의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한 권의 책은 귀족이나 수도원이 아니면 소장할 수 없는 사치품이지만, 인쇄술 덕분에 재료는 값싼 종이로 대체되고,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춤에 따라 노동력도 감소하면서, 책은 일반 상인이나 중산층 학자들도 구매 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왔다.


책은 더 이상 수도원의 벽 안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일반인들에게까지 구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오면서 공공 도서관, 도시의 거리, 학자의 책상 위로 쏟아져 나왔다.


이 변화는 위대한 기술적 진보였지만, 그만큼 파괴적이기도 했다. 수도원의 고요했던 스크립토리움은 더욱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깃펜과 양피지를 들고 앉아 있던 필경사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시간, 신앙이 의미했던 절대적인 필요성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자리는 새로운 기술자들이 채워갔다. 인쇄공, 식자공, 교정자, 제본공, 삽화가, 출판업자, 서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매개로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책은 손에서 손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노동 세계와 문화 시장을 탄생시켰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모두가 환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쇄술이 보급되었음에도 프랑스 소르본 대학과 유럽의 여러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에서는 여전히 필경사들은 존재했다. 1476년 파리에서는 일부 필경사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인쇄기를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잉크가 아닌 철에 밀려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사건을 벌인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비밀의 방이
▍세상을 향해 열리다


활판 인쇄술이 유럽을 뒤흔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이라는 공간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수도원이나 궁정, 대학의 부속시설로만 존재했던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와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열리지 않는 거대한 서재와도 같았다.


그러나 인쇄된 책이 대량으로 시장에 풀려나오기 시작하자, 기존의 도서관들은 지식을 지키는 성소의 지위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지식이 해방됐다는 사실에 열광했고, 도서관은 이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바로 책의 물리적 위치였다. 과거에는 책을 도둑맞는 일이 워낙 크고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책은 책상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책이 놓여 있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는 있어도, 책을 손에 들고 옮겨 다닐 수는 없었다. 책은 정해진 위치에 붙박이로 존재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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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쇄술이 등장한 이후, 책은 점점 더 많이 생산되었고, 텍스트는 유통되기 시작했다. 책장의 책은 점점 늘어갔고, 도서관에서조차 책을 보관하는 장소와 읽는 장소를 구분해야 했다. 책장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 책상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책을 잠가두던 쇠사슬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또한, 인쇄술은 도서관의 지리적 위치마저도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도서관은 수도원이나 성곽 안, 일부 엘리트들만 출입할 수 있는 제한된 공간에 위치했다. 그러나 15세기 도서관은 후반부터 도시의 거리와 광장 한복판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도서관은 물론이고, 궁정 도서관, 왕립 도서관, 심지어 시민을 위한 도서관(public libraries)까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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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년에는 이탈리아 체세나에서는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 중 하나로 불리는 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Biblioteca Malatestiana)이 설립되었고, 16세기 중반 영국 옥스퍼드에서는 보들리언 도서관(Bodleian Library)이 일반 학자들에게 개방되면서 열린 서가의 시작을 알렸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왕실 도서관이 점차 확장되었고, 루이 14세 시대에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의 전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서와 지식 큐레이터


책이 많아졌다는 것은 단순히 관리해야 하는 종이 더미가 늘어났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정보의 폭발, 선택의 부담, 그리고 해석의 책임이 함께 밀려온다는 의미였다.


이전까지 책은 너무나도 귀했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소장한다는 것은 단순한 종이더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책 안에 담겨있는 지식을 암송하고, 기억하고, 또 향유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을 읽고 있는가,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리고 그 지식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가



하지만 책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지식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슨 책을 갖고 있는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읽고 있는가,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 지식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지식에 흐름을 빨라졌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석되었고, 또 더 멀리 공유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전환 속에서 누군가는 지식의 흐름을 설계하고 관리해야 했다. 사람들의 필요를 읽어내고, 시대와 학문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지식 큐레이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니즈는 다양한 시도로 현실화되었다. 1470년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 도서관에서는 독일에서 들여온 인쇄기를 도서관 내부에 도입하기로 했다. 책, 필사본을 직접 찍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쇄기 도입이 결정되고 이제 어떤 책을 찍어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어떤 판본을 신뢰할 것인지, 어떤 지식을 제공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도서관 사서의 몫이었다.


사서들은 교과 과정과 학문의 흐름을 분석하고, 수요가 많은 분야의 핵심 텍스트를 빠르게 선정하고 인쇄본을 찍어 냈다. 인쇄본의 품질을 감식하고, 서로 다른 판본 간의 차이를 비교해 오류를 바로잡았다. 학생들의 수준과 필요를 고려해 책을 분류하고 추천하는 그들의 역할은, 지금으로 치면 정보 전문가이자 교육 컨설턴트였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의 도서관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도서관에서는 16세기 초, 동일한 책임에도 인쇄판마다 내용이 미묘하게 다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서들은 신학과 법학 텍스트의 다양한 판본을 대조하고, 학자들과 협업하여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을 선별했다.


영국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은 1602년 개관 당시부터 체계적인 인쇄본 수집을 시작했다. 초대 수석 사서였던 토머스 제임스(Thomas James)는 책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도서 분류 체계와 목록화 작업을 통해 도서관 운영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수많은 정보를 구조화하고 접근의 편의성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서들은 묻혀 있던 지식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닿게 할 수 있었고, 넘쳐나는 지식 속에서 방향을 제시했고, 단지 어떤 책을 어디에 꽂을지부터 무엇이 중요한지, 또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인쇄술이라는 기술의 등장만으로 세상이 바뀐 것은 아니다. 기술은 도구였을 뿐,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을 전할지 결정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변화는 가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조용히, 그러나 가장 민감하게 시대의 움직임을 감지하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나눌 것인가?


그 질문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

그 해답을 함께 찾아준 존재.

바로 사서라는 이름의 지식 큐레이터가 변화와 함께였다.




※ 이미지 정보

쇠사슬로 묶여 있는 책, 길드홀 도서관(Guildhall Library), 런던

중세 시대 책들, 길드홀 도서관, 런던

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Biblioteca Malatestiana)

16세기 소르본 대학의 인쇄작업, B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