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에서 카네기까지,
미국 공공 도서관의 역사

모두를 위한 도서관, 모두를 위한 지식

by 프렌치 북스토어

1731년 어느 날, 벤자민 프랭클린은 친구들과 함께 평소처럼 독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 한 권을 두고 열띤 토론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토론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다음에 읽을 책을 구하기 어렵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 순간, 프랭클린의 머릿속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각자 책을 구매하는 대신
책을 함께 사고
공유하면 어떨까?


각자가 원하는 책을 따로 구매하기보다는 함께 구매하고 원하는 책을 공유하면 경제적으로나 관리적인 측면에서 실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펜실베이니아주에는 책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런던의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비싸고 배송도 느렸다. 더욱이 프랭클린과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원하는 책을 넉넉하게 구매하거나 혹시 손에 넣을 수 있더라도 개인 서재를 마련해 책을 관리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아이디어는 실용적이면서도 혁신적으로 느껴졌다. 프랭클린은 이 신박한 아이디어를 곧장 실현하고 싶었다. 그는 친구들을 포함한 50여 명의 젊은 상인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설득해 함께 필라델피아 도서관 회사(Library Company of Philadelphia)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회원들은 연회비를 내고 도서관의 책을 이용할 수 있었고, 수익은 다시 책을 관리하고 구입하는 데 쓰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된 필라델피아 도서관 회사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더욱 많은 회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규모를 점점 키워 미국 최초의 회원제 공공 도서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도서관의 운영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협의로 이루어졌다. 기존에 정부나 교회가 중심이 되어 운영되던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운영 방식이었다.


회사가 설립되고 약 10년이 지난 1741년, 프랭클린은 도서관 카탈로그를 통해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그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정식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책을 빌릴 수 있었지만, 보증금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은 맡겨야 했다. 하지만 책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다시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19세기 중반, 미국의 도서관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순간이 찾아왔다. 드디어 지식을 소수의 전유물에서 모두의 권리로 확장시키려는 용감한 선언이 시작되고 있었다.


1852년, 미국 최초의 대중을 위한 무료 공공 도서관, 보스턴 공공 도서관(Boston Public Library)이 문을 열었다. 이 도서관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철학,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보스턴 공공 도서관의 설립은 몇몇 사람들의 신념과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뉴햄프셔의 목사 아비엘 애벗(Abiel Abbot)은 "지식과 교육은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 권리여야 한다"고 믿었다. 프랑스 출신 자선가 알렉상드르 바테마르(Alexandre Vattemare) 역시 유럽 각국을 돌며 도서관의 공공성을 주장하다 미국에 그 사상을 전파했다.


이들이 주장한 것은 단순히 책을 보관할 도서관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을 통해 벌어진 사회적 격차를 줄이자는 신념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은 개인 기부가 아닌, 세금으로 운영되었고, 누구든 무료로 책을 빌리고, 정보를 검색하고, 또 배울 수 있는 장소로 사람들에게 선보여졌다.


이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보스턴 공공 도서관이 열렸을 당시, 미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계층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언어와 교육의 장벽에 부딪혔고, 많은 노동자들과 빈곤층은 배움의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스턴 공공 도서관은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는 사회 통합의 공간의 아이콘이 되었다. 도서관에서는 언어를 배울 수 있었고, 직업 기술을 익히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자발적 교육이 가능했다. 여성과 아동, 이민자와 빈민층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기에 도서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그들의 원한다면 책은 항상 읽을 수 있었다.


보스턴 공공 도서관은 초창기부터 놀라운 운영 철학을 보여주었다.


책은 무료로 빌릴 수 있었고, 열람실과 독서 공간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으며, 시민들이 요청한 책이나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또한 도서관은 정기적인 독서회, 강연,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보스턴 공공 도서관의 영향은 곧 다른 도시로 퍼져나갔다. 무료 공공 도서관이 하나둘 생겨났고, 세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이 새로운 제도는 미국 전역에 지식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도서관은 문맹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민자들이 도서관에서 영어를 익혔고, 여성들이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찾았다. 교육의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에게는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창문이 되었고, 이렇게 사회 구성원, 공동체 간의 신뢰와 연대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도서관 혁명


공공 도서관의 확장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후원으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카네기는 1886년부터 1919년까지 4천만 달러 이상을 공공 도서관을 위한 기금으로 후원하면서 미국 전역에 새로운 도서관 건물을 짓는 데 자금을 지원했다.


카네기는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책에 대한 갈증을 품고 성장했다. 그가 소년이었던 시절에는 지역 시민이 운영하던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당시 경험을 언급하면서,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무료 도서관 덕분이라고 덧붙일 만큼 책을 읽는 것에 대한 특별함을 강조했다.


짧은 독서 경험은 가슴속에 뿌리내리게 되었고, 카네기는 사업가로 성공한 후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카네기 도서관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도서관 건물을 지어서 기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역 사회가 재정의 일정 부분을 책임지도록 조건을 달았다. 도서관을 짓기 위한 토지와 건축 비용을 책임지고, 이후 운영비는 지방 정부가 부담하는 형식을 고수했다.


이러한 조건은 도서관이라는 건물을 짓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 사회가 스스로 지식을 관리하고 공유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노력은 경이로운 결과를 낳았다. 총 2,500여 개의 공공 도서관이 그의 기부로 세워졌고, 그중 1,689곳이 미국 내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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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뉴욕 공공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과 **워싱턴 D.C.의 카네기 도서관(Carnegie Library of Washington D.C.)은 사회적 기회를 확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1902년 착공해 1911년에 문을 연 뉴욕 공공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도서관 중 하나였다. 개관 당시부터 지식의 성전이라 불릴 만큼 웅장한 외관과 고전 양식의 열람실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이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회의 평등에 대한 상징성을 갖기에 충분했다.


특히 뉴욕 공공 도서관은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던 시기, 영어를 익히고 미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첫 번째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폴란드 출신의 어린 이민자였던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는 도서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고전을 접했고,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도서관은 나의 두 번째 집이었고,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나를 환영하던 장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1903년 문을 연 워싱턴 D.C.의 카네기 도서관은 당시 연방 수도 최초의 공공 도서관으로, 행정과 권력의 중심지 한가운데에 시민을 위한 지식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 도서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도 자료 열람과 교육 프로그램을 일정 부분 개방하면서, 시대적으로 도전적인 포용을 실현하고자 했다.


1920년대에는 워싱턴 지역 흑인 여성 단체들이 이 도서관의 일부 공간을 대여해 문맹 퇴치와 시민 교육을 위한 독서 모임을 열기도 했는데, 이러한 활동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서관이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는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의 철학은 명확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공공 도서관이라는 모습으로 현실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축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장,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기회는 누구든 스스로를 갈고닦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들은 미국 곳곳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성인들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도서관이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식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라는 이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 이미지 정보

1. 뉴욕 공공 도서관의 외관

2. 워싱턴 D.C.의 카네기 도서관의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