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질서를 만든 사람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책은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고, 필요한 자료는 몇 번의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마치 내가 무엇을 찾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도서관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876년, 미국은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삶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었고, 도시 곳곳에는 철도와 공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사름들의 생활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식의 흐름은 여전히 느리고 제한적이었다.
공공 도서관 사업으로 도서관의 수는 늘어났지만, 그만큼 혼란도 함께 증가하고 있었다. 같은 책이 도서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사서 없이 운영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지역마다 운영 방식은 제각각이었고, 도서관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책은 있었지만, 그 책들을 정리하고, 연결하고, 체계화할 통일된 시스템은 아직 부재한 상태였다.
도서관은 왜
제각기 따로 운영되어야 할까?
통일된 방식으로
책을 관리할 수는 없을까?
이용자들의 불편은 점차 문제의식을 낳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책을 찾기를 원했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자료를 관리할 수 있는 통합된 방식을 원했다.
마침 그해, 필라델피아에서는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행사를 계기로, 도서관 전문가와 학자, 출판 관계자, 교육자 등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센테니얼(Centennial) 교육회의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논의 끝에 참석자들은 한 가지 사실에 공감하게 되었다. 흩어져 있는 도서관들을 연결할 조직과 도서관을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서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 최초의 도서관 조직, ALA(American Library Association, 미국도서관협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정보는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하고,
그 흐름을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된다.
이 회의의 중심에는 당시 20대 중반의 젊은 사서, 멜빌 듀이(Melvil Dewey)가 있었다. 그는 이미 도서관 관리 분야에서 혁신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듀이 십진분류법(Dewey Decimal Classification)을 고안한 장본인이었다.
듀이는 협회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그의 열정과 철학은 ALA의 정신에 깊이 새겨졌다. 비록 초대 회장으로는 저스틴 윈저(Justin Winsor)가 선출되었지만, 협회의 기반을 다지는 데 있어 듀이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협회는 설립 직후부터 그 목적을 분명히 했다. 사서를 훈련받은 전문가로 양성하고, 책과 정보, 인력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통합된 도서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도서관을 실현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서의 전문적인 역할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도서의 수집과 분류가 표준화되어야 했다. 어떤 책을 구입하고 어떤 주제를 보완할지는 각 도서관의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 있었지만, 그 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디에 둘 것인지는 모든 도서관이 동일한 기준을 따르도록 해야 했다. 모든 이용자들이 어느 도서관에 가더라도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서들은 듀이 십진분류법과 같은 통일된 체계에 따라 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책이 엉뚱한 자리에 놓이지 않도록 관리하고, 청구기호를 부여하고, 도서 목록을 정확히 작성하여 누구나 쉽게 자료를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사서의 중요한 임무였다.
또한, 지역마다 서로 달랐던 운영 기준을 하나의 체계로 묶고 정착시키는 과정도 사서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다. 도서관 이용 경험이 일관되게 유지되려면, 어느 도서관이든 같은 원칙 아래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식의 대중화가 사회 전반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은 대도시를 넘어 지방 도시와 시골 마을까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앤드류 카네기의 공공 도서관 기부 운동을 비롯해 각종 국가적 장려 정책이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에 도서관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도서관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갔고, 도서관 이용객은 더욱 늘어났다.
과거와는 달리,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서비스할 새로운 역량이 필요했다. 이 문제에 주목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인물 역시 듀이였다.
그는 1887년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 미국 최초의 도서관학교(The School of Library Economy)를 설립했다. 단순한 책 관리인이 아닌, 도서관 전체를 이해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사서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미국 전역의 도서관으로 파견되어, 통일된 방식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지역 사회의 지적 기반을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롭게 형성된 사서라는 직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 계층은 다름 아닌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 여성은 전문직으로 진출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조용하면서도 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사서라는 자리를 통해 사회 진출의 통로를 확보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원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사서라는 새 직업을 통해 지역 사회의 교육자이자 문화 조직자로 성장했다. 1893년, 일리노이 대학교가 새로운 도서관학교 설립을 준비할 당시, 듀이는 “인재가 지금 내 옆방에 있습니다”라며 캐서린 샤프(Katharine Sharp)를 추천했을 만큼 사서라는 직업에서 여성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이후 미국 도서관 교육의 기틀을 다진 핵심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사서의 전문성은 점점 더 체계화되었다.
1909년에는 특수도서관협회(Special Libraries Association, SLA)가 설립되어, 산업·의학·과학·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 사서들을 위한 교육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서는 더 이상 단순한 도서관 직원이 아니라, 복잡해진 정보의 흐름을 조율하고, 지식 서비스를 설계하는 전문 인력으로 인정받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