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너머, 사서의 숨겨진 이야기
사서라는 직업이 처음부터 여성 중심의 직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사서직이 처음 생겨났을 당시에는 도서관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주로 뉴잉글랜드 출신의 지식인 계층, 백인 남성들이었다. 이들은 오랜 전통과 학문적 교양을 갖춘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었고, 도서관은 그들에게 하나의 지적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1870년에 약 20%에 불과했던 여성 사서의 비율이 1900년이 되면서 그 수치가 무려 75%로 급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말에는 여성의 비율이 90%에 달하게 되었다.
사서가 등장하게 되었던 과정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당시 미국 사회에 있었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여성 역할의 변화라는 사회적 흐름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까지 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정을 돌보는 전통적인 역할을 강요받고 있었다. 하지만 중산층 백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사회적 참여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를 원했다.
그녀들이 선택한 직업 중 하나가 바로 사서였다. 사서직은 지식과 문화, 교육을 다루는 전문직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 더해져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은 사서라는 직업을 희망했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사서가 여성으로 채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이나 학교와는 달리 도서관은 비교적 새로운 공공기관이었기에,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보다 더 유연하게 여성의 진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 안에서 독립적인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키워나갔고, 도서관은 점차 여성들의 문화적 자율성과 직업적 야망이 만나는 공간이 되어갔다.
이러한 변화는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900년을 전후로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 사서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났다. 이때 만들어진 사서의 이미지는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다양한 이미지 중에 가장 흔한 스테레오타입이 바로 깐깐한 노처녀라는 이미지이다.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에서 메리 해치 베일리(Mary Hatch Bailey)는 나이가 많은 노처녀 사서역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메리의 외모를 보면, 당시 대중들이 갖고 있던 전형적인 사서의 이미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단정한 옷차림에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여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다시 말해 남성과의 관계에서 소외된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설정을 내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침묵과 질서에 집착하는 사서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괴팍하거나 굴욕감을 안겨주는 존재로 널리 풍자되었다. 대표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핀스 부인(Madam Irma Pince)은 호그와트 도서관의 사서로, 항상 무언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도서관을 순찰하고, 학생들에게 "쉿!"하고 정숙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특히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책에 거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책에 낙서를 한 사람을 평생 출입 금지시킨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정도로 그녀의 책에 대한 애정을 남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사서에 대한 풍자는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사서에 대한 이미지를 풍자적으로 풀어낸 케이스로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회화 『사서(The Librarian, 1566)』를 들 수 있다. 그의 회화는 책으로만 만들어진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사서가 지식에 몰두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학문에 집착하는 사서의 모습을 조롱하는 풍자로 바라보기도 한다. 주로 책을 읽기보다는 수집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물질주의적인 책 수집가에 대한 패러디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서의 스테레오타입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경우도 있다. UHF라는 패러디 극에 등장하는 사서 코난(Conan the Librarian)은 B급스러움으로 사서의 이미지를 풍자한다. 그는 듀이 십진분류법을 모르는 도서관 이용자에게 고함을 지르고, 책을 연체한 이용자를 두 동강 내는 무자비함을 보여준다. 일반인들이 사서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과장된 행동에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사서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꼬집어 냈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알드 달(Roald Dahl)의 《마틸다(Mathilda)》에 나오는 펠프스 부인(Mrs. Pelphs)은 마틸다의 독서 열정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상냥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미이라(mummy, 1999)』의 에블린 카나한(Evelyn Carnahan)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성격의 모험심 가득한 사서로 등장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웡(wong)과 『샌드맨』의 루시엔(Lucien)과 같은 캐릭터들은 방대하고 신비로운 지식을 지키는 강력하고 지적인 수호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언제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인공의 길잡이가 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일화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끔은 사서라는 직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서를 하기도 한다. 18세기 전설적인 모험가이자 바람둥이였던 자코모 카사노바는 말년에 보헤미아의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로 13년을 보내기도 했다. 교황 비오 11세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 되기 전, 밀라노의 암브로시아 도서관에서 19년간 사서로 일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FBI 창설 멤버로 더 유명한 J.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도 의회 도서관에서 잠시 사서로 일한 경력이 있을 정도다.
이와는 반대로 조용히 세상을 바꾼 사서들도 존재한다.
대공황 시기 미국의 켄터키(Kentucky)주에는 말 타는 북 위민(book women)이 존재했다. 말 위의 사서들로 알려진 그녀들은 오지까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으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깊은 늪에 빠져 있었다. 도시의 생활도 힘들었지만, 특히 켄터키 동부 산악지방의 시골 마을들은 가난과 고립, 높은 문맹률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서관은 물론이고, 책 한 권 찾아보기 어려운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교육은 사치로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책은 더더욱 손이 닿지 않는 다른 세계의 사치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북 위민이 있었다. 책을 싣고 말을 탄 여성들이 도서관이 없는 산골 마을까지 책을 직접 가져다주었다. 말을 이용한 이동도서관과도 같은 개념의 이 사업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중 하나였던 Pack Horse Library Project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대부분 평범한 여성 사서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말 위에서 보내야 했다. 새벽녘에 말에 안장을 얹고, 양쪽 가방에 책을 가득 실은 채 눈 덮인 언덕을 넘고, 진흙탕 계곡을 건너 책을 전달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우비 하나로 온몸을 감싸고,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 먼지 나는 산길을 오르내렸고, 매일 30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책을 전달했다. 때로는 말로 도착할 수 없는 마을도 있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채 도보로 이동해서 책을 전달했다.
그녀들이 배달한 책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동화책과 소설, 성경은 물론이고, 농업 기술 팸플릿, 위생 정보, 손으로 복사한 요리법까지 있었다. 당시 지역 사람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들부터 아이들을 위한 책, 교육과 기술과 관련된 지식들이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아이를 등에 업고 길을 나섰고, 어떤 날은 주민들이 책을 기다리는 작은 오두막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1935년부터 1943년까지 약 8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여성들이 수만 권의 책을 수천 개의 산간 마을에 전달했다.
또, 다른 조용한 변화의 주역으로 레지나 앤더슨(Regina Anderson 혹은 Regina Andrew)이 있다.
1920년대 뉴욕 할렘은 흑인 문학, 흑인 음악, 흑인 미술, 정치와 철학이 하나의 큰 숨결로 터져 나오던, 미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문화 실험장이었다. 특히 흑인 공동체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예술적 언어를 재정립하고, 세계에 알린 이 시기를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즈 클럽의 리듬, 거리의 시, 무대 위의 연극, 그리고 책 속의 문장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흑인의 정신을 고양시키던 시기였다.
이 찬란했던 예술의 중심에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젊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북돋아주던 사서 레지나 앤더슨이 있었다. 그녀는 도서관이라는 작은 방 안에서 새로운 세대의 흑인 지식인들이 깨어나도록 돕는, 말 없는 후원자이자 문화의 설계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앤더슨은 뉴욕공립도서관 135번가 분관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사서였다. 당시 공공도서관에서 흑인 여성이 사서로 일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음에도 그녀는 특권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흑인 공동체와의 상생을 도모했다.
그녀의 도전은 도서관 안팎에서 진행되었다. 퇴근한 후에는 맨해튼 세인트 니콜라스 애비뉴 580번지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는 매일 같이 작은 파티가 열랐다. 랑스턴 휴즈, 조라 닐 허스턴, 카운티 컬런과 같은 훗날 미국 문학사를 대표하게 될 인물들이 그녀의 파티에 참석했고, 앤더슨은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했고 그들과 토론하면서 흑인 공동체를 유지했다.
앤더슨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이었다. 그녀는 흑인 문학과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강연, 낭독회, 소규모 토론회를 꾸준히 열었다. 그 결과 그녀가 있는 도서관은 공동체 문화와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열린 플랫폼으로 활용되었다.
※ 이미지 정보
1. 메리 해치 베일리,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년
2. 사서(The Librarian),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66년
3. 사서 코난(Conan the Librarian), UHF
4. 펠프스 부인(Mrs. Pelphs), 《마틸다(Mathilda)》, 로알드 달(Roald Dahl)
5. 에블린 카나한(Evelyn Carnahan), 영화 『미이라(mummy)』, 1999년
6. 북 위민(book women), 노트 카운티(Knott County), 1938년
7. 레지나 앤더슨의 사전
8. 레지나 앤더슨의 집 옥상에서 열린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