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두절된 동료 직접 찾고 기금 모금까지, 돌연사.고독사 등 위험 노출
도심 여기저기에 소박하게나마 크리스마스 트리가 걸린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두 명의 대리기사가 좁고 가파른 부산 전포동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이어 전화를 거는 표정이 초조하다. 한참 후 꼭대기 동네에 다다른 그들. 가쁜 숨을 내쉬며 길찾기 앱을 보더니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 깊숙이 자리한 허름한 원룸 건물로 들어선다. 그들이 찾아 나선 건 대리운전 고객이 아니라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 동료 기사였다.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우울하게 지냈대요.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든데 허리까지 점점 안 좋아져 대리 일도 못하게 되니 낙담해 아예 칩거에 들어가 버린 것 같아요."
40대 초반의 대리기사가 한 원룸 앞에 서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동안 50대 후반의 기사가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웃들이 깰까 신경쓰면서도 번갈아 가며 문을 두드리고 인기척이 있는지 귀를 귀울였다. 갑자기 한파가 닥친 밤, 한기가 원룸으로도 스며들었을 텐데 출입문에 얼굴을 붙이고 아무리 귀 기울여도 보일러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전화 연결은 여전히 되지 않고, 그 새벽에 철문을 따 줄 열쇠공을 구할 수도 없어서 두 대리기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원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대리기사 270명이 모여 있는 '카부기상호공제회'(아래 카부기공제회) 소속 기사들이었다. 카부기공제회는 노동조합과는 성격이 달랐다. 매달 회비를 내는 것은 동일했지만 그들은 회비로 모은 돈을 대부분 입원 수술을 받은 회원을 돕는 데 사용했다. 50대 후반 대리기사 김철곤씨는 그 공제회 사무국장인데, 소속 기사 중 혼자 사는 이가 계속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직접 찾아다니고 있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공제회 김 사무국장을 다시 만났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듯 몹시 피곤해 보였다. 동료 대리기사는 여전히 통화가 안 된 모양이었다. 차에는 통화가 되면 갖다주려던 즉석 밥과 컵라면 꾸러미가 며칠째 그대로 실려있었다. 지난밤 동행했던 40대 초반의 대리기사도 공제회 운영위원이었는데 1층에 적힌 원룸 관리인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한 번 찾아가 봐 달라고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이 혼자 산다는 2021년 통계청 조사 결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대리기사들은 이혼율이나 혼자 사는 비율이 통계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년 남성 고독사가 여성 고독사에 비해 4배 이상 많으며, 절반 이상이 50∼60대에서 발생한다.
대리기사들은 대부분 남성에, 평균 연령이 53세일 만큼 중장년층이 많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대리기사들은 고독사 위험이 특히 높은 직종 중 하나다. 거기다 지병이 있거나 건강 검진을 잘 받지 않고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병을 키우고 있는 경우 돌연사, 고독사의 위험은 훨씬 높아진다.
카부키공제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11월 운영위원들과 함께 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 5500명이 모여있는 밴드에서 건강 검진 독려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같은달 25일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 도담도담에서 진행된 건강 검진에는 총 10명의 대리기사가 참석했다. 이동노동자지원센터(쉼터)에서 진행된 건강 검진치고는 비교적 많이 참석한 것이었다.
부산경남의 이동노동자쉼터들에서는 근로자건강센터, 카카오T 등과 연계해 기초 건강 상담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대리기사 수에 비해 참여자는 극소수다. 한 명도 오지 않는 때도 있어 건강 검진을 잠정 중단한 쉼터도 있다.
이동노동자지원센터가 위치한 부산 서면에서는 센터가 문을 닫은 오전 6시 이후에도 콜을 기다리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카부기공제회 사무국장은 일당을 맞추기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언제든 콜을 잡을 수 있도록 대리앱을 켜 두는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대리운전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자랑을 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불안 불안합니다. 야간 근무는 2급 발암 물질로 분류돼요. 장기간 야간 근무는 심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고 근골격계와 수면장애, 정신적인 문제 등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김철곤 사무국장)
실제로 지난해 5월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에서는 부산경남지역 대리기사 세 명이 급성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이상 증상으로 잇달아 돌연사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매일 센터를 이용하던 대리기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대리기사의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카부기공제회와 공동 조사)를 1주일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초순 여러 언론을 통해 그 결과가 이미 보도된 바 있는데, 대다수 대리기사들이 강도 높은 심야 근무에 종사하면서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기 건강 검진을 받고 있는 비율은 응답자 중 절반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다.
지난해 1월 설립된 카부기공제회에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270명의 대리기사들이 모여있는데, 1월 26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총 19명의 회원에게 자체 지급 기준에 따라 각각 입원·수술비를 최대 100만 원까지 지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입원·수술비 지원을 받은 회원 대부분이 50대 이상인 탓에 그 중 4명은 추가 수술이 필요하거나 심각한 후유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9월 중순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요양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회원도 있었고, 퇴원은 했지만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받아야 하는 회원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초 민락수변공원에서 콜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회원은 다행히 누군가가 119에 신고를 해줘서 목숨은 건졌으나, 쓰러지는 과정에서 얼굴뼈와 치아가 대부분 골절돼 지금도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 공제회 설립 이전부터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카부기공제회 가입 후에도 수술을 받은 한 회원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으로 매일 밤거리로 나서고 있다.
병이 깊지만 카부키공제회에서 지원해주는 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입원 치료를 포기하는 공제회원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지난해 5월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고독사한 상태로 사흘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고독사한 대리기사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SNS에 그가 남긴 흔적, 그를 아는 대리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망 당시 B기사는 50대 중반이었다. 그가 대리기사 밴드에 나타낸 것은 6년쯤 전인 2016년 9월. 과거 야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훤칠하게 키가 컸고 군살 없이 보기 좋은 체형이었다.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실없는 농담을 툭툭 던지던 호인이었다. 대리 일을 마치면 아침까지 문을 여는 동래의 한 한식당을 찾아가 알고 지내는 대리기사들과 술을 즐겼다.
그는 누가 시비를 걸어도 못 들은 척 무시해버릴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2020년 8월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10년 넘게 알고 지낸 형이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고 7~8일 만에 발견되는 과정을 지켜봤고, 충격 속에 명복을 비는 글을 대리기사 밴드에 올린 적도 있었다. 기구하게도 2년 뒤 자신 역시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2021년 11월께, B기사가 운전 도중 의식을 잃는 일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알게된 카부키공제회 사무국장이 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가 5000명 이상 모여 있던 밴드에 올렸다.
당시는 동료 기사들이 코로나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속출하자 그 밴드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였다(관련 기사 : 대리기사 사고 소식에 200명의 동료들이 벌인 일). 많게는 천만 원 가까운 돈이 모여 어려운 동료기사에게 전달되기도 했는데, 모금이 계속되다보니 모이는 금액도 점점 줄어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즈음에 허리가 아파 일을 못하고 있던 다른 동료도 함께 돕기로 돼 있어 B기사에게 전달된 돈은 백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급하다는 두어 가지 수술 일정부터 먼저 잡았지만 병세가 중하다 보니 입원 치료비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퇴원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된 치료를 이어가지 못했다.
카부키공제회 사무국장은 2022년 3월 초순 열린 모 정당과의 정책협약식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하다 안부도 물을 겸 B기사에게 전화했다. 계속 일을 했다고 둘러댄 그와 협약식 당일 만난 사무국장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몰골이 영 말이 아니었어요. 사실은 몸이 계속 안 좋아서 일을 못하고 있었다고 실토하면서 그래도 이거라도 참석해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5월에 공제회 봄소풍이 잡혀있었는데 꼭 좋아져서 그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죠."
그러나 그는 봄소풍에 나타나지 않았다. 봄소풍이 끝난 뒤 한 숨 돌린 사무국장은 안부도 물을 겸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가 자주 가던 한식당을 찾아가 그와 곧잘 어울리던 대리기사들에게 그의 근황을 물었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사무국장은 회원명부를 뒤져 당장 그의 주소지로 찾아갔다. 그가 사는 곳은 오래된 여관을 원룸으로 개조한 곳이었는데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건물이었다.
사무국장이 찾아간 날은 그가 고독사한 채로 발견되고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죽은 지 3일 만에 발견됐다고 관리인이 이야기해주었다. 밥을 제대로 안 해 먹는 것 같았고 월세도 3개월 밀려있었다고 했다. 반년 가까이 일을 못 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B기사의 마지막 행적을 취재하다가 그가 숨을 거두기 두 달 전 노동공제연합 풀빵에 가입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풀빵이라는 명칭은 노동자 전태일이 자기 차비로 배고픈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12km를 걸어서 퇴근하곤 했던 일화에서 따왔다). 풀빵은 대리기사 공제회 같은 노동공제회들이 모여있는 전국 조직이었고, 가입 후 6개월이 지나면 150만 원의 대출을 해주었다.
대리기사 공제회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십여 명의 대리기사들이 풀빵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중 절반이 병원비가 필요해서였다. 끼니를 챙기기도 어려웠던 B기사가 대리기사 공제회 외에 풀빵에도 추가 가입해 매월 6천 원씩을 더 냈던 것도 병원비 등으로 쓸 돈을 대출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할 수 없었을 뿐.
연락 두절된 동료 기사를 같이 찾아갔던 40대 초반의 운영위원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늦은 오후쯤이었다. 공제회 사무국장은 운영위원이 보내준 캡처 화면을 보자마자 잘됐다며 펄쩍 뛰기까지 했다. 연락이 두절됐던 공제회원이 운영위원에게 보내온, 어쨌든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는 즉석 밥과 컵라면을 그 회원집 앞에 두고 와야겠다며 들뜨고 바쁜 걸음으로 차를 몰고 갔다.
허리가 너무 아파 꼼짝할 수도 없고 일도 못하고 있다는 그 회원의 사연이 전해지자 대리기사 공제회 밴드가 안타까움으로 술렁였다. 일주일 뒤, 공제회비는 회원들의 입원수술비 보상 등에 쓰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긴급하게 구호가 필요한 회원들을 돕기 위한 '만원의 사랑'이 제안되었다.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월 1만 원을 후원할 33인의 공제회원을 모집하는 '만원의 사랑'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이른바 '완판'되었다. 심지어 공지를 늦게 확인한 회원들 중 지금이라도 참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오는 회원들도 있어 33인은 1월 8일 현재 43인까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1년치, 6개월치를 선입금하는 회원들까지 있어 기금이 조성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131만 원이 모였다. 공제회 사무국장 등 운영진은 만원의 사랑에 참여한 회원들에게 감사하며, 어려운 동료 회원 열 명을 선정해 설 전까지 긴급구호품과 명절 선물을 전달할 준비에 들어갔다.
최근 5년 간 증가 추세에 있는 고독사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다. 대리기사 같은 취약 노동자들의 돌연사, 고독사는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밀접하다. 지난해 5월의 실태조사처럼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대리기사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면 그들이 콜을 기다리는 번화가로 직접 찾아가는 보건당국의 결단도 필요한 시점이다.
치료가 필요하지만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저금리 신용대출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와 경기도의 '고용취약노동자 긴급자금소액융자'와 '경기 극저신용대출사업' 같은 사례들이 있다.
소액대출 회수율이 각각 99%에 육박했거나 90%를 넘겼다는 해외의 그라민 은행과 국내의 '더불어사는사람들', 이들처럼 대출 수혜자들이 채무 변제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협약된 기관을 통해 맞춤형 취업·창업을 알선하고 후원 의사를 밝힌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게 하면 더 좋다. 사람을 살리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보건당국의 용기 있는 행정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 교육팀장입니다. 이 기사는 카부기상호공제회 김철곤 사무국장을 동행 취재한 것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