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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안방에도 코로나가 도착했다

'귀신은 뭐 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


남 일 같던 병마가 나를 돌 밥돌 밥의 세계에 입문시키더니 기어코 우리 집까지 쳐들어 왔다.


회사 다른 부서에서 확진이 나오고 같은 부서에서 확진이 나왔다. 남편은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안방에 누우면서도 자신은 일을 열심히 해 몸살이 난 거란다.


느낌이 '팍' 왔다. 올 것이 '딱' 왔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아빠가 아프니 쉬게 해 드리자고 접근금지를 명했다. 30분 알람을 맞춰 거실을 환기했다.


남편은 자가 키트 음성인데 환자 취급을 한다고 눈을 흘기며 신경질을 냈다.


남편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코로나가 용케도 성질 더러운 남편을 찾아왔다. 딱 남편만 들볶다 떠나 주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걱정하지만 왠지 모르게 고소하다.



침대 위에서 결투 중인 프로안방러에게 해열진통제와 감기몸살약을 대령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이참에 '착해지는 약'도 먹여보자고 한다.

"안 그래도 엄마가 착해지는 약도 처방받아 넣었지. "

화를 잘 내고 특히 가족에게 함부로 잘하는 남편을 아이들은 잘 안다. 10년간 주야간 일하고 어쩔 땐 낮에 자는 아빠를 아이들은 잘 안다.


이틀을 방에서 두문불출했던 그가 오늘은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코로나에게 실컷 얻어터진 붉은 얼굴에 쥐어뜯기다 못해 그새 길어진 머리카락. 야간 마지막 날 퇴근한 듯한 쭈뼛쭈뼛한 몰골로 거실 모퉁이를 기대어 섰다.


깜짝 놀라 들어가라고 손을 내 저었다.

꼭 남편의 잘못도 아니지만 집에 갇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도 잘못은 없다. 눈치가 신생아 손톱만큼만 이라도 있으면 이 시국에는 화를 내면 안 된다. 그가 화를 내면 인간도 아니다.


유명한 병명 달고 먹을 것 다 먹고 할 말은 다 한다. 마스크 끼고 집이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며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쫓는다.


"다 나가. 당신도 막둥이 데리고 나가."


코로나 걸린 인간이라는 걸 까먹고 대면한다.

눈을 크게 뜨고 들고 있던 주방용 가위와 집게를 휘저으며 말했다.


"당신도 양심이 있어라. 영문도 모르고 잘못도 하나 없이, 학생이 학교도 못 가고 집에 갇혔는데 시끄럽다는 소리가 나와? 아빠 코로나 걸렸다고 곡이라도 합창해줄까? 애들이 식물인간이야? 애들이니까 이 상황에서도 웃고 즐거움을 찾는 거야. 지루하고 아프다고 심술부리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정신 수양 더 해. 나오지 마. 한 번만 더 나오면 저녁 배식 안 넣어준다."


구부정한 남편은 꼬리도 감추고 방으로 들어갔다.


꼿꼿한 나는 알코올 소독 스프레이를 들어 남편이 서 있고 지나갔던 공간에 사정없이 뿌렸다. 열쇠를 채우듯 안방 손잡이에 집중적으로 발사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말에 벌써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있다. 막둥이도 옷을 꺼내와 입혀달라고 한다.


생각할수록 부화가 난다.

새벽에 일어나 글 읽고 글 쓰고. 아침에 밥 두상 차려내고 설거지하고 끓는 물에 소독하여 정리하며, 아이들 공부시키고 피아노 가르치고 분리한 빨래 돌리고 유튜브 보며 한 시간 근육 운동하고. 점심에 다시 밥 두 상 차려내고 설거지하고 끓는 물에 소독하여 정리하며, 아이들 공부시키고 빨래 개며 이제 커피 한 잔 마시고 저녁에 먹을 고깃덩이를 자르며 빨리 끝내서 땅에 등을 붙이려는 상상을 할 찰나.


안방의 할 짓 없는 코로나 인간이 내 머릿속 cctv나 지켜보고 있는 듯 방에서 나와 우리를 밖으로 나가란다.


30분에 한 번씩, 겨울새바람 들이기로 아이들을 지키려 아등바등하는데, 너무 자주 씻어 손은 거북이 피부처럼 갈라져 붉게 올라오는데.


방구석 코로나가 하루 종일 쉬면서 열리는 입이라고 잔소리를 내뱉는다.


나는 이제 몸살이 나 드러누울 지경인데 시어머니 아드님은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경과를 묻고 아이들의 상태를 물으며 너도 100% 걸릴 것이란 악담을 뱉음에 나는 이제 웃으며 받아친다.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전화 안 주셔도 되겠습니다. 일 있으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시아버지 역시 남편의 경과를 묻고 아이들의 상태를 물으시고 너의 손에 100% 달려있다고 부담 주심에 나는 이제 웃으며 받아친다.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전화 안 주셔도 되겠습니다. 일 있으면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아들만 걸려서 배가 아픈 것이냐? 이제 내 손, 입, 귀도 좀 쉬자.'


'코로나야 잘 왔다. 이왕 온 김에 꼬옥 남편만 들볶아라. 꼬옥 사람 만들어 놓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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