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홍 Nov 30. 2017

메리 크리스마스 홍

모든 이에게 다정한 아기 예수가 네게 조금 더 다정하기를 

그날은 너를 처음 본 날이었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던 성탄의 밤, 멋모르고 따라간 그곳에선

세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한창 길을 헤쳐 나가고 있었지.

사람들 틈에 끼여  앉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던 나를 너도 봤을런지는 모르겠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반쯤은 강제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터라 썩 즐겁지는 않았어.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들뜬 기대감을 주기도 충분했지만

그리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마도 화기애애해 보이는 울타리 밖 멀거니 떨어져 있는 기분에 그랬을 거야. 나만 동떨어진 것 같아서 더 슬퍼지는 그런 거 있잖아.  그곳에 섞여들지 못한 게 죄인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연극이 끝난 후 너는 내게 피곤하냐며 물어봤지만 너도 썩 즐거워 보이진 않았어. 어린 동방박사들이 어색한 걸음으로 말을 나눌 때 그 뒤쪽으로 너는 부직포로 만든 나뭇가지를 들고 영혼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지.


그 모습이 퍽 우스워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한 네게 정감이 가기도 했고,

나와 그곳 사이에 선을 그은  듯했던 울타리가 조금은 뭉그러진 듯 느껴지기도 했어.


우리가 어떻게 그리 진지한 대화까지 하게 됐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축복이  넘쳐흐르는 그날에 우리는 죽음과, 버팀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너는 왜 그렇게까지 아등바등 살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어.

멍울진 삶과 행복에서 소외된 일상은 의욕 넘치게 해보자 싶다가도 발목을 잡아 버린다고.

자꾸 고꾸라지기만 하는 현실이 갑갑한데 뭐하나 변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무섭다는 네게


나도 그래. 그렇게 밖에 말해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홍. 우린 이미 그때 그곳도 아니고,

녹음 진 그늘 아래 햇살이 부서지던 여름도 아니지만  

다시 시간이 흘러 허연 성애가 피는 크리스마스야.

   

너는 내일이면 또 어디선가 어울리지도 않는  나무거죽을  뒤집어쓰고

불투명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모든 이에게 관대하고 다정한

아기 예수가 네게 조금 더 다정하기를.


홍, 이왕이면 아프지 마. 웃고 있으면 더 좋구.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없는 낙원 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