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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Jul 30. 2021

밤을 지나는 중입니다

[단비글] '밤'

어릴 때부터 ‘야행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린아이 때부터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내가 태어나고 꽤 크기 전까지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울어서 부모님이 나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퇴근이 늦었던 탓인지 우리 집 불은 다른 집보다 늘 늦게 꺼졌다. 아버지의 퇴근을 보고서야 잠들었던 나는 늘 11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찍 자려고 노력했지만 ‘불면의 밤’은 계속됐다. 일찍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면 ‘잠이 안 와’를 입에 달고 살았다. 부모님도 나와 함께 잠 못 드는 밤이 많았고 늘 내 걱정에 마음 졸였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늘 아침형 인간으로 살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낮보다 밤에 더 활발했다. 공부도 밤에 더 잘됐다. 당연히 늦게 자다 보니 아침잠이 많았고 학교 앞에 살면서도 종종 지각하고는 했다. 어릴 적에는 밤을 견디는 게 힘들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는 수능이라는 목표를 앞에 두고 나름대로 밤을 알차게 보냈다. 그래도 밤은 내게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밤’은 있다. 내 20대는 팔 할이 밤이었다. 밤은 곁에 누가 있어도 외로운 시간이다. 밤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 시간이다. 그 채울 수 없는 마음을 때로는 술로, 때로는 친구로 채워보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20대는 별을 잡으려 애썼지만 그저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댔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몇 번이고 수많은 별들이 내게 오기도 했지만 나는 잡지 못했고 별은 스쳐 지나갔다. 별이 너무 환하게 빛나서 내가 그걸 다 감당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은 나를 지치게 했다. 청춘을 소모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게 했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시간들은 대개 밤에서 비롯됐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좀 더 자신 있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을 붙잡고 늘어졌다. 밤새 주로 하는 일들은 술 먹고 수다 떨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들이었다. 그 속에는 내가 없었다. 그저 어제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나의 마지막 절규와도 같았다.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제를 붙잡고 늘어지니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친구들과 조금 덜 놀고, 밤에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책을 읽었더라면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무수한 밤. 이제는 다가올 내일을 꿈꾸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어둠을 피하지 않고 견뎌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에 내가 밤을 붙잡고 늘어진 것은 막막한 내일이 두려워 자꾸만 오늘에 머물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붙잡고 늘어지는 일은 그만둘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5시 기상도 그래서 시작한 일이다. 오늘 하루에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며 평온한 밤을 보낸다. 지난해 취재 차 혼자 어두운 밤길을 몇 번 걸었던 적이 있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아가는 온전한 그 걸음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방향이 뚜렷하다면 어두워도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20대는 끝이 났지만 30대는 이제 시작이다. 오늘 조금 힘들더라도 낙심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은 또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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