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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Aug 11. 2021

너의 섬, 나의 섬, 우리의 섬

[단비글] '섬'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 있는 한 섬에 닿기를 간절히 소망해왔다. 그곳은 바로 여의도다. 여의도에 관한 나의 기억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이 섬이라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던 때다. 고3을 앞둔 겨울방학, 나는 그때도 기자를 꿈꿨다. 기자에 관해 궁금한 건 많은데 아는 것은 없으니 일단 현업에서 일하는 기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뜸 내가 자주 즐겨보던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 나오는 기자에게 전자우편으로 편지를 썼다. 


한동안 전자우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다 드디어 KBS에 방문하게 됐다. 그날 아쉽게 보도국, 스튜디오는 구경할 수 없었지만 처음으로 기자와 마주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러 질문들을 준비해서 갔고 많은 말을 들었는데 오래전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추운 겨울, 화분 하나를 들고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30여 분 동안 질문을 쏟아냈다. 당시 기자는 바쁜 와중에도 따뜻하게 날 맞아주었고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변해주었다. 기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던 내 질문에 ‘호기심’과 함께 ‘세상에 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답한 10글자의 말이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들렸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나는 기자라면 으레 비판 정신이나 정의감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멀리 청와대나 국회, 법원 같은 곳이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과 동네부터 관심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그날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방송국 곳곳을 구경했다. 


그날 이후 여의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꽤 많이 갔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는 여의도가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봄이면 벚꽃 구경 가고, 가끔 바람 쐬러 한강공원을 찾기도 했다. 방송국부터 국회의사당, 한국거래소, 63빌딩, IFC 등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 있다. 그러는 사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이따금 사진을 보며 그때를 회상한다. 그렇게 여의도에 수십 번을 오가면서 내 꿈은 선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흐려져만 갔다. 여의도는 오랫동안 내게 동경의 섬이었다. 방송국과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걷다 보면 나도 직장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을 여의도 근처에서 빙빙 맴돌기만 한 것 같다.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여의도에 대해 막연한 동경만 지닌 채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 추운 겨울, 여의도공원에 스케이트를 타려고 갔다. 그런데 막상 여의도에 도착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날이 너무 추워 도저히 스케이트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위를 녹일 요량으로 어디든 실내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신문에서 본 기사가 생각났다. 지하 벙커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됐다는 소식이었다. 1970년대 중반 당시에는 국군의 날이 되면 여의도에서 행사를 했는데 긴급 상황을 대비해 만든 공간이다. 육영수 여사의 피격사건과 불안했던 그 시대의 안보·경호 문제로 탄생한 공간이다. 권력의 공간이 이제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해 개방됐다. 한때는 비밀 공간이었던 곳에서 전시를 관람하니 기분이 묘했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를 오가거나 지나치면서 한때 여의도의 이름을 보며 궁금했던 적이 있다. 汝矣島, ‘너의 섬’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리면서도 ‘대체 누구의 섬일까?’ 생각하고는 했다. 사람들이 나의 섬, 너의 섬 하면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여의도는 내게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섬이다. 내게는 여의도(너의 섬)가 ‘그들의 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사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들어가기 위해 오랫동안 꿈꿨지만 나는 아직도 외부인일 뿐이다.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을 위한 일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나 역시 너의 섬을 나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가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나의 섬, 너의 섬이 아닌 모두의 섬일 수는 없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섬’). 너의 섬, 여의도를 누비는 취재 기자가 되어 여의도를 너의 섬도, 나의 섬도 아닌 ‘우리의 섬’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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